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우리 것] 이상직 주주통신원

애통하구나. 가슴이 미어진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 가운데 셋째인데, 무심하게도 나의 아내는 그동안 나와 함께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동고동락해왔으나 뜻하지 않게 나를 배반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아. 아내와의 사이에 난 저 두 딸은 장차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자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배반했으니 그 행위를 생각하면 칼을 품고 가서 죽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은 앞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서하고 엽전 35냥을 받고서 우리의 혼인관계는 파한 뒤 위 댁(宅)으로 보낸다. 만일 뒷날 말썽이 생기거든 이 수기로 증빙할 일이다. 을유년 12월 20일 최덕현 수표”

위 기록은 전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최덕현 수기’입니다. 내용을 보면 이 수기가 아내의 이혼을 허락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와 어려움 속에서도 동고동락해왔지만 이제 배반하고 돌아서서 다른 남자에게 갑니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표현되어 있으며, 또 남겨진 두 딸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좌절감도 절절히 묻어납니다.

그런데 이 수기는 최덕현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남이 대신 한문으로 써주고 본인은 한글로 이름을 쓰고 자신의 왼손을 그려 넣었습니다. 조선시대엔 양반은 수결(手決) 곧 사인(sign)을 했고, 평민이나 천민은 손이나 손마디를 그렸습니다. 손을 그리는 것은 수장(手掌)이라 했고, 손마디를 그린 것은 수촌(手寸)이라 했지요.

이 수기의 마지막을 보면 최덕현은 이혼 위자료조로 35냥을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본인과의 혼인관계를 청산하고 윗사람 곧 중인이나 양반 댁에 첩으로 들여보내면서 이 증빙서류를 써주었을 것입니다. 35냥에 아내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천민의 애환이 묻어난 문서입니다.

이상직  ysanglee@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