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8일, 딸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10여 년 전부터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을지로 3가역 근처에 있는 종합건강검진 전문 의료기관이다.
딸은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 두고볼 수는 없었다. ‘이 험한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 마땅히 보호자가 할 일이다! 오가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모처럼 딸이랑 오붓하게 얘길하다 보니 참 좋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12월 11일, 코로나 검사받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2월 11일, 바로 어제 오후다.
딸이 다짜고짜로 “아빠, 나 큰일났어.”하더니 울먹인다. 서울 중구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내시경 받는 자리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딸은 확진자와 같은 곳에 한 시간 가까이 머무른 셈이다. 수면 유도제를 맞으면서 마스크를 벗고 그냥 잠들었다고 했다. 내가 멘붕 상태인데 딸은 오죽했을까? 딸은 지금 돌이 채 지나지 않은 ‘하니’를 돌보느라 지난 3월부터 휴직 상태이다. 사위가 부리나케 조퇴하고 집으로 왔다고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서니 아비랑 같이 놀던 ‘하니’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을 뻗는다. 안아 달라는 표시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좋아라 뒤뚱뛰뚱 뛰어오는데 아비가 얼른 뒤에서 껴안는다. 무안해진 ‘하니’는 아비 품에서 울고불고 발버둥을 친다. 눈물 훔치는 딸을 데리고 가까운 일산서구보건소로 갔다.

평소에 그러려니 하고 지나친 곳이다. 눈만 뜨면 방송에서 온통 코로나로 칠갑해도 나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마스크 끼고 손 잘 씻고 방역 수칙만 잘 지키면 되는 것을, 모두 다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한 본인의 탓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깨를 들먹이는 딸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선별 진료소 대기 장소로 사용하는 이동식 천막 2동의 모습이다.  벽쪽으로 전기 난로 3개, 입구에 탁자 3개, 그리고 의자 8개가 놓여 있다.  탁자 위에는 손 세정제와 볼펜, 문진서, 그리고 비닐장갑이 놓여 있다.
선별 진료소 대기 장소로 사용하는 이동식 천막 2동의 모습이다. 벽쪽으로 전기 난로 3개, 입구에 탁자 3개, 그리고 의자 8개가 놓여 있다. 탁자 위에는 손 세정제와 볼펜, 문진서, 그리고 비닐장갑이 놓여 있다.

 

자그마한 보건소 마당은 ‘선별 진료소’라 해서 이동식 천막 2동과 컨테이너 박스 2개를 잇댄 것이 전부였다. 입구에는 자그마한 세 개의 탁자가 놓여 있다. 벽면에 “손 소독 후 양손 비닐장갑 착용”이란 표어가 걸려 있고 탁자 위에는 손세정제, 볼펜통, 기초역학조사서, 그리고 비닐장갑이 놓여 있다. 의자 8개가 두 줄로 놓여 있다. 거리두기가 사방 2미터를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의자와 의자 사이가 1미터쯤 되려나. 전기난로 3개가 벽면에 있지만 호된 추위를 녹이진 못한다. 의자는 거리두기를 표시하는 도구일 뿐 사람들은 의자에 앉을 생각이 없다. 딸은 차 안에서 쳐다보는 나를 의식한 듯 가끔 손을 흔들어 보이지만 오들거리는 것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딸의 옆 모습이 많이 추워 보인다. 서른넷의 앳된 얼굴, 아무려면 별일 있을까마는... 하늘빛이 희뿌연 회색이다. 

