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니다] 고 태영숙님께 보내는 딸의 편지

결혼 초기 경상도 지역의 친정을 방문한 어머니 태영숙(왼쪽)씨와 외할머니·아버지의 모습.
결혼 초기 경상도 지역의 친정을 방문한 어머니 태영숙(왼쪽)씨와 외할머니·아버지의 모습.

엄마!! 엄마(태영숙·1935~2020)가 그렇게 허망하게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어요. 비행기 안에서 들은 엄마의 소식. 결국 전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죠. 지난 9월 23일. 엄마의 첫 기일. 엄마가 좋아하는 꽃 들고 찾아갔어요. 유리 너머로 엄마의 유골함을 만져보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이제 제게 남은 것은 후회와 슬픔뿐. 엄마와 좀더 많은 대화를 나눴더라면, 자주 찾아뵀더라면, 꽃구경을 많이 했더라면 후회합니다. 뒤늦게 이렇게 편지를 쓰며 엄마가 보고 싶어 꺼이꺼이 웁니다. 어렸을 땐 철없어 엄마의 힘든 삶을 살피지 못했고, 커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소홀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요.

엄마! 요즘 저는 여행을 할 때면 엄마 사진을 품에 넣고 다녀요. 엄마 생일에 같이 갔던 백담사에도 다시 갔어요. 3년 전 그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내리는 엄마를 부축하면서 많이 늙으셨구나, 생각했지요. 둘이 손잡고 절을 돌아보고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강가에 돌탑도 쌓았죠. 돌탑을 쌓는 엄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것을 보고 속상했어요. 식당에서 대구탕을 드시면서 엄마가 “참 맛있다. 너랑 여행하니 좋구나” 하셨지요. 여행 경비가 마음에 쓰였던 엄마가 제 가방에 몰래 돈 봉투를 넣어둔 걸 집에 돌아온 뒤에야 알았어요. 엄마는 늘 그렇게 따뜻한 분이셨죠.

2019년 9월 말년의 어머니 태영숙(왼쪽)씨와 4남매의 큰딸 남정순(오른쪽)씨가 강원도 양구군 꽃섬 나들이 중에 나란히 셀카를 찍었다.
2019년 9월 말년의 어머니 태영숙(왼쪽)씨와 4남매의 큰딸 남정순(오른쪽)씨가 강원도 양구군 꽃섬 나들이 중에 나란히 셀카를 찍었다.

엄마! 요즘 엄마에게 사드렸던 등산복을 입고 걸어요. 우울증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매일 아침 산책을 했던 엄마를 생각하며, 저도 매일 동네 뒷산에 오릅니다. 이른 아침 “지금 산책 나왔어”라고 하던 엄마의 전화 목소리가 귀에 생생한데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또 울음이 터집니다.

저는 매일 엄마 사진에 입맞춤하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문득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봅니다. 늙어갈수록 엄마를 닮아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제 얼굴을 보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니까요. 엄마는 제가 발의 복사뼈에 굳은살 박인 것까지 닮았다며, 좋지 않은 것만 닮아 속상하다고 하셨죠? 하지만 전 엄마의 가르침 덕분에 엄마처럼 올곧은 성품을 갖게 되었고 학문적 성취도 이뤄냈는걸요. 엄마는 제가 쓴 박사논문, 번역한 책들을 다 읽으셨지요. 그리고는 웃으시면서 ‘네가 자랑스러워. 그래서 이해는 못하지만 네 논문과 책을 읽은 거야’라고 하셨죠. 전 엄마의 진정성 있는 삶의 방식을 존경해요.

1965년 필자 남정순(왼쪽 둘째)씨의 초등학교 입학 때 사진. 어머니는 훗날 박사가 된 큰딸을 자랑스러워했다.
1965년 필자 남정순(왼쪽 둘째)씨의 초등학교 입학 때 사진. 어머니는 훗날 박사가 된 큰딸을 자랑스러워했다.
부모님과 4남매 가족 사진. 아버지 품에는 이웃집 아이가 안겨 있다.
부모님과 4남매 가족 사진. 아버지 품에는 이웃집 아이가 안겨 있다.

엄마! 며칠 전에는 막내이모와 함께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왔어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그날처럼 비가 많이 왔어요. 친정이 경상도인 엄마는 자매들 중 혼자만 군인 남편의 직장을 따라 강원도에 살게 되면서 친정에 자주 못가는 걸 슬퍼하셨죠. 날씨 좋은 날 외할머니 뵈러 가자고 한 약속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지키다니요. 엄마 살아계셨을 때 외할머니를 뵈러 같이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울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엄마!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지만, 엄마가 더 사실 수도 있었는데 서둘러 떠나신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뒤늦게 많은 책을 읽어보며 엄마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엄마!! 엄마의 삶에도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요? 전 엄마의 삶이 온통 슬픔과 고통과 불행 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엄마!! 고생하셨어요, 힘들게 사느라고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하지만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래요. 못 다한 엄마의 삶은 제가 더 열심히 살게요. 엄마 전 괜찮아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엄마도 그곳에서는 지옥 같은 마음에서 벗어나, 순수한 영혼을 되찾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세상에서 최고의 엄마였어요. 엄마,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엄마, 사랑해요. 많이, 많이!!

안동/남정순

■ 원고를 기다립니다<한겨레>가 어언 33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또는 cshim777@gmail.com),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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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편집위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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