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이 약하게 태어나 나이 들수록 치과를 자주 찾는데, 당뇨가 생겼다. 면밀하게 들여다본 노련한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뽑자” 결정했고, 말 떨어지기 무섭게 혈압계를 들고 온 간호사는 “정상인데, 당뇨는 없죠?” 묻는다. 있지만 약을 꾸준히 먹는다고 대꾸하자, 끄떡인 의사는 임플란트를 권하며 앓던 이를 뽑았다. 노후를 위한다 생각하라지만, 이래저래 먹을 약이 늘어난다.

60을 넘긴 나이에 정상 혈압은 어느 범위일까? 이를 뽑아야 하는 병원과 건강진단을 하는 병원의 기준은 달라 보인다. 벌금 운운하는 학교 직원의 권유로 하는 수 없이 건강진단을 받았다. 찾아간 병원의 담당자는 고혈압이라며 처방하려 했다. 제약회사에서 제시하는 수치보다 높아도 건강을 자신하던 의사 선배는 혈압약을 마다한다던데, 시작하면 끓을 수 없다니 피하고 싶었다. 꾀를 냈다. 고혈압 기준을 주기적으로 낮추며 수입을 높인 다국적 제약회사의 관행을 들먹였고, 처방을 면할 수 있었다.

감출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당뇨가 있다는 걸 안 이웃은 민간요법의 제자백가를 쏟아낸다. 부탁하지 않았건만 약재를 보내는 다정한 이웃도 더러 있다. 고맙지만 사양하며 버티다 의사인 동생의 귀띔으로 식구의 질책을 받아야 했다. 집안에 없는 당뇨가 왜 생겼을까? 스트레스? 만성피로? 짚이는 구석이 있지만, 아무래도 술이 원인인지 모른다. 아니 그 전에, 탐욕스레 먹어 온 음식의 넘치는 열량이 문제였겠지. 북한보다 남쪽 사람에게 당뇨 증세가 월등히 높은 사실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다정한 이웃이 보낸 참나무겨우살이는 먹지 않았다. 그땐 증상이 없었으므로. 언젠가부터 일찍 오는 취기가 오래 가기 시작했다. 나이 탓인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액순환에 좋다며 선배가 건넨 오메가3 영양제는 냉큼 받아먹었다. 하지만 효과에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먹어야 하나? 누군가 크릴 오일이 더 좋다며 권유했다. 아직 마다한다. 가격은 모르는데, 설마 집으로 배달하는 건 아니겠지? 남극 크릴새우가 남획되는 바람에 고래들이 굶주린다는데, 멸종위기인 고래 먹이까지 빼앗는 대열에 동참하기 싫었다.

해빙이 일찍 녹아 주 먹이인 물범 사냥이 불가능해지자 북극곰이 해변에 올라 바닷새의 알을 포식하고 있다. 에반 리처드슨 제공.(사진출처 :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976604.html)
해빙이 일찍 녹아 주 먹이인 물범 사냥이 불가능해지자 북극곰이 해변에 올라 바닷새의 알을 포식하고 있다. 에반 리처드슨 제공.(사진출처 :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976604.html)

국제통화기금(IMF)이 고래를 지구온난화 해결사로 지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왜 국제통화기금이 전했는지 따지지 말고, 거대한 지방과 단백질 조직으로 몸집을 켜켜이 구성하는 고래는 조직 사이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다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축구장 넓이의 소나무 숲보다 5배나 많다는 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죽어서 수압 높은 심해에 떨어지는 까닭에 사체에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지 않는 고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활성화해 지구온난화를 예방한다고 한다. 바닷물보다 1000배나 철분이 높은 배설물 덕분이라는데, 사람이 고래를 멸종위기로 몰지 않았다면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허우대 멀쩡한 사람은 크릴 오일까지 탐한다.

사람은 이 세상 어떤 동물보다 오래 산다. 사람처럼 생태계를 독점하는 동물은 일찍이 없었다. 다른 생물을 완벽하게 지배하면서 살아 있는 내내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 관리에 유별나다. 잘 사는 국가일수록, 잘 사는 지역일수록, 잘 사는 사람일수록 더하다. 약이든 음식이든, 몸에 좋다는 걸 잘도 챙긴다. 그래서 그런가? 다국적 제약회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더 많은 약을 팔아 큰돈을 벌겠다고 벼른다.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 사향노루든 천산갑이든 멸종될 지경으로 잡아들인다.