딸은 접수 창구에 신분증을 내고도 한참을 기다린다. 그리고 무언가를 받아들고는 컨테이너 박스 뒤쪽 검사실로 뛰어간다. 그 잠깐 사이에도 검사 대기자가 줄을 잇는다. 한두 명씩 오기도 하지만 대여섯 명씩 우루루 몰려오는 경우가 더 많다. 무료 검사이기 때문일까? 딸처럼 보건소에서 문자를 받고 오는 이들보다는, 스스로 검사나 받아 보자고 오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거리두기’란 입간판이 무색하다. 천막을 잇댄 길이는 불과 6~7미터인데 20여 명이 천막 안에서 진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자세히 보니 컨테이너 박스가 곧 접수처요 선별 진료소였다. 컨테이너 박스에는 접수처가 2실, 검사실이 4실, 그리고 진료실과 방사선실이 각각 1실이다. 1~2분쯤 지났을까? 잠시 뒤에 쫓기듯이 차 안으로 들어선다.
검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야릇했다고 했다. 유리창 너머에 서 있는 검사원이 겨드랑이까지 이어지는 노란 비닐장갑을 끼고 있는데 자신은 마치 경계해야 할 실험 대상일 뿐 벌써부터 격리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내미니 먼저 긴 면봉으로 코를 ‘팍’ 찌르고 깊이 쑤시는 바람에 눈물이 찔끔 나더란다. 이어서 또 다른 면봉을 목구멍에 깊숙이 간질이더니 뱅글뱅글 돌리면서 소리를 지르라는 바람에 왝왝거렸단다.

아직도 눈물이 글썽글썽한 딸을 내려 준 나는 그 길로 일산시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딸이 좋아하는 ‘미니족발’이 있다. 바깥주인은 연신 족발을 삶아 내는데 큼직한 왕족발이 살아 숨쉬듯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진열장엔 왕족발뿐이다. 다 팔렸을까? 다행이다. 안주인이 미니족발 대여섯 개를 들고 나온다. 칼질이 현란하다. 쪼끄만 족발 세 개를 요리조리 가르고 자르는 데 불과 일 분이 지났을까? 소담하다. 만 원의 행복이다.
뒤돌아서니 바로 과일전이다. 접시에 담긴 딸기가 유난히 반지르르하다. 값을 물으니 1만8천  원이라고 했다. 너무 비싸다. 미적거리는 나를 보더니 2만 원은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한번 들어 보란다. 제법 묵직하다. 접시 바닥을 만져봤다. 아니나 다를까? 가운데쯤 더듬으니 손이 쑤욱 들어간다. 위로 도도록하게 솟아 있다. 순간 몇 알이나 들었을까 헤아려 본다. 대략 30알이나 될까? 금딸기로구나! 딸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던 딸기다. 가다 말고 되돌아갔다. 아마 제 손으로는 사 먹지 못하겠지...
100여 미터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앙식당이 있다. 그 집에서 먹는 순댓국은 정말 맛이 좋다. 오소리감투 때문이다. 이것은 돼지의 위장을 채 썰 듯 가늘게 해서 순댓국에 넣어 주는데 오도독거리고 아주 쫄깃쫄깃하다. 일설에는 ‘한눈을 팔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위랑 먹으려고 두 그릇을 샀다.

집에 들어서니 다들 풀이 죽어 있다. 마스크를 낀 채 식탁에 앉아 있던 딸은, 울렁거리고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은데 무슨 족발이냐며 애써 웃음을 보인다.  소리 나는 동물놀이책을 보던 ‘하니’를 안았다. 벽에 걸린 사진을 비롯해서 인터폰, 냉장고, 리모콘, 전화기, 안마기, 빼닫이, 저금통 할 것 없이 눈에 띄는 것이 죄다 장난감이다. 그 중에서도 ‘하삐’ 만한 놀잇감도 드물 것이다. 모자와 안경을 번갈아 가면서 벗겼다가 씌운다. 이내 자기가 써 보려는 듯 머리 위로 올리다가 떨어뜨린다. 모자와 안경을 한쪽에 치우면 기어이 들고와서 내게 건네준다. 눈꺼풀을 누르다가 귀를 잡아당기고, 코를 누르다가 콧구멍을 후빈다. 얼굴을 쓰다듬는답시고 꼬집기 일쑤요, 뽀뽀를 한답시고 끈적거리는 침을 잔뜩 묻혀 준다. 싫증날 때쯤 벽을 짚고 걸어서 거울 앞으로 간다.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기함을 치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고개를 좌우로 90도나 젖혀 요리 보고 조리 보며 꺄륵꺄륵 소릴 지른다. 눈에 띄는 것마다 손에 넣어야 하고 손에 닿는 것마다 누르고 당기고 밀고 빨고 흔드는 게 일상이다. 잠시도 가만있는 법이 없다. 분명히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지만 그렇다고 어떤 것이든 진득하게 가지고 노는 법도 없다. 쉬이 뉘를 낸다. 우리 ‘하니’는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를 탐한다. 그때마다 나는 ‘하니’를 안고 새것이 아닌, 아까 그 무엇을 향해 다가서야 한다.

