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망상으로 뒤척이다가 설핏 풋잠이 들었을까?
웬 놈이 사부작사부작 눈앞에서 얼쩡거린다. 미끄러지듯 나붓거리는 품이 쌀벌레는 아니다. 순간 ‘그놈’이란 걸 직감했다.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부리나케 일어나서 거실로 통하는 문부터 닫았다.

“날개가 빈약한 데다 지구력이 나빠서 장시간 날지 못하고 반드시 근처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쉰다!”

‘나무위키’의 진단을 되뇌면서 불을 켰다. 먼저 천장과 벽면 구석구석 휘휘 둘러보는데 보이지 않는다. 접때 그놈을 놓친 책장이며 커튼이며 침대맡까지 샅샅이 뒤져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흘 낮밤 짬날 때마다 눈에 불을 쓰고 뒤쫓던 놈인데 그저 막막하다. 수건으로 휘저으며 책상과 의자 밑에까지 요리조리 젖혀 봐도 온데간데없다. 이를 갈고 벼르던 놈을 이대로 또 체념하고 말아야 하는가? 오매불망 사무치게 그립던(?) 녀석인데, 아무리 헤집어도 감감하다. 아, 어떡하든 잡아야 할 텐데....

시커먼 놈!
백여시 같은 놈!
우리 ‘하니' 볼과 미간과 발바닥까지 짓씹어 놓은 놈!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눈앞에서 아른거리는데 속수무책이다.
허탈한 맘으로 화장실에 앉아 일을 보다 말고 눈을 의심했다. 그 흡혈귀가 열린 문틈으로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드는 게 아닌가. 빨려들 듯 스멀스멀 눈앞을 스쳐 가니 이게 웬 떡이냐? 은근살짝 문을 닫고 보니 만사형통이라, 흥얼흥얼 푸닥거리까지 주체하질 못하겠다.

우주 만물 굽어보는 천신(天神)
가내 복락 주무르는 지신(地神)
액운 횡액 붙들어 가는 삼신•성주•조왕대신
아, 그윽한 향내 보시하는 뒷간 측신(厠神)이시여!

에헤야 데헤야, 지화자 좋다
얼찌구나절씨구나 그니네 집 경사로다
그러면 그렇지 어딜 갔다 인제 오나
뒤돌아보지 말고 싸게싸게 들어오소
그렇고 그런 우리 사이 무슨 내외한다고
내숭일랑 그만 떨고 뽀짝뽀짝 다가오소
당골네도 아닌 것이 넋두릴랑 접어 두고
시시콜콜 캐지 말고 바투바투 앉아보소.

일은 보는 둥 마는 둥 잽싸게 물을 내리고 갖은 타령 둘러대며 놈을 찾는데 아뿔싸, 객쩍은 짓거리였구나. 지레챘어야 했는데.... 녀석이 사라졌다!

 

단순하다 싶었는데 화장실도 만만찮았다.
세면대 위 선반에는 면도기, 머리빗, 세면도구, 코털 가위, 양치 컵이 너절하다. 벽걸이 수납장을 열어젖혔다. 수건과 휴지와 비누가 켜켜이 쌓여 있다. 샤워 부스 바닥에는 청소용 락스, 살균 세척제, 바디 워시(body wash)가 제법 가지런한데, 배수구엔 머리카락과 비누 쪼가리가 뒤엉킨 채 말라붙었다. 내가 봐도 볼썽사납다. 그나저나 그놈은 어디로 갔는가? 천불이 난다. 야심한 밤, 무심한 팬(fan) 소리만 요란하다.

그러고 보니 문틈이 한 자는 벌어진 듯하다. 서너 마리가 떼거리로 드나들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설마 그새 저 틈으로 나갔을까? 다시 한번 수건걸이랑 휴지걸이를 뒤적뒤적 들추는데 모기 한 마리 따라잡지 못한 내 눈이 야속하다. 빈말이 아니었구나. 모기의 순간 선회 속도를 따를 자가 없다는 말을 뼈저리게 체득했다. 멍때리고 선 채 한동안 우리 ‘하니’ 똥꼬 닦을 때 쓰는 샤워핸들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노오란 팔걸이를 매만지며 둥개둥개 어르다 말고, 하마터면 소릴 지를 뻔했다.

절로 신음 소리가 비져나왔다. 그놈이닷!
가무잡잡한 놈이 어쩌면 저리도 능청스러울까? 배 터지게 처먹었으니 날지도 못하고 아마 골방에서 퍼질러 잔 게 틀림없다. 피맛에 중독된 사특한 놈이 샤워실 벽 아래쪽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니,

엉큼한 놈!
피에 굶주린 놈!

내심 화딱지를 삭이면서 수건으로 손을 감쌌다. 깜냥에 손이 크면 더 쉬이 잡을 수 있으려니 한 거다. 다시금 숨을 고르고 다짜고짜로 힘껏 덮쳤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수건 어디에도 그놈 흔적이 없다. 또다시 녀석은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아무려면 내가 굼떠진 거지. 날이 추워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비실거리는 놈을 놓치다니 벌써 몇 번째인가?

