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의 당대표가 대국민 선전포고를 하는 나라가 정상인가?

역사전쟁?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7일 ”이제 역사전쟁이 시작됐으며, 우리 학생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만 하는 전쟁“ 라고 대국민 전쟁을 선포하였다. 집권 여당의 당대표가 국민을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는 나라, 이게 정상인가? 대 국민 선전포고가 옳지 않음을 다음의 그의 말을 부분 인용하면서 확인해 보기로 하자.

새누리당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긴급정책의원총회을 마친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및 의원들이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만들기‘ 결의문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김경호 한겨레신문 선임기자의 사진-> 설명에서

그리고 17일 행주산성에서 열린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산악회 발대식 축사에서 김무성 대표는 “국사학자 90% 좌파…국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단다. 90%의 국사학자들이 반대하는 일을 하겠다는 말이 된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국사학자는 국사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그들 전문가 90%가 지지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맞는 것일까? 국사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김무성 대표의 생각이 옳은 일일까?

이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수십 년간 연구한 학자들의 90%가 틀렸다고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을까? 과연 누구의 말을 믿는 게 옳은 일이겠는가? 더구나 ‘90%가 틀리고 10%가 맞다’고 판정하는 사람이 역사의 비전문가라면 말해 무엇하랴? 소가 웃을 기막힌 일이다.

”지금 학생들이 우리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배우는 게 현실“이라고 하면서 이런 역사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의 실체가 무엇일까? ‘정의로운 방법이 아니라 기회주의로 득세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교과서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부정한 기회주의자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무성 대표는 스스로 ‘나는 정의롭지 못한 기회주의로 득세를 한 사람’이라고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말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실제로 이 나라를 위해서 애쓴 독립지사와 독립유공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일제 시대에 그들에게 붙은 ‘불령선인’이라는 딱지 때문에 옥살이를 했고, 못 먹고 굶주렸으며, 자식들을 가르칠 수도 없었다. 돈이 없기도 했지만, ‘불령선인’이란 딱지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셋방살이 하층민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죽하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겠는가? 지금 그들은 3대가 아니라 4대째 가난하고 힘드는 하층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배층에 있는 세력들은 분명 일제시대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자손들이다. 그들이 일제시대에 친일을 했든지 아니면 부일을 했든지 대부분이 일본에 순응을 하면서 적당히 눈치껏 살았던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사책의 서술은 잘못된 게 아니다. 다만 친일식민사관과는 차이가 있는 서술임에 틀림이 없다. 김무성 대표의 말에 따르면 국사학자들의 90%는 이제 친일식민사관을 벗어나서 우리 민족사관을 세워가려고 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10%는 아직도 일제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식민사관의 학자들은 옳고 민족사관을 가진 사람들은 틀리다니 어불성설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집권 여당의 대표이고,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라니 이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럽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로 전환돼 있다“면서 ”그들에 의해 쓰인 중·고교 교과서는 현대사를 부정적 사관으로 기술하고, 패배한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친일식민사관이 아니면 좌파인가? 진정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역사를 망쳐 놓은 친일식민사관이 아닐까? 바른 역사관으로 친일사관을 벗어나는 게 좌파라면 ‘우리가 좌파가 되지 않는 길’은 <친일, 식민사관의 숭배>라는 말이 된다. 이게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집권당의 목소리이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주장할 말인가?

”논리적으로는 현재 나와 있는 좌편향 교과서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고 수정해서 학생에게 가르치는 게 맞다“, ”그러나 좌파의 사슬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국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 좌파의 사슬이 강해서 국민들과의 전쟁을 선포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집권여당의 대표가 국민들에게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이제 전쟁을 치러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힘센 여당의 대표가 전쟁을 선포하였으니,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온 국민은 이제 생사여탈권을 여당의 대표에게 맡겨야 한다. 내 목숨조차 내 맡기고 살아야 하는 불쌍한 국민이 되었다. 전쟁에서 죽고 사는 것은 힘있는 사람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김 대표는 지난 2013년 교학사가 역사교과서를 발행했으나 좌파 진영의 압박으로 채택률이 사실상 전무했다는 점을 들었다.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도 바뀌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정권이 10번 바뀌어도 바꿀 수 없는 교과서를 만들자는 게 현 정부의 뜻“이란다. 과연 이렇게 졸속으로 그리고 이념전쟁을 치르면서 만든 교과서가 영원한 정통 역사가 될 수 있을까? 조선 실록의 경우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이 있어도 그것을 고칠 수 없게 했기에 역사로서 가치가 있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뜯어 고치면 정사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역사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자신들의 입맛대로 만들어서 고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독재적인 발상이 아닌지 묻고 싶다.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가 집필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결과가 잘못되면 채택될 수 없다“ 역사책을 만드는데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예를 들어 맛있는 잔칫상을 만들려고 하는데 음식 전문가가 아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겠다는 말이다. 혹시 영양사 같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잔칫상을 만드는데, 사회운동가나 정치가, 사회학자, 글쓰는 작가 같은 전문가들이 필요 할까? 그것은 분명 아니다. 이 말에는 숨은 메시지가 있다.

국사교과서를 만드는데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물러서 입맛에 맞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견해가 다른 국사학자들과 협의해가면서 교과서를 만든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마당에 ‘사회 각 분야의전문가를 집필진’으로 구성한다는 말은 모순이다. 그런 교과서가 국사학자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휘둘릴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면 논리적인 비약일까?

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집권당의 논리가 빈약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학자들의 이의 신청이 들어와도 대꾸할 만한 이론적 준비가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적어도 대국민 선전포고를 한 집권여당 대표의 논리로는 국민을 설득할만한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대국민 선전포고는 거두어들이는 게 좋겠다는 귀띔을 해주고 싶다.

2015.10.17.23:23‘

 

편집 : 오성근 편집인

김선태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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