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니다] 곽예남 위안부 피해 할머니 영전에

2018년 2월10일 곽예남 할머니의 94살 생신 축하잔치 때 모습이다. 조현옥 시인 제공
2018년 2월10일 곽예남 할머니의 94살 생신 축하잔치 때 모습이다. 조현옥 시인 제공

곽예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그곳에서도 잘 계신지요.

할머니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에요. 꽃다운 순백의 영혼들을 생각하면 이 겨울이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진 않아요. 할머니 그곳에서는 잘 계신지요. 할머니가 가신 그 나라에서는 편히 계셨으면 좋겠네요.

요즘도 할머니가 사시던 담양 집 앞을 지날 때면 할머니가 너무 뵙고 싶어져요. 할머니가 손을 잡아주며 환하게 웃으셨던 순간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어요.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시간들이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2016년 7월 말께 할머니를 처음 뵈러 가던 그날은 봉숭아꽃이 한창 피던 여름이었어요. 뒷산에는 할머니가 돌아왔다고 쑥꾹새가 유난히 아름답게 울어주는 그런 날이었어요. 꽃다운 처녀들이 일본군 순사에게 끌려갔으니 산천초목도 새들도 얼마나 보고 싶었겠어요.

그때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광주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뵙고 싶어 미리 이관로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었지요. 몸이나 마음이나 만신창이가 된 조선 여인을 만난다는 것은 일본 치하에서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고통을 강요받았는지, 그 몸서리쳐지는 역사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기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곽 할머니는 1925년 전남 담양에서 2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나셨지요. 1944년 봄 어느날, 동네 친구들과 뒷산에서 나물을 캐고 있다가 일본 순사의 손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기차에 실려 그렇게 끌려간 위안소에서 할머니는 조선, 중국, 일본 여성들과 함께 기모노를 입은 채 24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2층 건물 안에서 해방이 될 때까지 중국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딸을 빼앗긴 아버지는 그 이듬해 화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도 그 길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곽 할머니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셨어요. 중국말을 잘 몰랐던 할머니는 이곳저곳 구걸로 떠돌다, 가족을 찾고 싶어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실을 밝혔고, 방송 등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면서 2004년 4월 1일 마침내 귀국했습니다.

이역만리에서 그 고생 그 피눈물은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어요. 할머니는 늘 말없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계셨어요. 모진 세월 속에 말도 글도 잊어버린 할머니는 의사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 손을 잡아드릴 뿐이었지요.

할머니가 유일하게 잊지 않은 말은 “엄마 보고 싶어요”였다죠. 엄마 보러 간다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시려고 막 떼를 쓸 때마다, 참 곤혹스럽고 마음이 아프다는 조카의 말을 전해듣고 그저 안타까웠지요.

2017년 5월 필자 조현옥 시인은 곽예남 할머니를 찾아가 시집 <일본군 위안부의 눈물>을 드렸다. 조현옥 시인 제공
2017년 5월 필자 조현옥 시인은 곽예남 할머니를 찾아가 시집 <일본군 위안부의 눈물>을 드렸다. 조현옥 시인 제공
2019년 3월4일 전남 담양에서 열린 곽예남 할머니 추모제에서 필자 조현옥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조현옥 시인 제공
2019년 3월4일 전남 담양에서 열린 곽예남 할머니 추모제에서 필자 조현옥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조현옥 시인 제공

시인으로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시집이 나오자마자 할머니를 찾아가 시를 낭송해드린 일이, 그나마 작은 추억으로 남았네요. 2019년 3월 2일, 할머니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전주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면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는듯 했어요. 그뒤 3월 4일 할머니 운구가 마지막으로 머문 고향 담양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김승애 담양 평화나비 대표의 부탁으로 올렸던 추모시를 다시 읽어봅니다.

산아
들아
강아
조국아!
이제는 떠난다네
이승의 육신을
훨훨 벗어던지고
저세상으로 간다네
고통이 없는 땅으로 간다네
눈물이 없는 땅으로 간다네
그 지긋지긋한
일본군인들의 군발에
짓이겨진 상처를
이제는 훌훌 벗어던지고
새로운 몸으로 간다네
진달래 개나리 피고
노란 나비 하얀 나비 날던
향그러운 봄날
조국의 한 떨기
꿈 많던 소녀의 몸으로
왔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네.

’할머니, 하얀 눈처럼 깨끗한 나라에서 행복하시기를 두 손 모읍니다. 할머니 그곳에서도 이 땅이 전쟁 없는 평화의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나주/조현옥 시인

원고를 기다랍니다 <한겨레>가 어언 33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 이 글은 12월 31일자 한겨레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 원본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25456.html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경애 편집위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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