족발 한 개를 입에 문 사위를 보고 일어섰다. 집으로 오는 길. 만감이 교차한다.
일반적으로 직원 1인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해당 사옥을 폐쇄하고 긴급 방역 조치에 들어간다. '음성' 판정이 나오는 자는 밀접 접촉자가 아니더라도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방역 지침이다. 우리 딸은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니’는? 교사인 사위는? 사위가 다니는 중학교 학생들은? 나야 요즘 3주째 혼자 지내니 날마다 자가 격리 상태이다. 아내가 며느리와 손주 돌보러 천안 사는 아들집에 머물고 있으니 말이다. 음습한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아무려면 무슨 일 있으려나? 불을 끄고 누웠다. 밤이 이슥하도록 쉬이 잠들지 못했다.

12월 12일, 선별 진료소에서 온 문자 3통

12월 12일, 날이 밝았다.
가뜩이나 초조한데 아침부터 어마무시한 뉴스가 쏟아졌다. 확진자가 950명으로 하루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필요한 경우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의 3단계 격상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미세먼지는 나쁨이요, 경기도에서는 병상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환자 6명을 전남 목포로 이송했다고 했다.   

일각이 삼추 같다고 하더니 필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우리 딸 내외는 지난 밤, 오만 가지 상념이 일었으리라. 잠든 ‘하니’를 바라보며 한숨과 눈물로 지샜을 것이다. 제발 무탈하기를 하늘에 빌고 또 빌었겠지. 이제 막 깨가 쏟아지는 때가 아닌가? 말 그대로 하루가 천추였을 법하다.

그런데, 그런데... 마른하늘에 느닷없는 날벼락도 유분수지, 하루에 두 번씩이나, 그런 애꿎은 일이 하필이면 우리 딸한테 일어나는가?

“아빠, 난 괜찮아. 음성이래. 괜히 걱정했어. 그래도 조심해야겠지. 저녁때 우리 맛난 것 사 먹을까?”
여느 때마냥 밝은 목소리다.

그런데 5분이 안 돼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빠, 내가 아니야. 문자 잘못 보낸 거래. 불안해 미치겠어. 난 이제 어떡하지? 우리 하니를 어떡하지, 아빠?”

도대체 이놈들은 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한단 말인가? 보건소로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두세 번 울리더니 “시민과 함께하는 건강 도시 고양, 일산서구보건소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곧 연결해 드리겠습니다.”가 3회 이어진다. 이어서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가 역시 3회 되풀이된다. 그러더니 “지금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가 들리고 영어로 무슨 말이 나오더니 바로 끊어진다. 불쾌하다. 일반적인 관공서라면 상담 전화가 폭주해서 내 앞에 몇 명이 대기하고 있다거나, 몇 분쯤 뒤에 상담이 가능하다는 멘트가 들려오는데 그런 기계음조차 들려 줄 만한 여유가 없나 보다. 오기가 도진다. 다섯 번을 되풀이해도 마찬가지다. 그 얄미운 기계음만 되풀이해서 들린다. 