어렸을 때 우리는 파리 잡기 놀이를 즐겼다. 고만고만한 손으로 날고뛰는 녀석을 한 손으로 낚아챘다. 생포된 녀석은 손아귀 속에서 손가락 발가락 싹싹 비비며 용서를 구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간질이는 녀석의 곰지락거림을 마냥 즐겼다. 제아무리 용을 써도 녀석을 풀어 줄 아이들이 아니다. 있는 힘껏 땅바닥에 패대기치면서 눈코입 바르르 떨며 발버둥질하는 녀석을 발바닥으로 짓이겼다.

거 보란 듯이 한껏 뻐기던 예전의 기량 다 어디 갔을까?
늙었구나! 가만히 앉아 헐떡거리는 놈 하나 어쩌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아니다, 안 될 말이다. 분명히 이 안 어딘가에 있을 텐데……. 눈알이 짓무르도록 희번득이며 다시 변기 바닥부터 들추고 헤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 글쎄 고놈이 샤워부스 문 바로 뒤에 옹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저 까만 물때인 줄 알았는데 그놈이 분명하다. 이번에는 수건을 두르지 않았다. 그래도 믿을 건 내 손뿐이다. 슬리퍼를 벗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손끝은 파르르르 살 떨리는 기분으로 야금야금 다가섰다. 고개를 있는 대로 내밀고 머리랑 엉덩인 뒤로 죽 뺐다. 발끝을 질질 끌고 다가가 실눈뜨고 째려보니 녀석도 감을 잡았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다섯 손가락 바투 붙인 채 옴팍하게 오므리고 다시금 몇 번을 속요량한 뒤에 드디어 탁! 한 방에 덮쳤다.

손바닥에 여지없이 잉깔라진 녀석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는지 모른다. 요망한 것! 요리 보고 조리 봐도 흐뭇흐뭇하다. 이를 두고 짜릿한 통쾌미(痛快味)라고 해야 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자랑질하고 싶은데 잠든 아내 차마 깨우지 못하고 박제하는 맘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손으로 오른 손바닥에 붙은 녀석을 찍으려니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는다. 기어이 잠든 아내를 깨웠다. 구시렁대던 아내도 내심 반가운 모양이다. 모기가 맞나 거듭 확인하더니 잇따라서 셔터를 누른다.

우리 ‘하니’를 못살게 굴던 놈
인간보다 사람을 더 많이 죽인 살인귀
내 영혼까지 앗아가려던 놈을 그렇게 보냈다.

 

우리 ‘하니’ 똥꼬 닦을 때 쓰는 샤워핸들과, 내 손바닥 안에서 짓이겨진 ‘그놈’
우리 ‘하니’ 똥꼬 닦을 때 쓰는 샤워핸들과, 내 손바닥 안에서 짓이겨진 ‘그놈’

 

<덧붙이는 글>

널로 하여 얼마나 오두방정을 많이 떨었는지 실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 나이에 채신없이 자다가 손뼉 치고, 뺨싸대기 갈기다가, 꼭두새벽에 아무도 없는 빈방을 에돌아 다녔으니 말이다. 자다가도 헛웃음을 짓지만 널 원망하진 않으마.

다만, 한 가지 청이 있다. 다시 태어나거든 부디 아기가 잠든 방엔 얼씬거리지 마라. 아비•어미•하삐•할미 죄다 쌍심지 켜고 문맹조슬(蚊蝱蚤蝨 : 모기•등에•벼룩•이) 씨알머리 남김없이 까발릴 텐데, 너로서는 당할 재주가 없고말고. 게다가 아기들 단내는 유도 아니다. 팔진미(八珍味)가 뭔지 들어나 봤을까마는 용의 간을 비롯해서 봉황의 골수, 토끼 태반, 잉어 꼬리, 물수리 구이, 성성이 입술, 곰 발바닥, 그리고 치즈를 바른 매미 구이지.

그런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웃음기 없이 사는 인간들이 있어. 허구한 날 애먼 백성 등쳐 먹고, 간 빼 먹고, 피 빨아 먹고 사는 놈들 말이다. 놀라지 마라. 똥구녁이 미어터질 정도로 흥청망청 처먹다 보니, 그런 놈들은 밑구멍에서 '모기눈알수프'까지 스며 나온다지? 어디 사는 누구냐고 묻지 마라. 이것저것 꿰차고 앉아 떵떵대는 놈들일수록 냄새가 구린데다 거동이 되뚱대고, 너처럼 어둠을 좋아하니 쉬이 찾을 수 있어. 어떠냐? 이참에 네 동족의 원수 찾아 복수도 할 겸, 피맛 한번 제대로 볼래? 왕생 극락(往生極樂)을 빈다.

 

지난 11월 5일, ‘하니’가 동생 보던 날이다. 그날 내 옆에서 하룻밤 묵은 뒤에 생긴 상처가 8일 지난 입때까지 요란하다.
지난 11월 5일, ‘하니’가 동생 보던 날이다. 그날 내 옆에서 하룻밤 묵은 뒤에 생긴 상처가 8일 지난 입때까지 요란하다.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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