사람의 평균 수명은 지역과 시절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손주 결혼 전후라는 느낌이 든다. 관련 연구가 있을까? 수명이 늘어나면 결혼과 출산이 늦는 경향이 보이는데, 건강 수명은 평균 수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서 먹는 약이 늘어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수명과 행복도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요양병원에 침투한 코로나19가 더욱 치명적인 현상과 관계없이, 사람의 행복 수명은 얼마나 될까? 지하철을 무료로 타는 선배는 손주 사진 올린 전화기를 자랑하는데, 보여 준 손주는 아직 어리다. 행복 수명은 대략 그 나이 아닐까? 아프다는 말에 눈시울 적시는 손주는 할아버지에게 무한한 행복을 선사한다.

고교 동기는 시커멓고 빽빽한 머리카락을 자랑했는데, 잇몸이 부실한 처지에서 머리카락보다 명함 들어갈 틈 없이 단단한 치열이 부러웠다. 그 친구가 눈에 문제가 생겨 한동안 실명을 걱정해야 했고, 수술 이후 회복했어도 여간 조심하는 게 아니다. 책 읽고 글 쓰며 노후를 꾸려 갈 요량이니 눈이 중요한데, 잇몸이 먼저 부실한 게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왼눈에 파리 한 마리가 날더니 점점 자라며 작은 파리를 끌어들인다. 어느 틈에 좌우측으로 난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았더니 먹어야 할 약 목록이 늘었다.

모든 동물에게 눈과 이빨은 생명 유지에 본질인데, 사람은 약으로 버틴다. 눈과 잇몸이 부실해진 동물은 불행해 할까? 알 수 없는데, 자연에서 삶을 연장하기 어려우리라. 생태계에 등장한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동물보다 오랜 시간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빨이 흔들리고 눈이 침침해진 조상은 이미 손주를 안았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고기 씹자고 임플란트 시술하고 약 봉지 챙겨서 외출하는 삶은 덤이다. 덤을 위해 사람은 과학기술을 최첨단으로 동원하고 에너지를 과소비한다. 그러자 생태계가 교란되더니 파괴되고 말았다. 모든 동물 생존의 비빌 언덕인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손주의 행복 수명이 줄었다. 어쩌면 평균 수명도 줄지 모른다.

척추동물만 따지면 총 무게의 30퍼센트가 사람이고 67퍼센트가 가축이다.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동물은 모두 모아야 고작 3퍼센트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불안정한 생태계다. 과다한 에너지와 과학기술을 동원해 버티지만, 안정을 잃은 생태계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위험 징후가 점점 뚜렷하게 드러난다.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는 기후위기로 이어지고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었다. 위기를 잠재울 에너지마저 고갈된다. 전문가는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바닥을 드러냈다고 경고한다.

세포막을 통과하는 초미세먼지가 호흡을 방해해도, 마이크로플라스틱이 세포막을 통과해도, 방사능이 먹이사슬을 거치며 축적돼도, 과학기술을 믿는 사람은 무사태평인데, 콘크리트로 황폐해진 생태계를 코로나19가 엄습했다. 공항 활주로와 고속도로를 타고 걷잡을 수 없게 번지며 건강 잃은 사람은 공격하자 비로소 놀란 걸까? 막대한 에너지와 최첨단 과학기술을 허겁지겁 총동원해 막아내려 버둥거린다. 효과가 있으려나? 이번 감염병은 어떡해서든 막아내리라 기대하는데, 이후 다가올 감염병도 막아낼 수 있으려나?

창조주는 사람에게 청지기 소임을 하사했는데, 그 소임을 다하고 있을까? 시방 자연을 잘 보살피고 있나? 가슴에 손을 올릴 필요 없다. 이미 늦었다. 용서를 빌 자격조차 없다. 그래도 생존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겠지? 그렇다면 진정성으로 용서를 빌고 청지기 소임에 진력해야 한다. 개개인의 삶보다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생태계 안에서 생존할 시간을 덤으로 받고 싶다면, 창조주에 용서할 마음이 깃들도록 반성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한다. 코로나19를 백신과 치료제 이후 다시 오만해진다면, 용서는 물 건너간다. 코로나19 이후 철퇴는 무엇일까?

프랑스 대통령은 기후변화와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헌을 준비한다는데, 우리 대통령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까지라는데 그 내용이 아리송하다. 저명한 생태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가 독차지한 지구의 절반을 자연에 되돌려 주자고 하소연한다. 후손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돌파구라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자연의 오랜 이웃인 가축 이외의 척추동물이 불 때, 97퍼센트는 넘겨주어도 시원치 않을 게 틀림없다.

건강하고 행복한 수명을 훌쩍 넘기고, 약에 의존하며 평균 수명을 더 연장하려 발버둥 치는 사람은 어떤 황제보다 번영된 삶을 넘치도록 산다. 늦었지만 코로나19가 전하는 경고에 경청하고, 청지기답게 자연을 생각하고 배려하자. 후손에게 선물을 주는 삶이다. 어느새 희년이 마무리된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기사입니다.
* 출처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08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수행하며 있으며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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