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꽃이요 사랑입니다.

(선운사 꽃무릇)

-한충호-

 

 이아침도 고운 꽃 하나

그대에게로 건너가

사랑으로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꽃이 그리하듯

사랑 또한 그대에게 머물 때

비로소 미소로 피는 것을 봅니다.

 

아무리 많은 날들이

내 안에 머물러

꽃이 되고자,

사랑이 되고자 했지만

외기러기 울음처럼 하늘을 비껴갔지요.

 

그대 멀리 있어도,

잠깐씩 일어서지 못하는 아침이어도

나는 볼 수 있습니다.

내 안에서 빛나는 그대를

또 사랑을

 

그대는 정녕 꽃이며 사랑입니다.

 

다시 가을이 붉은 그리움으로 물이 듭니다. 누구나 한번쯤 알았던 그리움의 병이 꽃으로 피어나는 까닭입니다. 불갑사의 상사화, 그리고 선운사의 상사화. 그 그리움이 꽃이 된 기막힌 전설이 절과 스님과 함께여서인지 상사화의 붉은 가슴은 유독 절집에서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창문 아래 피어나기 시작하는 상사화의 붉은 얼굴을 봅니다. 꽃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 집안에서 화초로 키우는 것을 꺼리는 시선도 있습니다만 꽃의 모양도 좋지만 그 안에 간직한 그 고운 사랑이 안타깝고 부러워 옮겨놓은 꽃들이 올 가을에는 긴 가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법 자태를 뽐내며 피어오릅니다. 하긴 그 사랑, 그 그리움을 감히 가뭄이라고 앞을 막겠습니까.

초승달이 여릿여릿한 모습으로 마당에 내려서는 밤이면 그 꽃들이 내어내는 연가를 들으러 밤으로 나도 따라나섭니다. 꽃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꽃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섬돌아래서 노래를 내어주는 귀뚜라미와 또 가을의 떠남을 더 아쉽게 노래하는 여치의 목매인 연가들이 함께 어울려 가을을 익혀가고 사랑을 익혀가고 있었습니다. 홀로 가슴 아파하고 홀로 간직하겠다고 꼭꼭 싸매고 누워있는 우리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지나버린 것들이 아쉽고 가슴 아프기만 한 것도 우리네뿐인 것 같습니다. 애써 우리네의 가슴을 그 꽃들에게 그 풀벌레의 노래 소리에 같다 붙이려하지만 그 꽃은 꽃으로서 미소를 내어주고 그 풀벌레들은 노래로서 가을을 내어주고 있을 뿐 슬픔도 아쉬움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공연스레 우리의 마음이 앞서나가 꽃들에게 그리움의 수식어를 쥐어주고 또 풀벌레의 노래에게는 슬픔의 멍에를 얹어두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는 이미 지나버린 사랑도 이미 묵어버린 그리움도 아픔으로 보시지 마시고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그냥 홀로 있게 하시고 새로운 사랑 하나 내어 가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것은 물이거나 바람만이 아닙니다. 그대도 흐르고 있습니다. 물이나 바람 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대에게 꽃을 꽃으로 보게 하고 노래를 노래이게 할 것입니다.

이 가을에는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글·사진 선운사에서 상사화 같은 그리움을 안고 한충호

한충호  5003414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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