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주와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가 타이난(臺南)입니다. 기원전부터 천년을 신라의 수도로 지내온 경주의 역사와 비교하기는 어불성설이지만 최초로 왕부가 위치했던 덕분에 4~5백 년의 역사를 가진, 흔적들이 남아있는 고도입니다.

타이난에서 오래된 음식점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의 간단한 점심 메뉴. 저래 보여도 다 맛있습니다. 나는 볶음밥과 부추 새우만두를 즐겨 먹었습니다.
친구의 간단한 점심 메뉴. 저래 보여도 다 맛있습니다. 나는 볶음밥과 부추 새우만두를 즐겨 먹었습니다.

蔣介石을 따라 대만에 온 사람 중에는 뒷골목 출신들도 있었습니다. 장개석이 지하조직과 연관되었다는 이야기의 연장인데, ‘청방’이란 조직에 속한 인물 중에 머리가 있고, 학식이 좀 있는 사람이 타이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이 사람은 친구를 불러 놀 때마다 음식을 해서 내놓았답니다. 못하는 음식이 없고, 얼마나 맛있는지 친구들이 졸라서 식당을 열었습니다. 老友餐廳, 오랜 친구 그리고 좋은 친구란  의미의 상호를 가진 식당이 문을 연 계기입니다.

최초로 식당을 했던 자리. 현재 식당의 가장 왼쪽
최초로 식당을 했던 자리. 현재 식당의 가장 왼쪽

대만과는 다른 중국 본토의 맛있는 음식을 접한 이곳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자 대만인 아내가 불평하기 시작했답니다. 홀연히 사라진 남편은 중국으로 들어가 고향에서 한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 옆 칸에 식당을 차렸습니다.

얼마가 지나자 이 여자가 짜증을 냈습니다. 본부인이 자기를 중국에서 온 여자라고 업신여긴다면서. 그러자 이 남자가 또 사라지더니 얼마 지나서 중국에서 또 한 여자를 데려와 그 옆에 식당을 차렸습니다.

나를 처음 그 식당에 데려간 친구 이야기로는 처음 사장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대만부인과 그 자녀가 식당 인수를 원하지 않아 두 번째 여자인지 세 번째 여자가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주 갔지만 룸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놓인 간이 테이블에서 식사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를 찾아온 한국 지인들은 꼭 가는 필수 코스였습니다.

설 무렵에 친구 부부와 딸이 대만으로 왔습니다. 대만 북쪽 일정을 마치고 설 전날인가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대만의 설 명절은 한국의 귀성 전쟁 저리가라입니다. 이미 열차표도 없고, 고속버스표도 어떻게 구할지 암담했습니다. 저는 먼 남쪽 도시에서 차를 가지고 300킬로 넘는 타이베이를 왕복할 수도 없고 속만 끓이고 있었습니다.

이 용감한 가족은 어떻게 버스표를 구했고, 예상 시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게 도착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핸드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가고, 맛집도 잘도 찾아다닙니다. 가끔 식자우환이 있지요. 알아서 병이 된 경우 말입니다.

북쪽에서 여행 중에 딸이 추천받은 자료를 보고 어렵게 찾아간 음식점이 그 흔한 牛肉麵. 쇠고기 국수입니다. 우리 곰탕이나 설렁탕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네는 한 끼는 눈감고 억지로 먹어도 연속으로 두 끼는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맛있다는 음식점에서 먹은 우육면이 그 맛이면 다른 음식은 먹어보나 마나라는 생각이 든 이 가족은 여행 내내 우육면 비슷한 집이 아닌 곳만 찾아다녔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는 김동호 줘야 한다고 뜯지도 못하게 했으니, 이혼 안 하고 아직까지 살아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현 식당의 중간 칸.
현 식당의 중간 칸.
직접 빚어 만든 만두(교자) 어떤 한국 친구는 홍콩 딤섬보다 맛있다고도 함.
직접 빚어 만든 만두(교자) 어떤 한국 친구는 홍콩 딤섬보다 맛있다고도 함.

초주검이 되어 저를 찾아온 이들을 모시고 老友餐廳을 찾아갔습니다. 불안한 예상은 맞았습니다. 역시 문을 열지 않았더군요. 철문에 붙은 영업일에 갔습니다. 익숙한 종업원이 안 보이고 도시풍의 젊은 여자가 식탁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주인 딸일 거라는 예감이 들어 붙잡고 물었습니다. 주인 딸이 맞고 타이베이에서 살고 있답니다. 설 연휴에 직원들이 부족해 자기가 매년 내려와 돕고 있다더군요.

어머니가 사장 부인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랍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내 앞에 있는 젊은 여자의 아버지가 사장인지, 그리고 두 번째 여자인지 세 번째 여자인지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하게 물어볼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사장 부인이냐고 물었는데 대답은 더 헷갈립니다. 자기 어머니는 직원이었는데 사장 부인과 가족이 식당 인수를 안 해서 어머니가 맡았답니다. 못해도 수십억 가는 재산을 점원이 물려받았다는 말을 이해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더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모두의 상상에 맡깁니다.

참고로 딸은 참 미인인데 여주인은 늙어 꼬부라진, 손님들에게 툴툴거리는 괴팍한 할머니였습니다.

좌로부터 가장 오래된 첫 번째 식당. 주로 조리를 하는 곳. 중앙은 두 번째, 우측은 실내 테이블이 있는 방.
좌로부터 가장 오래된 첫 번째 식당. 주로 조리를 하는 곳. 중앙은 두 번째, 우측은 실내 테이블이 있는 방.

그 이후로 사장이 바뀌고 음식 맛이 변하더니, 아는 직원들도 다 바뀐 후에는 맛이 형편없어졌습니다. 조미료 맛이 강해지고 직접 빚어 싱싱했던 만두는 냉동고에 들어있다 나와서 그런지 부추가 물러터진 맛이 납니다. 음식의 종류는 그대로지만 두세 번 더 가고 다시는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식당도, 이름도, 메뉴도 여전한데, 줄 서서 기다리던 음식점은 언제 가도 자리가 남아있는 썰렁하고 한산한 식당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바뀌니 역사도 이야기도 사라졌습니다. 아쉬운 老友餐廳!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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