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떠들썩한 사흘이 가고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처와 둘만 남았다. 휑하다. 밤 11시경, 갑자기 목구멍이 스멀거린다. 무언가가 목젖을 간질이듯 쌔하다.
난생처음 양치를 두 번, 소금물을 머금고 네댓 번씩 입안을 헹궜다.

낌새고 자시고 할 게 없다. 내가 나를 안다. 걸렸구나!
이놈은 필시 밭은 기침으로 이어지고, 말간 콧물을 몰고 올 것이다. 그러다가 보름 가까이 몸살과 두통과 오한으로 날 괴롭히다가 누런 콧물을 마지막으로 나를 떠날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하릴없이 예전에 먹던 감기약을 찾아 서랍마다 열어본다. 알약 몇 봉지가 보인다. 반색하다가 ‘이그’ 하는 아내 소리에 멈칫한다. 아내가 낼름 싸잡아서 버린다.

여기저기 들쑤시다 보니 영양제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우루사, 노니, 멀티비타민, 피시 오일, 글루코사민, 애터미 헤모임…. 그러고 보니 다락방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영양제랑 홍삼이 상자째 있고, 차가버섯을 비롯하여 10여 가지 차가 전시품처럼 쌓여 있다. 딸이랑 며느리는 무슨 날만 되면 이것저것 노상 사다 주는데, 아비가 게을러 묵혀두었구나. 내친김에 한알 두알 그러쥐고 열 개가 넘는 알약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목감기’를 검색하니 하나같이 뜨악하다.
감기나 세균 감염으로 급성 인후염이 생기고, 만성은 지나친 흡연•음주•과로 등으로 발생한단다. 또, 면역 능력이 떨어진 사람의 경우에 급성 신장염과 류마티스 관절염, 패혈증 등으로 파급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코로나와 목감기 증상 차이가 없을 만큼 매우 유사한 편이라니, 모두 나를 두고 한 말인가 싶어 오만 가지 상념이 인다. 한밤중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고작, 아내가 즐겨 무는 목캔디를 입에 물고 수건에 물을 적셔 머리맡에 널어두었다.

그나저나 이참의 목감기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누구한테 옮은 건가? 지난 한 주를 되짚어 본다. 아무리 여겨봐도 일상적인 일뿐이다. 3개 초교 교정가꾸기활동, 홍제천 생태모니터링•마포가로수학교•시민정원사 수강,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8가족 22명 대상 생태 수업, 봉제산 모니터링 등이 전부다. 그리고 추석 때 아들 내외랑 딸 내외가 번갈아서 집에 다녀갔다.

그러고 보니 하루도 뺜한 날은 없었다. 내가 봐도 무던하게 쏘다닌 건 맞다. 그렇다고 몸에 부치는 막일을 한 적은 없다. 면역력이 떨어진 탓일까? 설마 코흘리개 손주들한테 옮은 건 아니겠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이들이 보내준 사진이다. 아들네는 천안 토아빈으로, 딸네는 고양 창릉천으로 나들이를 갔다. 가을빛 짙어가는 핑크뮬리(Pink muhly)와 살살이꽃! 해맑게 웃는 우리 아이들 위로 명징한 하늘이 짙푸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이들이 보내준 사진이다. 아들네는 천안 토아빈으로, 딸네는 고양 창릉천으로 나들이를 갔다. 가을빛 짙어가는 핑크뮬리(Pink muhly)와 살살이꽃! 해맑게 웃는 우리 아이들 위로 명징한 하늘이 짙푸르다.

 

9월 23일.
눈을 뜨니 말하기가 거북할 정도로 목젖이 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바짝바짝 보타버린 목구멍 언저리가 통째로 탑탑하다. 급기야 입안 가득 끈적거리는 침이 고인다. 침을 삼키는데 무슨 앙심을 품은 게냐? 침덩이가 여기저기 주춤주춤 꾸역거린다. 입천장, 혀뿌리, 목젖 할 것 없이 한 번씩 휘주무르면서 잘록거리며 지나간다.

엊저녁부터 사실상 나를 격리했다. 거실에 나갈 때도 마스크를 했다. 말을 할 때도 아내를 바라보지 않았다. 아내가 챙겨준 배춧국을 비우자 마자 일산서구보건소로 갔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정문과 후문 모두 쪽문만 열려 있다. 오전 9시가 되지 않았는데, 앞마당에는 발을 디딜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잴 때가 아니다. 부리나케 일산동구보건소로 향했다. 하지만 정문 50여 미터 앞에서부터 차들이 움직이질 않는다. 어렵게 정문을 통과했지만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하 4층 주차장에서 회차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막막하다. 먼저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의사는 목이 조금 부었다고 하면서, 약을 먹고도 낫지 않으면 이틀 후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어림없는 말이라고 되뇌면서 종합운동장 부설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드라이브스루(안심카) 임시선별검사소가 있는 곳이다. 검체물을 채취할 때만 차에서 내리고 나머지는 모두 차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만큼 안전하고 편하다. 운이 좋았을까? 마칠 때까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양시 드라이브스루 임시선별검사소 정경(사진 설명 : 위에서부터 시계바늘 방향으로 종합운동장 앞 사거리에서 대기 → 입구 → 문진표 교부 → 문진표 제출 및 검체 도구 수령 → 하차 후 검사)
고양시 드라이브스루 임시선별검사소 정경(사진 설명 : 위에서부터 시계바늘 방향으로 종합운동장 앞 사거리에서 대기 → 입구 → 문진표 교부 → 문진표 제출 및 검체 도구 수령 → 하차 후 검사)

