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놀고, 배우며 연대하다.' 다향이한테 제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주와 전북 부안의 산골에서 기본기를 닦았으니까 이제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있는지를 제 스스로 확인하기를 바랐던 겁니다.

다향이와는 달리 대안학교 '로드스꼴라'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주제를 정해서 1학기에는 국내여행 한 달, 2학기에는 한 달여 동안 해외여행을 하지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특정 지역(국가)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토론하며 강의를 듣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후감과 보고서를 빠짐없이 써내야 합니다. 여행을 가서는 모둠별로 돌아다니고, 다녀와서도 역시 보고서를 제출해야합니다. 글 쓰고, 사진 찍고, 음악을 만들고, 또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책을 펴내기도 합니다.

올 1년 동안 다향이는 주말로드스꼴라에 다녔습니다. 주말 반은 지난해 하반기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로드스꼴라의 길별(선생님)들이 지쳤고, 내부적으로 정리할 것도 많아서 올해는 주말로드스꼴라를 운영하기로 했다지요. 그 말을 듣고, ‘잘됐다’싶기도 했습니다.

열일곱 살이 돼서 처음으로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는데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염려되었거든요. 토요일은 학교에 가고, 영어학원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다향이의 영어를 책임지겠다는 후배도 나섰고요. 그래서 다향이는 일주일에 세 번은 학원에 가고, 하루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다향이는 매일 밤 자정 전에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습니다.

독후감을 제출하기 전날에는 새벽까지 매달렸고, 영어는 알파벳부터 배우느라 힘들어 했지요.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에만 학교를 가는데도 늘 바빠서 애를 먹었습니다. 동학혁명을 공부하러 정읍에, 5.18항쟁을 공부하러 광주에, 여순사건을 공부하러 현장에 다녀왔고 내년 1월에는 4.3을 배우러 제주에 갑니다. 보름 동안 까레이스키의 발자취를 찾아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도 다녀왔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향이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같은 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또다시 면접을 치렀습니다. 내년부터는 주말반이 아닌 '로드스꼴라' 7기에 다니길 원했고 합격했습니다. 그 과정이 올해보다 몇 배나 더 힘들겠지만 본인이 원하니까 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부모로서 아이가 좋아하는 일에 조금 더 깊이 몰두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요. 로드스꼴라의 학비는 비싼 편이 아니지만 여행비가 적지 않게 들어갑니다. 그걸 감당하기로 하면서 다향이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지난 가을 아빠와 전북 부안군 내소사에서

 

“다향아,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하라는 게 꼭 집을 나가라는 게 아니라 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면 좋겠다는 얘기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지만 널 로드스꼴라에 보내는 건 넓은 세상과 다양한 문화, 사람들을 접하면서 졸업할 무렵에는 네가 정말 원하는 일을 찾았으면 하기 때문이야. 엄마아빠의 몫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해. 그 다음부터는 온전히 네 몫이고.”

“알아. 아빠가 여러 번 말했잖아.”

“…….”

이제 다향이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지난 17년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다향이가 반듯하게 잘 자라주었기에 때문입니다. 이제 제 세상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마무리하는 다향이를 마음속으로 응원할 뿐이지요. 다향이가 제 길을 가는 동안 아빠도 아빠의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끝>

 

※ 이것으로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연재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어떻게 남자의 몸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림하면서 아이를 키워?” 그것은 엄마나 아내에게도 똑같이 질문되어야 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건 단 한 번도 아내나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합의를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참고: 위키백과에 소개된 오성근 주주통신원:
http://ko.wikipedia.org/wiki/%EC%98%A4%EC%84%B1%EA%B7%BC_(1965%EB%85%84)

 

편집: 이동구 에디터

오성근 주주통신원  babsang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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