누가 뽑았는지 모르지만 경기도 가평에는 8경이란 곳이 있다.

제1경, 누구나 잘 아는 놀거리 풍부한 청평호반,
제2경, 호명산 산세와 어우러진 인공저수지 호명호수,
제3경, 용이 승천하다 만든 아홉굽이 계곡 연인산 용추구곡(龍湫九谷),
제4경, 명지산 수십 년 고목과 기암괴석을 물들인 명지단풍(明知丹楓),
제5경, 가평 최북단 도마치 계곡에 숨어있는 적목용소(赤木龍沼),
제6경, 가평군에서 아름답기로 으뜸인 운악산 운악망경(雲岳望景),
제7경, 축령산 잣나무 향기 가득한 숲 축령백림(祝靈柏林),
제8경, 유명산의 맑은 소와 아름다운 계곡 유명농계(有名弄溪)

▲ 하늘에서 내려다 본 호명호수(사진 출처 : 2015년 3월 16일 한겨레신문)

이중 우리가 안 가본 곳이 어딜까? 30년 간 대부분 한번 이상씩 발걸음을 한 곳이지만 호명호수와 적목용소는 처음 들어본 곳이다. 추석 연휴기간 이 두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호명호수에 가는 쉬운 방법은 상천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거나, 호명호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관광안내소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거다. 하지만 이 마을버스는 코로나로 운행이 중지되었다. 할 수 없이 관광안내소에서부터 3.8km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1시간 정도 걸린다. 

▲ 버스길

버스 다니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올라가야 해서 힘들지는 않으나 좀 지루한 느낌이다. 비 오는 날, 막 가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호명산 숲길을 걷는다 생각하고 가다보니 이렇게 예쁜 단풍도 만난다. 성질 급한 녀석들이다.

호명산 정상에는 4만5천평(15만㎡)에 둘레 1.9km가진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는 호명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심야와 같이 전력수요가 낮을 때 전기로 북한강 하류 물을 끌어올린 후 전력수요가 높을 때 물을 낙하시켜 전기를 만드는 양수발전소를 위한 상부 저수지다. 밤에 남아도는 전기를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거라면 양수발전은 친환경발전소라는 생각이 든다. 풍력이나 태양광발전은 날씨에 따라 변동사항이 많은 단점이 있는데 이를 보완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을 깎아내고 숲을 허물어 상부댐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 또한 환경파괴 논란을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저수지 건설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만큼 효율적인지도 의심이 가고... 

▲ 호명호수

호명호수는 그간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가 2008년 개방되었다. 호명호수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다. 분지였을까? 아님 다른 산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들어진 최초의 양수발전용 저수지라고 하니 자연의 기다림보다는 몰아치는 빨리빨리에 사람들이 무섭게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 호명호수 한쪽 사면

호명호수에서 저 멀리 구름 낀 산세가 멋지다. 호수 한쪽 바깥 사면은 오래된 너덜바위 같지 않은 돌들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위험 표시도 있다. 멀리 보이는 것이 발전소 건물일까? 요새 자연은 워낙 예측 불가라 돌들 아래 있는 건물이 왠지 위태로워 보인다.

▲ 호명호수 둘레길

사람 없는 이런 호젓한 둘레길이 1.9km나 되니 대화를 나누며 슬슬 돌 수 있다 생각했는데 남편이 지역경제에 기여해야한다며 마을에서 운영하는 관광자전거를 빌려 타자 한다. 이럴 땐 남편 의견을 따른다. 한창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줄을 서야 할 때인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정말 사람이 몇 없었기 때문이다.

둘레길을 돌던 중 전망대 표시가 있어 올라가 보았다. 보통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길일 텐데... 이 길이 맞나 싶다. 좀 으슥한 덕분에 촉촉한 안개비로 신비롭게 느껴지는 이런 길도 만난다. 

전망대에 가보니 전망대 데크에 텐트를 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이 전망대가 맞나 물어보니 이름은 전망대인데 앞에 나무가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전망대란다. ㅎㅎㅎ 웃고 그냥 내려왔다. 전망대 아닌 전망대 푯말도 이상하고... 야영이 금지되어 있을 텐데... 거기 있는 사람들도 이상하고...

하산 길에 이렇게 예쁜 꽃도 만났다. 꽃향유다.

9~10월이면 전국 산과 들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이다. 이삭꽃차례의 자주색 꽃이 예쁠뿐더러 꿀풀과 꽃이라 꿀이 많아 비가 오는 와중에도 벌이 달려 있다. 밀원용, 관상용으로 많이 키운다.

비를 맞고 길바닥에 떨어진 단풍과 옹벽에 살그머니 떨어진 단풍에서 물빛이 난다. 아무 때도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 아무에게도 짓밟히지 않은 자연 그대로...

 

마지막으로 주차장에서 만난 담쟁이넝쿨이 가을이 많이 깊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색색이 바래가는 담쟁이넝쿨도 참 예쁘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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