 

아무 때나 아무 데고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삶인가? 나다니는 사람 모두 다시 보인다.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왔다. 베란다에서 분갈이에 여념이 없는 아내를 뒤로하고 내 방으로 들어간다. 벌러덩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지난 방송 ‘다시 보기’ 하다가, ‘EBS 다큐’를 탐닉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윽고 저녁상 물리자마자 약을 먹고, 다시 쫓기다시피 내 방으로 들어간다. 책상 앞에 앉아 단톡방과 밴드에 접속, 눈팅하다가, 뉴스 검색하다가 리모콘을 들고 침대에 눕는다. ‘인간극장’ 보는데 아내가 달 구경하라고 부른다.

아내 옆에 섰다.
말없이 손 맞잡고 달을 본다.
니네 떠난 빈자리 유난히 헛헛해도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겼는데 오로지 한마음, 아프지 말자!
포도시 일군 행복 사위지 말고 잡귀야 물럿거라 염하는데
알음모름한 얼굴로 약사불이 바라보신다.
그 너머에서 웃고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
아, 당신 딸 좀 어떻게 해 주시지....
눈을 뜨고 다시 보니, 우리 아이들이 보인다.
일곱이 하나같이 둥두렷하다.

한아랑(한성•아름 : 아들과 며느리) 서누랑
두이랑(두희•진이 : 사위와 딸) 하니랑 재니야,
아비 어미 손모아 비손하니
어제처럼 오늘처럼
입때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둘만의 부부지정 켜켜이 쌓으면서
형제간의 우애 오순도순 나누면서
사랑하고 보듬고 여겨보면서
곧이곧대로 드러내도 섧하지 않게
해맑고 살갑고 오붓하게
사는 날까지 그렇게 오래오래…….

 

9월 24일
차도가 전혀 없다. 목이 여전하고, 이젠 코까지 맹맹하다. 다급한 맘에 다른 병원을 물색하는데, 09시 09분에 문자가 왔다. 검사량 증가로 결과 안내가 지연된다는 안내문이다. 태연한 척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조하다. 09시 26분,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문자가 또 왔다. 아내가 네트워크병원을 소개한다. 직방으로 낫는 병원이라고 했다. 집에서 5분 거리다. 의사는 당뇨나 고혈압 유무와 특정 약에 대한 부작용과 상비약을 묻는다. 일체 무관하다고 말하고,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순간 의사는 흠칫하더니 정색하고 말한다.

“무슨 일 생기면 방역법 위반으로 다른 사람 치료비와 위자료까지 모두 부담하셔야 합니다. 저는 안 들은 거로 합니다. 약은 아주 쎈 걸로 사흘 치 드릴게요.”

그러면서 곧장 집으로 가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이놈의 코로나가 이젠 날 범법자로 만들 요량이었구나. 마스크 코편을 미간까지 추켜올리고 병원을 나서는데 사람들이 날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다.

“박춘근 님, 코로나 19 유전자검출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11시 13분, 마스크를 벗었다. 헛기침하면서 거실로 나갔다. 바느질하던 아내가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코찔찔이 영감, 침 튀기지 말고 아이들한테 빨리 문자나 보내유.”

 

2021년 9월 24일(금), 일산서구보건소에서 09시 09분, 09시 26분, 그리고 11시 23분에 보낸 문자이다. 1, 2차 문자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한편, 9월 24일 고양시에서 발생한 확진자 수는 71명(확진번호 #6314~#6384)이고, 타지역 고양시민은 8명이다(고양시, 고양시 코로나19 대응 현황).
2021년 9월 24일(금), 일산서구보건소에서 09시 09분, 09시 26분, 그리고 11시 23분에 보낸 문자이다. 1, 2차 문자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한편, 9월 24일 고양시에서 발생한 확진자 수는 71명(확진번호 #6314~#6384)이고, 타지역 고양시민은 8명이다(고양시, 고양시 코로나19 대응 현황).

 

※ 이 글은 고양신문에 실린 글로,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출처 : [박춘근의 꼬장꼬장 밥보샘]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5305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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