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집에 가고 싶어.”
울음기 섞인 다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다향아,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납니다. 아니, 다향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부터 눈물이 나고 있었습니다.
“…… 다향아, 한 달만 지내보기로 했잖아.”
“알아, 아빠. 그런데 여기 언니오빠들 다 욕 쓰고 오빠들은 담배도 피워. 여기 있으면 욕이랑 담배만 배울 것 같아.”
“…….”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다향이를 너무 무공해로 돌봤나 싶었습니다. 담배를 배울 것 같다는 말은 집에 오고 싶다는 절박감에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조금은 냉정해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향아.”
“응.”
“일반 학교에 다니는 애들도 다 욕하고 담배도 피워. 처음이라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견뎌보자.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한 달 뒤에 널 만나러 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놨으니까. 알았지?”
“으앙.” 다향이가 통곡을 합니다. 같이 울면서 통화를 마쳤습니다.

입학식 다음 날 저녁에 받은 다향이의 전화입니다. 다음날도, 다음 날 저녁에도 비슷하게 통화했습니다. 세 번째 통화를 마쳐갈 즈음에 다향이가 말합니다.
“아빠, 나 이제 전화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전화하지 않아도 기다리지 마.”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온종일 이제나저제나 전화를 기다리면서 지내는데 전화를 하지 않는다니.
“다향아,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나서 안 되겠어.”
“…….”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서 다향이를 데려오고 싶었지요.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러다가 최선을 다해서 공들여 키운 다향이가 망가지는 거 아닐까?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잠을 자고, 밥을 먹는 나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다향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했지만 먼저 전화를 걸어볼 수도 없게 됐습니다.  

아이가 단단히 마음먹겠다고 결심한 마당에 어른이 그것을 흔들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다향이랑 같이 입학한 고등부의 혜준이한테 다향이의 안부를 들었습니다. 잘 지낸다고 했습니다. 엄마아빠 생각만 아니면 잘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향이한테 힘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손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입학식을 마치고 손편지를 쓰는 동안 지난 사십여 년 동안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드디어 한 달이 지났습니다. 3월 17일에 군산비행장에 내렸습니다. 변산공동체의 김희정 선생님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옆에 웬 여자아이가…. ‘누군가?’ 하고 봤더니 다향입니다. 한 달 만에 몰라볼 정도로 성숙해진 다향이가 조금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울면 어떡하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 안녕!”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참새처럼 재잘재잘. 쉴 새 없이 참새처럼 지저귑니다. 점심으로 뭘 먹겠느냐고 묻는 선생님의 말씀에 “양념(돼지)갈비요” 합니다. 그래 셋이 점심밥을 먹고 공동체로 돌아갔습니다.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다향이의 속마음을 어림해보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공동식당에서 조금 얘기를 하다가 용돈과 USB를 챙기고 “아빠, 나 보고 싶으면 옆방으로 와” 하더니 훌쩍 나가버립니다. 순간 ‘난 뭐지? 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동아리방으로 건너갔습니다. 아이들이 둘러앉아서 포커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뭐냐고 물으니 훌라라고 했습니다. 다향이랑 동욱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게임을 하다가 딱 밤을 1,500대 맞았다느니, 300대를 맞고 100대밖에 때리지 못했다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예정대로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커피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커피를 마시게 된 유래, 커피 생산지, 커피의 종류, 커피 전문가의 전문 분야, 로스팅과 핸드드립-를 하고 곧바로 생두를 볶았습니다.

연녹색의 생두가 갈색을 띠었다가 검은색으로 변하고 펑펑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이 신기해했습니다. 그렇게 로스팅을 마치고 드립을 해서 아이들과 함께 커피를 맛봤습니다. 제각각 커피 맛에 대해 평가하면서 시끌시끌한 상황에서 저녁 식사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다향이, 혜준이, 동욱이 등 제주에 살면서 변산공동체에 입학한 아이들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세 아이 모두 공동체에서 지내겠다고 합니다. '혹시 한 명이라도 돌아온다고 한다면 나머지 아이들도 동요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한갓 기우에 그쳤습니다. 아, 하나를 빠뜨렸군요.
“다향아 네 방은 어디야?” 하고 물으니까 아궁이에 불을 때러 간다면서 일어섭니다. 그리고 자신이 머무르는 기숙사-작은 흙집-를 알려줍니다.
“아빠, 여기야. 그런데 언니들이 방 안은 보여주지 말랬어” 합니다.

