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들에게 배우는 인생

손녀의 입학을 축하하고 싶어서 하굣길에 풍성한 꽃다발을 건네주고 싶었다. 공방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길을 나서면서 아내와 꽃을 사면서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다. 나는 화려하고 풍성하게 꾸민 장미꽃다발을 사주고 싶었는데, 성수동에서 동탄까지 이동하는 길에 아무리 찾아도 꽃집이 보이지 않았다.

힘들게 찾은 꽃집에는 내가 찾는 꽃은 없었고 작은 꽃 화분 2개를 사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꽃 화분은 아직 봉오리 상태여서, 활짝 핀 꽃다발을 사고 싶은 내 마음에는 미치지 못하는 선물이라 아쉬웠다.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아내는 작은 꽃 화분도 충분하다고 하니 취향 차이로 옥신각신하며 손녀의 하교 시간에 맞춰 가느라 마음이 바빴다.

초등학교 입학선물을 전달하고, 손녀의 하굣길에서
초등학교 입학선물을 전달하고, 손녀의 하굣길에서

저만치 학교 앞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오는 손녀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굣길에 학교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지 우리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어주는 손녀를 보며 풍성한 꽃다발이 아닌 소박한 작은 꽃 화분 두 개를 안겼다. 꽃다발이든 화분이든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를 반기며 행복해하는 손녀를 보면서 마음이 뿌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보내준 사진 속에는 지난번 손녀에게 선물한 꽃 화분이 있었다. 어느새 꽃봉오리가 활짝 핀 상태로 그간 정성스럽게 가꾸었는지 꽃잎도 싱그러워 보였다. 딸의 말을 들으니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매일 물을 주고 베란다 문을 열어 직접 햇볕을 쬐게 해주었다니 정성스럽게 꽃을 가꾸는 손녀의 정성에 감동이 되었다. 우리 손녀가 미래의 원예가가 되는 건 아닐까 앞질러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꽃이 활짝 필 때까지 매일 물을 주고 햇볕을 보게 해준 손녀
꽃이 활짝 필 때까지 매일 물을 주고 햇볕을 보게 해준 손녀

꽃 화분 사진을 같이 보던 아내도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활짝 핀 풍성한 꽃다발보다 어쩌면 아내의 말대로 꽃 화분이 훨씬 나은 선물일 수도 있겠다는 반성이 들었다. 직접 정성을 들여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보았을 손녀의 기쁨은 잠깐의 꽃다발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 오래 갔으리라 짐작했다. 더 커 보이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의 허영을 순수한 동심의 손녀가 한 수 가르쳐준 것 같았다. 나도 안다. 내가 어리석은 할아버지라는 것을...

그 이후로 딸이 알려주어 손녀들과 함께 알사탕이라는 뮤지컬을 보러 갔다. 알사탕이 해외에서 상도 탄 꽤 유명한 동화라는 것도 덕분에 알게 되었다. 주인공이 알사탕을 먹으면 그 알사탕을 닮은 사물이나 사람의 진심이 들린다는 이야기인데 재밌는 부분도 있고 감동도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소리도 알게 되는 동화다.

뮤지컬 '알사탕' 무대인사
뮤지컬 '알사탕' 무대인사

뮤지컬에서 늘 잔소리하는 아빠의 진심이 사랑이라는 것을 주인공이 알게 되는 부분에 특히 눈길이 갔다. 알사탕에서 아이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어렵지 않게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도 저렇게 하지 않았나 싶었다.

잔소리를 듣는 딸의 마음을 생각해보지 못하고 내가 할 말만 늘어놓았다는 걸, 내가 기대하는 바만 늘어놓았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다. 알사탕을 하나 먹으면 상대방의 진심을 알게 되는 마법은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들기에 나의 잔소리도 현실에서는 그저 듣기 싫은 소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 되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뮤지컬은 손녀들이 아니라 내가 봐야 할 공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알사탕'에서 주인공이 신비한 알사탕을 사게 된 문방구
뮤지컬 '알사탕'에서 주인공이 신비한 알사탕을 사게 된 문방구

뮤지컬 공연을 마치고 기념품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는 손녀들을 보면서 사랑을 이유로 잔소리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 했던 실수를 손녀들에게는 반복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나의 소망이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의아하긴 하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같은 깨달음을 또 얻으려면 자주 손녀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시간을 냈던 것이 되려 나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고 지혜로운 자가 되고픈 소망을 갖게 해준다. 어린 손녀들이 어쩌면 내게 소중한 스승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광한 주주통신원  myshoemak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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