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감싼 울산바위

설악산 눈 산행에 홀딱 반한 남편이 3주 연속 설악산 타령을 한다. 이번에는 흔들바위 지나 울산바위를 가자고 한다. 꼭대기 빼고는 눈은 거의 다 녹았을 테고... 비 올 확률도 70%라는데...

1976년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처음으로 비선대와 흔들바위에 갔다. 가고 싶지 않은 수학여행이라 그랬을까? 흔들바위를 옆에 두고 찍은 사진만 있고 별 다른 기억이 없다. 그 이후로도 흔들바위는 간 적이 없다. 등반이 아니라 관광이라고 생각했기에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로 가는 길이 그때 있었을까?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흔들바위 지나 울산바위로 가는 길은 1985년 열린 것 같다. ‘공포의 808 철층계’가 이 때 설치되었다. 이 층계는 울산바위 정상으로 가는 경사 구간에 설치되었는데 워낙 급경사에 폭도 좁아 ‘공포’란 말이 붙었다. 그 후 부식과 낙석 및 눈사태 피해로 철거가 결정되었다. 2012년 11월 우회탐방로가 개설되면서 2013년 완전 철거되었다.

사진 출처 : 설악산 국립공원
사진 출처 : 설악산 국립공원

설악동에서 흔들바위로 가는 길은 2.8km다. 어린아이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수월하다. 다만 깎아지른 경사면이 바로 옆에 있어 해빙기와 장마 후에는 낙석을 좀 조심해할 듯싶다.  

신흥사를 지나 흔들바위 가는 길 초입에서 만난 70~80도 경사면
신흥사를 지나 흔들바위 가는 길 초입에서 만난 70~80도 경사면

이렇게 경사가 급하다 보니 떨어져 나와 뒹구는 돌들이 많았다. 돌이 많으면 가만 둘 한국 사람들이 아니다. 굽이도는 골목마다 정성스레 돌탑을 쌓아놓았다. 나도 하나 얹었다. 나의 염원은 뭘까? 

흔들바위는 조계암에 있다. 조계암은 신흥사 부속암자로 석굴사원이다. 652년 신라 자장법사가 창건했다 하니 약 1400년 되었다. 위풍당당한 울산바위를 뒤로 하고 동그란 흔들바위를 앞에 두고 있는 석굴은 자연 그대로라 한다. 많은 수도승들이 이 석굴을 수행처로 삼아 수행하였다 하니...  범상치 않은 석굴의 기운이 느껴진다. 

석굴과 흔들바위, 석굴 뒤로 구름에 가려진 울산바위가 보인다. 
석굴과 흔들바위, 석굴 뒤로 구름에 가려진 울산바위가 보인다. 
석굴 내부
석굴 내부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까지는 1km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돌층계와 나무와 쇠로 만든 층계 2,000개는 올라가야 울산바위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어린아이나 노약자가 가기는 좀 무리가 아닐까 한다. 성인도 내려올 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내려와야 한다.

가는 도중 전망대를 만났다. 구름에 가려 봉우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구름과 어우러진 신비한 자연은  빗속 산행의 묘미다.  

울산바위로 가는 길은 참으로 잔인하다. 계속 이어지는 층계는 바위에 쇠기둥을 박고 만들었다. 꼭 울산바위 정상을 올라가야만 할까? 멀리서 바라보는 전망대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을까? 바위는 무생물이라 마구 찔러도 되는 존재라 생각했을까? 그 모습에 잠시 몸서리쳐지는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

울산바위 층계
울산바위 층계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편치 않은 마음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층계를 올라가다가 잠시 숨을 고르느라고 쉬었다.

오던 길을 돌아보니 세상에나... 구름이 없었으면 토왕성폭포에서 대청봉을 지나 황철봉까지 이어지는 눈 덮인 능선이 그 자태를 뽐낼 수 있겠지만... 어찌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의 군무에 비할쏘냐.

구름이 춤을 춘다승무를 추는 하얀 학의 날갯짓처럼 천천히 날개를 편다. 절제된 동작으로 물 흐르듯 부드럽게 날개를 퍼덕이며 춤사위를 펼친다.  

그 넓은 날개로 능선을 휘감아 덮을 때까지 그 자리 그대로 서서 구름의 춤을 감상했다. 숨을 멈춘 채 경탄했다. 이 모습을 보여주려 비 오는 산이 우릴 불렀을까?

울산바위는 재미난 전설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신이 가장 멋진 산을 만들려고 전국에 있는 바위들에게 금강산으로 모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울산바위는 덩치가 워낙 커서 가는데 시간이 걸렸다. 힘들게 가다 중간에 설악산을 만났다. 울산바위는 몸도 지친데다 이 정도로 멋지면 금강산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에 설악산에 자리를 잡고 말았다설악산이 금강산에 미치지 못할쏘냐.. 라고 생각하는 설악산 사랑쟁이들이 만든 전설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설악산을 둘러 싼 울산바위는 설악산 대표 명물이다. 

오늘 볼 것은 다 봤다는 생각에 그만 산을 내려가도 되겠지만... 그래도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구름이 울산바위까지 밀려와 가까운 바위 외에는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세계다. 구름에 가려지는 바위가 아니라 꼭 구름이 스며드는 바위 같다. 바위와 소나무와 구름의 어울림이 퍽 운치 있다.  

울산바위는 수직암릉이다. 높이가 873m이고 둘레가 4km에 이르는 거대한 봉우리 6개로 되어있다. 올라가다 만난 푯말 설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고서에 의하면 기이한 봉우리가 울타리를 친 것 같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한다. 그럼 설악산 울타리 바위라는 뜻 아닌가? 울타리 바위가 설악산 북부를 감싸고 있으니 얼마나 장대한가? 하지만 가까이서는 그 장대함을 느낄 수 없다. 멀리서 볼 때 그 장대함을 더 즐길 수 있을 터인데... 끝까지 올라가보려는 인간의 욕심이 자꾸 탐욕으로 느껴진다

정상 바위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바위와 함께 구름과 안개가 노니는 선계다.

덕분에 이런 사진도 한 컷 남겼다. 

하산 시 신흥사 도착 전,  내원암골 계곡을 마주보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산수화 한 점 보여준다. 

설악산 눈 산행 1편에서 선보였던 산수화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눈은 녹았지만 이번엔 구름이 산수화의 정취를 살려준다. 구름아...  참 고맙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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