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승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여기저기에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승전 70년’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각국은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70년을 즈음하여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훼손할 것으로 확실시 되는 아베 담화 발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니혼 TV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베 담화에 ‘사죄’라는 단어를 넣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은 16%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사회는 식민지전쟁범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였다는 사실을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아베를 비롯한 일본 우익의 논리가 일본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기야 패전 후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그대로 살아남아 오늘날의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만 고려해도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 한겨레 자료사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지난 6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1965년 한일협정 회담 문서를 전면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한국유족회 등 관련 단체 5곳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 양국이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갈등을 반복하는 것은 협정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러한 일본 내의 분위기와 전혀 달리, 중국 시진핑 주석은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는 어떤 세력도 용서할 수 없다.”고 단호히 강조하면서, 아베 수상을 승전 70주년 일에 초정하여 준엄하게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을 꾸짖고 있다. 여기에서 일본과 평행선을 달리는 중국의 역사관과 현실의식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현저한 시각차는 세계의 평화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의 산하 단체인 ‘역사NGO 포럼’이 지난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친일인사로 평가받고 있는 김성수를 기념하는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전후 70년의 세계와 동아시아 평화’라는 제목으로 국제 NGO행사를 개최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연구와 활동을 하는 어느 분이 내게 흥분된 목소리로 ‘전후 70년’이라는 표현에 대해 문제점을 강력히 제기했다. 그래서 주최 측에 문의 겸 항의를 하였는데 주최 측 인사의 답변이 나를 대단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전후 70년’이라는 용어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울화통을 억지로 누르면서 국제적으로 공인된 용어는 ‘전후 70년’이 아니라, ‘승전 70년’이며,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국민세금으로 여는 행사에 과거 일제의 침략역사를 정당화하는 ‘전후 70년’라는 용어보다, ‘광복 70년’ 또는 ‘승전 70년’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전후 70년’이라는 용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고 하였다.

안중근의사와 같은 분의 희생으로 우리는 일제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전후 70년’이라는 말은 안중근의사를 부정하는 것이고 일본군 위안부를 ‘창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라는 것을 동북아역사재단 측 인사들은 몰랐을까? 이 또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본의 독도 침탈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아온 사실에서 보면 이러한 반응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주최 측의 인식은 어찌 보면 그들만 탓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우리는 인적 친일청산만을 강조했지 일본말 특히 일본어 학술용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사와 관련된 역사용어에 일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가는 기현상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분들을 무덤 속에서 뛰쳐나오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논리가 최근에 들어와 더욱 노골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는 데서 나는 굴욕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는 박유하씨의 책 『제국의 위안부』이다. 박씨는 이 책에서 “일본군위안부를 ‘일본군의 동지’로 표현하는가 하면 강제연행은 없었고 그 책임은 일본이라는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개 업자에 있다.”라는 ‘비학문적인’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 묻지 않아도 그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박씨는 반성은커녕 재판부에 삭제명령을 내린 부분을 ○○으로 처리하여 다시 출판함으로써 할머니들을 두 번 우롱하였다.

이러한 박씨의 주장은 고노담화와 함께 1993년 8월 4일 ‘일본내각관방내각외교심의실’이 “구일본군은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에 직접 관여하였다.”라고 발표한 일본정부의 공식 입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박씨가 일본 극우세력의 논리를 되풀이하는 아베 수상의 아류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박씨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등의 ‘독도 공유론’을 한국의 저명한 연구자 이 아무개씨와 더불어 한국사회에 이식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도 밝혀둔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일부 연구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저명한 시민단체들이 일본의 식민사관을 한국에 퍼트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2010년 국치 100년을 맞이하여 여기저기에서 한국근대사를 되돌아보며 한국의 미래와 세계평화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당연히 여기던 ‘국치’ 또는 ‘병탄’이라는 역사용어가 어느 순간 ‘강제병합’이라는 몰역사적인 사술(邪術)에 밀려나고, 심지어 교과서에까지 실리기도 하였다. 더욱이 ‘한국병합 10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이라는 이름으로 2010년 안중근순국 100주년에 한국의 저명한 인사들과 ‘병합조약’이 성립되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이른바 ‘병합조약’이 성립되었다는 몰역사적인 주장을 바탕으로 ‘한국 병합 무효선언’을 하였다고 자랑스러워하고 다시 올해 이를 기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동북아재단도 ‘병합’이라는 용어를 한국사회에 정착시키는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나는 “‘강제병합’이라는 용어의 병합은 “대한제국이 스스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병합에 ‘강제’를 붙인다고 해서 병합의 의미가 국제법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 용어를 주도한 인사들은 글쓴이의 항의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뜻 있는 분들과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논문 「국치(일)투쟁의 전개와 그 의미」(『한국민족운동사연구』 66, 2011)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제 생각하니, 이때 좀 더 이 문제에 집중하였다면 ‘전후 70년’과 ‘병합’이라는 용어를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역사 메르스’를 차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온다.

이러한 반역사적인 현상의 근원지를 조사해보니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누구나 알만한 시민단체와 그 주역들 그리고 역사학자에 집중되었다. 그들의 논리는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해야 하므로 일본의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독도문제는 한일 NGO대회에서 거론 조차될 수 없었다고 어느 독도 운동가는 울분을 토하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신채호의 부르짖음은 자신도 모르게 일본의 침략논리를 전염시키는 메르스와 같은 일부 신 친일인사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경고이기고 하다.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

 

[글쓴이 신운용 박사 소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외국어대 사학과에서 ‘안중근의 민족운동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안중근과 그 시대>, <안중근 연구의 기초>, <안중근 연구의 성과와 과제> 등이 있고, 번역책으로 <하얼빈 역의 보복>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일제의 국외한인에 대한 사법권침탈과 안중근 재판', '안중근의거의 국제 정치적 배경과 의의' 등이 있다. 특히 그는 한겨레-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공동 주최 한겨레 테마여행, <동아시아 평화의 선도자 안중근, 그 역사의 현장을 가다>의 동행교수다.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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