방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깨끗하게 치워놓고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묻기도 전에 제지를 당했습니다. 이제는 아빠보다는 언니들의 말이 더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마솥이 매달린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알려줍니다.
“아빠, 이 솥에 물을 끓여서 씻고, 샤워도 해. 그런데 샤워실이 너무 추워.”
“뭐, 우리 집보다야 더 춥겠어?” 했더니 “당연히 더 춥지. 봐” 하면서 부엌과 딸린 샤워실을 보여주는데 ‘정말 춥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감기에 걸리지 않고 잘 지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 어른끼리 막걸리를 마시려는데 아이들이 커피 수업을 한 번 더 하자고 합니다. 직접 커피콩을 볶아 보고 드립도 해보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요청으로 동아리 방에서 다시 한 번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각기 다른 콩을 볶아서 맛을 비교해 보게 했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8명의 아이가 직접 콩을 볶아보게 하고 각자가 볶은 콩을 다른 아이의 것과 비교해보도록 했지요.

겉보기에는 잘 볶아진 콩을 씹어보도록 해서 뭐가 문제인지를 알려줬습니다. 그래도 수진이랑 한새는 처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게 콩을 볶았습니다. 볶은 것을 직접 드립을 하도록 하면서 장장 4시간에 걸친 커피 수업을 즐겁게 마쳤습니다.

18일 새벽 다향이를 만나러 공동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손님방에서 같이 자고 싶었지만 다향이가 언니들이랑 자겠다면서 제 방으로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선생님 다음으로 내가 도착했고 다향이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네 번째로 식당에 들어섭니다. ‘점심시간에 데리고 나가서 함께 밥이라도 먹을까?’ 했는데 운동회를 한다고 합니다. 토요일에 하기로 한 게 비 때문에 하루 늦춰졌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다향이의 투덜거림.

아이들과 함께 변산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데 트럭이 와서 서고 아이들이 우르르 올라탑니다. 나도 올라타고 남자아이들은 짐칸에 올라타서 겨울바람을 맞습니다. 그렇게 운산리에서 변산초등학교가 있는 지서리에 간 뒤 내렸는데 아이들이 말합니다.
“아저씨, 우리 간식 좀 사주면 안 될까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늘 불량식품에 굶주린 녀석들! 먹고 싶은 걸 하나씩 고르라고 했더니 얼른 하나씩 집어 듭니다. 그렇게 산 게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과자, 빵. 서로 한 입씩 나눠 먹으면서 운동장으로 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체조한 뒤 이어진 신나는 운동회. 아직 찬바람을 맞으면서 땀을 흘리고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구나’ 싶어서 우리 부부의 선택이 그르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어진 점심시간. 전날 뽑아둔 가래떡이 뻣뻣해졌다고 선생님들이 아침부터 물을 끓여서 데쳐냈더군요. 그리고 야외 행사에서 사용하는 큰 식수통에 가득 담긴 유자차. 뜨거운 유자차를 후후 불면서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는 아이들. 매운 김치와 함께 먹는 선생님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운동회가 시작될 때 다향이한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다향아, 안녕. 건강하게 잘 지내” 했더니 “응, 아빠. 잘 가” 하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무리에 섞이면서 몇 번이나 돌아보고 손짓하는데 울컥한 마음을 정리하려 애쓰는 게 보였습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나도 웃으면서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줬습니다. 불과 한 달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쩍 자란 다향이가 여름방학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문득 ‘아, 이제는 정말 품에서 떠났구나!’ 싶었습니다.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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