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자꾸 온다.

“민문연 회원님. 민중총궐기 14일 1시 대학로로 모여 주십시오.”

“11/14(토), 민중총궐기 2:30 시청광장, 평통사 깃발 뜹니다. 함께해 주세요.”

▲ 지난 11월 7일 열린 국정화반대 집회. 14일을 대신해 미리 참석했다.

이번 주 '민중총궐기'라고 모이라고 한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에 반대하러 14일에는 시청광장으로 가야 하는데 한겨레주주통신원 총회 때문에 군산에 가야 한다. 시청광장이 더 중요한가? 군산이 더 중요한가? 책임 때문에 할 수 없어 군산을 향하지만, 마음은 '민중총궐기'에 쏠려 있다.

나는 197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국정교과서 세대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깎아 내리고,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 미화하고, 독재에 저항한 학생, 시민운동가, 정치인을 용공세력이라 거짓말 하고, 유신독재를 국민을 위한 통치행위라 쓴 국사(국정교과서)로 74년부터 77년까지 4년을 배웠다. 그 세대임을 잊고, 그 때 일어났던 황당한 일도 잊고 지냈는데, 박근혜 정권이 이를 상기시켜준다.

1975년 고등학교 1학년 초여름 반공수업이었나?

S대 출신의 30대 초반 노총각선생님은 유신헌법을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박정희를 찬양하는데 열을 올리셨다. 나라를 살리고 가난을 없애고 간첩을 몰아내고 등등 늘 듣던 말이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그 말이 듣기 싫었다. 그래서 얄미운 질문을 하고 말았다.

“장기집권과 단기집권의 장단점을 설명해주세요.”

그 순간 선생님은 좀 놀라신 것 같았지만, 불순함은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장기집권에 대한 장점들을 한참 말씀해주셨다. 정권이 안정되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할 수 있고 불라불라불라~~ 나는 또 속이 뒤틀렸다. 그래서 더 얄미운 질문을 했다.

“선생님들은 왜 학교를 몇 년마다 옮겨 다니십니까?”

선생님은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몇 번의 날선 질문과 응답이 오가다 수업종이 울림과 동시에 이렇게 결론이 났다.

“너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나는 더 이상은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교무실에 가서 다른 대꾸 없이 “네~네~”로 일관했는데, 선생님은 창피를 당한 것에 성이 안 풀렸는지, 아니면 내가 수상쩍다고 생각했는지 부모님 면담을 해야 한다고 모시고 오라고 했다.

유신헌법을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 해먹으려고 만든 법이라고 생각하셨던 엄마는 선생님과 면담을 마친 후 나를 꾸짖는 대신 화가 나서 “선생님이 뭐 형사냐? 형사? 그런 일로 사람을 오라 가라 하게?” 하셨지만, “앞으로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부모님 호출사건은 고등학교 내내 선생님을 멀리하게 만든 사건이지만,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의 태도였다. 어떤 아이들이 나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슬쩍 다가와서 은근 공감을 표시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를 멀리 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쓰는 형은 아니었는데도 아이들의 태도에 좀 위축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들은 국정교과서와 선생님의 유신 찬양과 용공분자 발언에 이미 세뇌된 것이기에.

또 1976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교련 수업이었나? 일 년에 한 번, 학년별로 몇 개 반 학생들을 묶어 어떤 건물에 입소하여 정신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미국대통령선거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지미 카터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몇몇 아이들이 큰 일이 난 것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소동을 피웠다. 우리나라는 이제 어떻게 되느냐는 거였다. 제법 많은 아이들도 걱정이 된다며 따라서 울먹거렸다.

그 당시 카터는 주한미군철수 공약을 내걸었는데 인권 문제로 약점이 잡혀있는 박정희 유신 정권은 선거 전부터 포드가 당선되기를 희망하면서 카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퍼뜨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카터가 되면 미군이 철수하고 우리나라는 공산화가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울고불고 수군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와 친한 몇 아이들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세뇌교육이 아이들을 우습게 만든 거였다.

그로부터 3년 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이 죽었다. 장례식 날,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길거리에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마치 부모가 돌아가신 듯 슬피 울었다. 어떻게 저리 맹목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데모하는 대학생들 때려잡아 넣고, 죄 없는 사람 간첩 만들어 죽이고, 오죽했으면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죽었는데... 박정희란 인간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자신에게는 어떤 이익을 주었는지 몰라도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던 독재자인데.. 그때 또 느꼈다. 세뇌교육이 참 무섭구나.

지금 정권도 세뇌가 무섭다는 것을 안다. 아니 대단히 좋다는 것을 안다. 박근혜정권은 50대 이상 고연령층의 지지로 유지되는 정부다. 그런데 바로 이 세대가 국정화 교육세대가 아닌가? 중고 시절, 주입된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개념은 30년, 40년이 지나도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이를 노리는 거리고 본다. 지금의 10대를 30년, 40년 동안 박정희와 더불어 박근혜 찬양의 기수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틀어쥐고 예전의 '하이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쉽게 되진 않을 것이다. 얌전한 고등학생도, 취업전선에서 정신이 없는 대학생도, 또 나같이 쉰이 넘은 아줌마도 용감하게 나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14일 '민중총궐기'가 아주 중요한 행사인데 못 가게 되었다. 다음엔 열일을 제쳐놓고 뛰어갈 것이다.

▲ 추적추적 비가 오는데도 생각보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편집: 김유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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