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미경 주주통신원

2009년 1월 20일. 처음 그 기사를 접하고는 믿을 수 없었다. 무슨 인질극을 벌인 것도 아닌데, 살아보자고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의 안전 아니 진압경찰의 안전까지도 염두에 두지 않고 강경진압을 했다. 그것도 망루에 올라간 지 하루도 안 되서 말이다. 그 무모하고 잔인한 진압으로 6명의 사람이 불에 타 죽고 떨어져 죽었다. 용산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라에 큰 소용돌이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국가가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국민들은 조용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천주교에서 나섰다. 2009년 1월 31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이 용산참사 현장에서 첫 추모미사를 진행했다. 이후 4월 12일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에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이강서 신부를 용산에 파견했다. 강경진압을 한 남일당 건물의 이름을 따서 이강서 신부는 남일당 본당 신부가 되어 매일 미사를 진행했다.

참사 345일째, 2009년 12월 30일 용산참사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지만 진상규명에 미흡한 반쪽자리 해결이었다. 2010년 1월 6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를 위한 마지막 미사가 진행되었다.

용산을 생각하는 미사는 끝이 났을까? 아니다. 어제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5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난 2074일 되는 날이다. 그리고 제342차 용산 생명평화미사가 열린 날이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7시에는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용산참사를 기억하자는 미사가 열린다.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길 때 용산참사 같은 일이 일어난다. 국가와 자본이 국민의 노동과 삶을 하찮게 여길 때 쌍차해고노동자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하찮게 여길 때 강정해군기지와 밀양송전탑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 그리고 국가가 국민을 버릴 때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난다. 모두가 하나다.

우리 국민은 용산의 고통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나의 일이 아닌 철거민의 일이라고 침묵하고 빨리 묻어두려 했다. 결국 용산의 고통을 치유하지 못해 쌍용의 고통으로 이어졌고 세월호의 고통까지 왔다. 그런데도 우리는 300명 넘게 희생된 고통에도 시끄럽다고 묻어두자 한다. 중립을 지키자고 한다. 유족에게 양보하라고 한다. 앞으로 또 어떤 고통이 발생해야 정신을 차릴까? 그 고통이 바로 내 앞에, 내 발등에 떨어져야 그제야 정신을 차릴까?

9월 25일 용산생명평화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김인수신부는 이런 말을 했다. '생명의 시작은 무언가의 죽음 위에서 일어난다.’ 전태일의 죽음으로 근로기준법 시행은 눈을 떴다. 광주에서의 죽음을 시작으로 수많은 분신과 죽음 후에 민주화는 눈을 떴다. 하지만 지금의 위정자들은 그 어떤 죽음에도 눈을 뜨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수많은 죽음에 묻혀 그 죽음을 즐기며 그 죽음에 무뎌져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용산의 죽음의 4배로 돌아온 쌍용의 죽음, 쌍용의 죽음의 12배로 돌아온 세월호의 죽음.. 그리고 그 다음은? 세월호의 고통을 말도 안되는 경제문제로 끌어들여 덮자고 하고, 나 살기 바쁘다고 모른 척 침묵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그들의 죽음에서 어떤 생명의 시작도 갖지 못한다면.. 아마도 다음에 닥칠 고통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 모두는 그 고통을 군소리 없이 감수해야할 것이다.

참으로 암울하고 무언가가 터질 것 같지만 터지지는 않는 답답한 사회이다. 아래 집회라도 가서 소리라도 질러 보면 답답한 속이 좀 시원해질라나?

 

김미경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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