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무등이왓 폭낭

제주 4.3 때 잃어버린 마을의 팽나무 이야기 김광철 주주통신원l승인2020.10.17l수정2020.10.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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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일대에 맜었던 마을. 제주 4.3 때 100여 명의 주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고서 없어져 버린 마을,
'무등이왓'을 소개하는 안내판

 

  무등이왓 폭낭

            - 김 광 철

 

그날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동짓달 삭풍조차 겁에 질려 숨죽였지

인근에 갈치를 떼로 잡아 올리기 위하여

이미 잡아 죽인 갈치 주검들을 떡밥으로 삼아

몰려드는 갈치들을 떼로 잡아 올린다

그건 인간이길 포기한 승냥이 떼에 다름 아니었다

이 피 냄새 진동하는 들판에 서서 온몸을 떨었던 폭낭 한 그루 

칠십여 년 세월 그날의 트라우마로

몇 십년을 벙어리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말해야 한다

이 역사를 증언하지 않고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더듬더듬 그날의 현장을 떠올리며 말문을 연다

어눌한 말투 속에 시커멓게 멍든 그의 가슴을 본다

이 고목이 미처 다 말하지 못하는 한의 조각들을 떠올린다면

연민에 젖지 않을 사람 있겠는가


일백 오십 살 무등이왓 폭낭을 바라본다

이 고목의 그날 증언을 시샘해서 인가

그래도 그이 몸뚱이를 쥐어짜고 뒤틀 순 없지


이 늙은 나무가 사라진다면

누가 있어 그날 광란의 현장을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세 살 배기에서 팔십 노인에 이르는 일백 여 사람들

무차별 쏘고, 찌르고, 밟아 뒤틀고 불 질러 죽였던 한국판 킬링필드의 현장

인간 백정들의 망나니 짓을 목도했던 그는 기어이 살아 남아야 한다

오백 살, 아니 천 살이 되어도 살아남아 그날을 증언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래서 우린 그를 살려야 하는 것이다

톱을 들고 전지가위를 들었다

그의 몸을 구렁이처럼 휘감고 있는 송악을 베어내기 위해서 

 

▲ '무등이왓' 학살 현장에 자리 잡고 있는 150여 년 쯤 된 팽나무, 이 나무에 덩쿨성 수목 송악이 휘감고 있어 고사될 위험에 처했다. 이에 제주 향토 사학자들이 송악 줄기를 잘라 팽나무를 보호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주>

- 무등이왓: 제주 4.3 때 100여 명의 사람들이 집단 학살되어 사라진 마을, 지금은 마을터에 이대와 억새 등이 자리 잡고 있다.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지금까지 복구되지 못한 잃어버린 마을이다.

▲ 전날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주민들이 시신 수습을 하러 올 것을 예상하고 주변에 잠복해 있다가 무차별 사살하고 불 질렀다는 집단 학살터에 대한 안내판이다.

주변 지역으로 피난 간 주민들이 전날 학살한 시신들을 수습하러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잠복하고 있다가 시신을 수습하러 온 사람들을 무차별 사살하고 불 질러 죽였다. 이곳은 약 300년 전에 관의 침탈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화전을 일궈 살아가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230번지 일대 산간에 자리 잡고 있다.

▲ 잃어버린 '무등이왓' 터에는 대나무와 억새 등만 무성한 채 마을 흔적만 남아 있다. 옛날 농사를 지었을 땅에는 메밀, 무 등이 심어져 있다. 이웃 동광리 주민들이 와서 농사를 지은 것으로 추정해 본다.

'무등이왓'이란 용어는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이들이 춤추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하고, 무등(無等). 계급과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을 하기도 한단다. '왓'은 '밭' 또는 '마을'이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 폭낭 : '팽나무'를 제주어로 부르는 용어이다.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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