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향 - 자신에게 쓰는 편지
안녕 나는 다향이야. 나는 네가 좀 더 자신 있게 말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만날 억울한 게 있는데도 말 못해서 혼자 아파하고 혼자 울고. 그래서 너무 힘들어하고. 겉으론 밝고 쾌활한 척하면서 우울해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해서 혼자 있고. 하도 그래서 이젠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언니 오빠와 친한 척하지만 나도 모르게 비위 맞추고 있고.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해지고. 다른 언니나 친구, 동생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비위 맞추지도 않고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걸 보면 너무너무 부럽다.

나도 그렇게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고 그렇게 말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절대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내가 정말 싫다.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꼭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요즘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을 관찰하고 있다. 그래야 나도 보고 배우면서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연극이 끝난 뒤
이번 가을걷이 축제 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연극을 올렸다. 준비할 때는 힘들고 짜증 나고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아서 좀 별로였는데 연습하는 걸 보면서 하니까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연극에서 녹스(보리)가 편지를 찢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품이어서 편지를 찢을 때마다 내가 계속 다시 썼다. 아마 편지를 7번 정도 다시 썼던 것 같다. 녹스에게 써준 걸 보고 다른 배우들도 전부 써달라고 했다. 솔직히 다 써주긴 싫었는데 배우들의 항의가 너무 심해서 할 수 없이 다 써줬다.

그랬더니 연습할 때 조금 헷갈렸다. 웬만한 건 다 외우고 있는데 그 종이를 누구 책장에 끼워야 하는지 헷갈려서 종이를 끼울 때마다 대본을 다시 봤다. 그래서 ‘진짜 공연할 때 틀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기어이 틀리고 말았다. 책장에 쪽지 끼우는 게 헷갈려서 녹스 책장에 끼워야 할 쪽지를 안 끼우고 말았다.

처음엔 너무 속상해서 다음번엔 실수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안 울려고 노력했는데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렇게 쉬운 걸 실수한 나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생해서 준비한 연극을 망치게 됐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속상했다.

또 축제 때 연극을 못 봐서 많이 아쉬웠다. 우리 연극을 보고 운 사람들도 있다고 해서 얼마나 잘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래도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내년 축제 땐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다.

 

‘종이밥(글 김중미, 그림 김환영)’ 독후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빈민가나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사는지 잘 몰랐다. 그저 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솔직히 말해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면 그 사람이 힘들든 아프든 슬프든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지 않는 한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다. 다들 말로만 “뭐, 별거 아니네”라고 툭툭 내뱉는 사람들이 있는데 막상 그 일을 해보면 힘들다고 투덜대기나 한다.

공중화장실이나 길거리 같은 경우도 그렇다. 내 화장실, 우리 집 화장실이 아니니까 다들 막 더럽히고 길거리도 내 집 마당이 아니니까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더럽혀진 화장실이나 길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바로 나이 들고 힘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그분들이라고 냄새나고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고 싶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조금 주는 그런 일거리조차도 요샌 구하기 힘들다.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 같은 대학을 나온 공부를 잘하는 언니, 오빠들도 일자리가 없어 청년 실업자들이 수두룩한 이 마당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았거나 아들, 딸들이 일찍 죽어 갈 곳 없는 불쌍한 손자, 손녀들을 키우기 위해 그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일하러 나간다.

송이와 철이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렇다. 송이는 돌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그 후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할아버지는 천식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셨고 할머니가 청소 일을 해서 근근이 생활하지만 할머니도 관절염이 있어서 몸 상태가 별로 안 좋다.

그래도 할머니는 열심히 일한다. 송이에게 책가방을 사주기 위해서다. 송이는 20일 후면 절에 간다. 스님이 송이는 속세에서 살면 고생을 많이 한다고 해서 보내는 거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돈이 부족한 것도 이유일 거다. 하지만 송이는 20일 후면 학교에 가는 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꾸 책가방을 사달라고 한다. 마음 같아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책가방을 사주고 싶겠지만 돈이 없다.

이런 글을 읽었을 때 절에 가는 송이도 가여웠지만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손녀딸을 보내야만 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불쌍했다. 그 어린 손녀딸을 보내는 기분은 어떨까? 아마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책가방 하나 사 줄 몇만 원이 없어서 퇴원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할아버지도 시장에 장사하러 가고 할머니도 거의 쉬지 않고 청소 일을 한다.

정말 딱 3만 원이 없어서 힘들게 일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자 부안에 한번 나갔다 오면 기본으로 1~2만 원은 쓰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먹고 사는 사람들은 송이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동네마다 박스나 빈 병을 주워서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꼭 있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도 바구니나 모자를 앞에 놓고 구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분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편하게 사는 거다. 배가 고플 때 내 마음대로 밥이나 옷장에 몰래 숨겨둔 과자도 먹을 수 있고 주말에 나가면 먹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송이나 철이에겐 헛된 바람일 뿐이다. 쌀독에 쌀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무엇보다 그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이젠 정말 돈을 조금만 써야지 하면서도 막상 나가면 ‘1주일에 한 번 밖에 못 나오는데 이왕 나온 김에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다음 주에 안 나와야지’ 한다. 하지만 역시 자기 최면일 뿐. 결국 다음 주에도 또 나가고 만다.

‘할머니에게 용돈 2만 원은 200만 원’이라던 어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은 뒤론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놀러 갈 때마다 괜찮다고 해도 부득이 내 손에 쥐여 주시던 만 원짜리 몇 장. 장롱 구석에 꽁꽁 싸매어져 있던 지폐들.

예전엔 생각 없이 그냥 받았는데 이제부턴 받으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노동자나 가난한 사람에게 별로 관심 있는 편이 아니었기에 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앞으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겠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편집: 정지은 편집담당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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