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요망 / 이곳은 화장실이 아닙니다 / 소변 금지”

문산행 풍산역에서 내리면, 개찰구로 오르는 계단 바로 옆 벽이다. 풍산역장 명의로 벽 양쪽에 각각 한 장씩 붙여 놓았다. 바로 위에는 CCTV가 설치돼 있고 ‘작동 중’임을 밝히고 있다. 언제부터 이런 방(榜)을 붙여 놓았을까? A4지 크기의 방은 습기로 여기저기 얼룩이 지고, 붙인 자국마저 너덜거린다. 빛바랜 종이색이 꾀죄죄하다.

 

'풍산역' 문산행 승차장 벽에 부착되어 있는 '소변금지 '  경고문과 노려보고 있는 CCTV
'풍산역' 문산행 승차장 벽에 부착되어 있는 '소변금지 ' 경고문과 노려보고 있는 CCTV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벌건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역사에서 누가 그런 짓을…. 나가다 말고 사무실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교실 만한 크기의 공간이 나온다. 텅 비어 있다. 가로질러 닫힌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이번에는 교실보다 조금 좁은 공간이다. 책상 네댓 개가 붙어 있다. 모두 외근 중인지 여직원 한 분만 보인다. 이상하게 여길까 봐, 먼저 용건부터 말했다. 경계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이내 미소를 띤다.

한 마디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소변은 고사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똥을 싸놓고 도망간 적도 있다고 했다. 전혀 예상 밖이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아하, 그래서 승강기를 비추는 CCTV가 따로 있었나?

 

승강기 안에서 일어난 전비를 기억해서일까? 24시간 승강기를 바라보는 풍산역 CCTV.
승강기 안에서 일어난 전비를 기억해서일까? 24시간 승강기를 바라보는 풍산역 CCTV.

 

“소변투척금지”

일전에 모래내 시장(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버스정류장에서 본 문구다. 자세히 보니 어떤 체육관에서 자기네 업체 홍보 겸해서 만들었다. 빨강, 노랑, 파랑, 하양, 검정 등 말 그대로 오색찬란하게 만든 현수막이다. 눈에 확 띄게 하려는 전략이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모래내시장 버스 정류장 앞에서 본  '소변투척금지' 경고문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모래내시장 버스 정류장 앞에서 본 '소변투척금지' 경고문

 

그나저나 오줌을 투척한다니? 오줌은 ‘싸다•누다•마렵다•갈기다’와 함께 쓰는 말이다. ‘소변투척’이란 말이 낯설다. 괜한 짓이려니 하면서 검색해 보니 놀랍다. 이미 이 정도라면 비록 뜨악해도 보편적인 용어로 인정해야 할 듯 싶다.

▲차 70대에 묻은 액체… 50대女, 부산 강서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돌며 소변 뿌렸다(중앙일보, 2021.7.23.)

▲부산외대 2층 보건실 옆 화장실 쓰레기통에 오줌봉지 4개 투척(한스경제, 2019.11.13.)

▲21일 낮 12시께 최모(41)씨는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 너럭바위 위에 준비해 온 소변을 뿌리다가… (MBN뉴스, 2016.7.24.)

 

내친 김에 공공장소에서 실례한 일을 검색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낯뜨거운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몇 가지만 추려본다.

▲동대구역 육교 밑은 '문없는 화장실', 도심공원·뒷골목 등은 야간 취객 '단골 방뇨지'(영남일보, 2008.4.22.)

▲SBS 예능 프로그램, 야심만만 만 명에게 물었습니다 시즌1 83화에서, 가수 이◯영이 엘리베이터에 노상방뇨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나무위키)

▲네덜란드항공 우슬루 회장이 소변을 본 곳은, 소치 올림픽 기간 푸틴 대통령이 머무르는 숙소의 담장! 러시아 군인들이 벙커로 끌고가…(경향신문, 2014.2.12.)

▲'이게 웬 망신이야' 호날두, 노상방뇨 중 경찰에 적발(jtbc 뉴스, 2015.6.3.)

 

2015년 6월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보도한 '호날두' 방뇨 사진 / jtbc 뉴스 갈무리
2015년 6월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보도한 '호날두' 방뇨 사진 / jtbc 뉴스 갈무리

 

남의 콩밭에 소 풀어 놓고도 할 말이 많은 세상이다. 들어보면 나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인이 공공장소에서 일을 치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변기송’ 정도는 이미 유치원 때 충분히 익히지 않았는가? 중독성이 강해서 웬만한 유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다 따라한다.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서
쉬! 쉬! 쉬!
쉬야는 변기 타고
랄라랄라 랄라라
변기야 쉬야할 때 또 만나자(하략).

 

※ 이 글은 고양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 [박춘근의 꼬장꼬장 밥보샘]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4994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