퍼뜩 떠오르는 게 지 어미다. 아침저녁으로 약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당뇨, 혈압, 위장, 기침, 가래, 공황장애 등 약을 달고 산다. 그렇지 않아도 심약한 아내가 그런 일을 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 것이다. 다행히 아내는 지금 3주째 아들집에 가 있다.
딸한테 전화를 했다. 역시 딸은 아비보다 낫다. 어미를 닮아 살갑고 심지가 굳다. 무슨 그딴 소릴 엄마한테 하느냐고 오히려 힐난한다. 말하다 말고 문자가 왔다면서 잠깐만 기다리란다. 잠시 뒤에 딸은,
“아빠, 음성이래. 이번엔 틀림없겠지? 그래도 믿을 수가 없어. 아빠, 이젠 아무데도 못 가겠어. 18일에 ‘하니’ 돌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오늘 딸이 받은 문자는 모두 3통이다. 발신지는 일산서구보건소 코로나19 선별 진료소다.

12월 12일, 선별진료소로부터 온 문자 3통, 그 가운데 제대로 보낸 문자는 마지막 3번째 것이다. 우측은 지난 11월 6일 태어난 친손, 선우와 지난해 12월 24일 태어난 외손, 하니.
12월 12일, 선별진료소로부터 온 문자 3통, 그 가운데 제대로 보낸 문자는 마지막 3번째 것이다. 우측은 지난 11월 6일 태어난 친손, 선우와 지난해 12월 24일 태어난 외손, 하니.

 

머리털이 허옇게 세지는 않았지만

‘삼국유사’에 신라의 승려 조신(調信)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다가 헤어지자는 아내의 말을 듣고 조신이 꿈에서 깨어난다. 새벽빛이 희뿌옇게 밝아오는데 세상에, 꿈에서 겪은 일로 머리카락과 수염이 새하얗게 세어 버렸다니 이야기는 이야기겠지. 하지만 중국의 천자문 이야기는 사뭇 그럴 듯하게 들린다. 주흥사가 무제의 명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천자(千字) 시를 만들어야 했으나 마지막 4자를 짓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홀연히 귀신이 나타나서 어조사 언재호야(焉哉乎也)를 알려 줌으로써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아퀴 짓고 보니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지은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편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에 의해 참수당한다. 그녀는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한 로코코 문화와 장미같이 화사한 왕족의 여인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베르사유의 장미'로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나이 37세. 그녀가 처형당하기 며칠 전에 머리가 백발로 변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 말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Marie Antoinette Syndrome)이라고 한다.

그렇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밤새 뒤척이며 눈물로 신음하던 딸이다. 마음 졸이며 조바심하던 딸이 잘못된 문자로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머리가 허옇게 세지 않았다고 해서 냅둬도 괜찮은 걸까? 이 울분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고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할까?
 
불안과 공포 너머로 무노리치는 의료진의 고뇌

오늘 따라 안전 안내 문자가 5통이다. 중대본에서 1통, 파주시청과 고양시청에서 각 2통씩이다. 고양시청에서는 확진자가 오후 1시 9분에 8명, 4시 41분에 26명 발생했다고 했다. 하룻새 37명이다. 오늘만 그런 건 아니지만 어째 으스스하다. 그런데, 가족방에 올라온 아내의 문자는 나를 더욱 오그라들게 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울 아파트 경비 두 명이 확진 받았대. 정문과 후문 경비 둘이 경로당에서 같이 잠을 잤다는데 내가 관리소장한테 직접 전화해서 밝혀낸 거야. 경비든 관리원이든 근처도 가지 마. 당분간 쓰레기도 집에 그냥 쌓아 두고...”

아내가 아파트 선관위 일을 보는데, 회의 소집 이야기 끝에 그런 고급 정보(?)를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로 코앞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지 못한다.  지자체에서 날마다 보내 주는 코로나 문자나 방송 뉴스는 빙산의 일각이다. 가리워진, 내가 알지 못하는 나쁜 일은 지금도 도처에서 번지고 있을 것이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면장갑을 끼고 마스크 두 개를 포개서 쓴다. 맘 내키는 대로 딸네집 가서 ‘하니’를 안고 도는 평온한 일상은 언제 오려나. 그런 아비에게 탁주 한 잔을 따라 주며 제발 엄마 보는 데서만이라도 술 그만 마시라고 푸념하는 딸을 그려본다. 딸이 겪은 불안과 공포 너머로, 모질고 허기진 의료진의 갖은 고뇌가 너울너울 무노리친다.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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