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한겨레 주주가 되었나?

한겨레가 창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 목돈을 턱 내어 주주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적은 돈이라도 시작할까 망설이고 있던 차에 큰 아이를 낳았다. 출산축하 겸 산후조리하라고 일가친척들이 돈을 넉넉히 보내주었다. 이 때다 싶어 상당액을 떼어 주주신청을 했다. 돈도 없는 주제에 산후조리나 잘 할 것이지.. 왜 그랬을까? 한겨레가 나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갈망하지만 나 개인의 힘으로는 만들지 못하는 그런 사회를, 대신 만들어 줄 것이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 한겨레신문사 2층 현관로비에 새겨져있는 동판

 

나의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예쁜 옷에도 관심이 없고 맛있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다. 특히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즉 외적인 것과 외적활동에 가치를 두는 형은 아니다. 따라서 외적인 것의 최고봉인 '돈'에도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대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어 한다. 이건 성장과정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타고난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실과 정의, 선함(약자에 대한 배려)에 가치를 두고 싶어 한다. 한겨레도 나와 같은 가치를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겨레 주주가 된 것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주주통신원들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때때로 자신의 가치에 모든 것을 걸 때가 있다.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친구라 해도 냉정히 돌아서고 가치와 맞는다고 생각하면 입던 옷도 벗어준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가치고 자존심이고 다 집어던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저 기득권 새누리당 세력을 경멸하는 것이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뼈아픈 지적도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쓰라림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특징은 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센 편이다. 진실이 담기지 않는 추켜세움도 싫어하거니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깊은 상처를 입는다. 즉 이들은 가치와 맞지 않는다면 돌아서고 수차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냉정한 퇴장’을 가장 큰 무기로 세상을 대한다. 한마디로 ‘밸’이 너무 센 사람들인 것이다.

▲ 해마다 7~800여 명의 주주들이 참여하는 한겨레 정기 주주총회

그런데 한겨레는 주주총회에서 공격적인 발언을 하거나 평소에도 한겨레에 전화해서 뭔가 항의 하는 주주들을 더 멀리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그래도 아직은 ‘냉정한 퇴장’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겨레가 변했다고 비판한다. 그들의 말은 맞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다. 아직도 변함없이 한겨레를 사랑하는 나도 한겨레에 대한 실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끼리 편을 갈라 싸운다는 말도, 아마추어 경영으로 큰 손실을 봐 돈도 사람도 잃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저세상으로 갔을 때 자책감에 쌓여 한겨레의 조중동식 보도에 분개했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절독사태가 났을 때에도, 실망은 했을지언정 한겨레를 떠나지 않았다. 한겨레 직원들은 나와 같은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쉽게 변할 수 없는 사람들로 창간정신을 버리는 것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창간정신을 버린다면 내면의 고통으로 제정신으로는 당당히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창간정신은 새기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정석구 편집인을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신참 수습기자에게 ‘왜 한겨레에 들어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양심을 팔지 않고 기자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다. 돈과 언론권력을 쫓아가는 부류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 가치가 더 중요했다면 조중동에 갔겠지. 그래서 나는 조금의 실수가 있을지라도 앞으로도 영원히, 한겨레가 창간정신을 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진실을 밝혀주고, 정의를 추구하고, 선함을 보여줄 것이라고 지금까지도 굳게 믿고 있다.

 

나는 왜 한겨레 주주통신원이 되었나?

한겨레는 나와 가치를 공유했고, 그 가치를 실현해주려 애 썼지만 불행히도 그 가치가 구현되는 사회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당연하다. 나는 가만히 있었고 다 떠 넘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주들이 그러지 않았나 싶다. 민주정권이라 할 수 있는 10년.. 그리고 허망한 무너짐. 우리나라에서 살기 싫었다. 아이 둘 다 캐나다에서 공부해서 남편 퇴직 후에는 대한민국을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나라가 이런 꼴로 추락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죽기 전까지 내가 살고 싶은 사회에서 살 지 못할 지라도, 죽을 때까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 허망한 무너짐에 한 축을 담당한 집단은 바로 '언론'이라는 탈을 쓴 범죄집단 조중동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신뢰도는 형편없는 것이 영향력만 큰 ㅈ일보. 믿을 수 없는 놈이 힘만 센 것이니 깡패나 다를 바 없다. 반면에 신뢰도는 높은데 영향력이 떨어지는 한겨레. 믿을 수는 있는데 아쉽게도 힘이 약한 것이다.

조중동의 힘을 어떻게 하면 약화시킬 수 있을까? 한겨레가 힘을 기르면 깡패들의 힘은 약해질 수 있을까? 그런 와중에 주주통신원을 모집한다는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사회적 관계를 몹시 버겁게 생각하여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는 내가 큰 망설임 없이 통신원에 지원했다. 서울·경기지역 통신원 연합 사무국장도 맡았다. 한겨레를 구독하는 사업장을 소개하는 ‘개념가게’ 아이디어도 냈다. <한겨레:온>에 글도 썼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이 있듯이 아직은 주주통신원제도가 한겨레에 긍정적인 기여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한겨레를 사랑해서 뭔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첫발을 떼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 움직임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100명에서 1000명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셀 수 없는 움직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주들 모임을 가보면 50대 중반인 내가 젊은 편에 속한다. 평균연령이 60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움직임의 덩어리가 커져도 새 피가 수혈되지 않으면 주주들은 자연 소멸된다(이거 혹시 한겨레가 바라고 있는 것? 설마 아니겠지?). 물론 주식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가겠지만 그건 종이만 물려주는 거다. 첫 주식종이에 무엇이 들어있나? 그 당시 한겨레에 대한 개개인의 열정이 들어 있는 거다. 한겨레 입장에서 보면 주주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정덩어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열정덩어리를 한겨레가 어디 가서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이 열정덩어리 한겨레 주주를 한겨레직원들은 자신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주주들이 직원들을 만나거나 주총에서 호통치고 좀 거친 말투로 직원들을 죄인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럴까? 그들은 대접받기를 원해서일까? 뭔가 이득을 달라고 그러는 걸까? 그건 아니다. 내 생각에는 식구로 배려 받지 못해서다. 자신들을 무시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면서도 ‘냉정한 퇴장’을 선택하지 않고 ‘불편한 개입’을 고집하고 있는 여전히 한겨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

한겨레가 주주를 식구로 배려한 적이 있는가? 내 기억에는 별로 없다. 식구로 배려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건가? 최근에 한겨레에서 도로명 주소를 확인한다면서 <한겨레21>을 무료로 배달해준다는 전화를 받았다. ‘배려’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지난 주에 아들까지 주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한겨레 주주들은 밸이 맞으면 입던 옷도 벗어주는 사람이다. 하나를 받으면 열까지는 몰라도 둘은 주는 사람들이다. '있을 때 잘해'란 말이 있다. 한겨레가 좀 약아져서 주주들이 있을 때 '배려'라는 특효약을 적절히 활용했으면 한다.

그리고 한겨레가 참고할 것이 또 한 가지가 있다. 나는 매월 63000원의 돈을 언론사에 보내고 있다. 한겨레신문에 18000원, 시사인에 15000원, 뉴스타파에 20000원, 000뉴스에 10000원. 적은 돈은 아니다. 만약 한겨레가 나에게 조금의 실망도 주지 않았더라면.. 또 미리미리 배려해주었더라면 다른 매체는 몰라도 <시사인>에 애정을 나눠주진 않았을 거다. <한겨레21>을 주야장천 고집했겠지.

편집: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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