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하늘마을.
내가 사는 아파트다.
매주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재활용품을 내놓는다. 수거함이 따로 없다. 그때마다 지상 주차장 한쪽에 임시로 설치한다. 그러다 보니 경비원들은 토요일 아침부터 부산하다. 차주에게 연락해서 미리미리 자리를 확보한다. 불필요한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이런 일은 매주 되풀이된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경비원 말고 관리원의 몫이다.
관리원은 경비원보다 아랫사람이라고 한다. 아파트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만 따로 유니폼도 없고 쉼터도 없고 경비원보다 임금이 낮다. 경비원이 시키는 일을 한다. 당연히 경비원을 부릴 수는 없다. 볼 때마다 허름한 모자를 눌러쓰고 빗자루, 전정가위, 예초기 등을 들고 있다.
무슨 말 끝에 그는
"나도 경비를 해 봐서 알아요. 막말로 지나 나나 똑같은 주제에, 손 하나 까딱 않고 이래라저래라 하니 열 안 받겠어요? 거기다 반말은 왜 해. 나보다 어린 것들이….”
하면서 혀를 찼다.

요즘은 재활용품을 밤에 배출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 시각은 관리원이 퇴근한 뒤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활용품이 어지럽다. 다시 분리해서 정리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 관리원이 평소와 달리 07시경 출근하는 이유다.
월요일 아침마다 어느 동 할 것 없이 으레 불법 투기물이 즐비하다. 관리원들은 그때마다 홍역을 치른다. 그래서일까? 불법 폐기물에 붙은 ‘알림’을 보면 “CCTV 검색 가능합니다.”고 적고, “협조 감사드립니다.”로 맺고 있다.

 

하늘마을 ◯단지 ◯동 앞에 마구 버린 쓰레기더미
하늘마을 ◯단지 ◯동 앞에 마구 버린 쓰레기더미

 

이와 별도로 정성스럽게 방(榜)이 붙어 있다. 경고장이 아닌 호소문이다. 호칭도 ‘입주민 어르신’이다. 잘못이 없는데, 비굴할 정도로 나를 낮추었다. 막상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극존칭을 써 가면서 읍소하고 있다.

 

글재주 없는 아비는 필시 아들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못마땅한 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딴청을 부리다가 입을 쩝쩝 다신다. 아들에게 퉁바리맞은 아비는 심기가 틀어졌지만 어쩌겠는가. 갖은 교태를 짓다시피 한 얼굴로 지극스레 아들에게 다시 매달린다. 아들은 마지못해 아비의 이름으로 호소문을 쓰기 시작한다. 아비는 낮출 대로 낮추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그자(그者)’의 비위를 상하게 하면 안 된다. 자칫하다가는 아비의 밥줄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심약한 아비를 덮칠지도 모른다.

어느 틈에 벌써 밤이 깊어 간다. 글을 쓰는 아들도 이를 보는 아비도 설움이 치받쳤을 것이다. 설움은 이내 ‘그자’를 향한 분노로 돌변하고, 하늘 향해 삿대질하다가, 못난 자신을 쥐어뜯다가, 이윽고 아비는 아들을 와락 끌어당기며 ‘너만 믿는다, 너만 믿는다’ 하고, 아들은 핍진(乏盡)한 아비 가슴에 안겨 어깨를 들썩거리며 ‘아부지, 아부지’ 했을 것이다.

어슴푸레한 새벽!
아비는 냉수로 목을 축인다. 느지막이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냄비를 열어 볼 아들을 떠올리며, 간밤에 먹던 김치찌개를 데운다. 이윽고 아들이 쓴 호소문을 신문지로 돌돌 말아 다시 보자기로 싸서 조심스레 옆구리에 낀다. 잠든 아들 지그시 훑어보다가 기척 없이 슬그머니 집을 나선다. 풍산역까지 차를 타는 시간만 1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경의선 첫차를 타기 위해 부리나케 도농역을 향한다. 뛰다 말고 돌아서서 집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물고 눈물짓는다. 아들은 애써 실눈 감고 누워 있다가 문 닫는 소리에 순간 창가로 간다. 멀어져 가는 아비의 뒷모습을 응시한 채 눈물을 훔쳤으리라.

 

어제도 줄줄
오늘도 철철
건뜻하면 주르륵
더 나올 눈물이 어딨다고
하염없이 질금질금 비져나오고
말라비틀어진 이놈의 눈물샘은 언제나 바닥나려나....

 

“입주민 어르신께”로 시작하는 경비원의 호소문
“입주민 어르신께”로 시작하는 경비원의 호소문

 

※ 이 글은 고양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 [박춘근의 꼬장꼬장 밥보샘]
http://cms.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5104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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