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만에 삼척을 다녀왔다. 화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을 국회 앞 집회 현장과 토론회장에서 여러 번 만났으니 찾아가 힘을 보태야 마땅했지만, 선뜻 시간 내기 어려웠다. 9월 12일 시간을 만들었다. 오는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에 앞서 삼척화력발전소, 일명 ‘블루파워’에 직접행동하는 자리에 동참하기로 했다.

'블루파워'라니, 청정발전소 같은 어감을 내세우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은 포항제철이다. 총배출량의 12퍼센트를 웃도는 포항제철, 그 계열인 건설회사, 포스코에서 삼척에 핵발전소 규모인 1기가와트급 화력발전소를 2기 건설 중이고 거의 완공했다. 그중 한 설비는 시험 가동하는 중인데 하루 25톤 트럭이 400회 넘게 동해항에서 석탄을 실어 나른다. 2기 완공으로 전격 가동하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을까? 그러면서 감히 “블루”를 참칭한다.

삼척군 시절, 근덕면의 산간, 고사리에 영동선 하고사리역이 있었다. 교실 하나 크기의 간이역에서 내려 작은 하천을 따라 잠시 오르면 그곳에 한정 분포하는 민물고기, 연준모치를 볼 수 있었다. 희한하게 다른 민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 하천에 볼 수 없으니 하고사리역은 연준모치 채집을 위한 대학원생이 찾아야 했다. 연준모치는 왜 가깝게 연결된 하천에 없을까? 추측하기 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인지 모르는데, 하류는 시멘트 공장의 찌꺼기가 덕지덕지해 어떤 생물도 살지 않았다.

블루를 참칭한 화력발전소는 전 정권이 대외적으로 약속한 ‘2050 탄소중립’ 약속의 싹을 단칼에 자른다. 하루 400대 넘는 대형 트럭이 오가려면 일반도로를 피하는 게 낫다. 도심을 지나면서 시멘트 공장으로 이어지는 대형 트럭도 적지 않으므로 삼척 시민이 반가워할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포스코건설은 터널로 이어지는 별도 도로를 마련했고, 터널로 가려면 동해항에서 석탄을 실은 트럭은 갑자기 좌회전해야 한다. 트럭을 막아 시험 가동을 잠시라도 막으려는 활동가들은 그 도로를 느닷없이 점거했다. 삼척에서 보기 드문 직접행동이었다.

사진 : 박병상 
사진 : 박병상 

삼척에서 자랑하는 맹방해변은 완공을 앞둔 석탄 하역 부두 공사로 현재 만신창이다. 완공 후 제 모습을 찾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물살을 가로막는 부두가 오랜 모래 흐름을 가로막지 않은가. 맹방해변을 망친 삼척화력발전소의 굴뚝은 해안에서 보이지 않는다. 높이 250미터에 달한다는데, 발전소가 숲속 분지에 꼭꼭 숨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온실가스 배출까지 감출 수 없다. 온실가스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아무리 정교한 정화시설을 추가해도 적지 않은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이 나올 텐데, 굴뚝을 높이면 피해 반경은 멀어진다. 발전소 주변보다 삼척시 전역으로 퍼질 수밖에 없다.

석탄 트럭이 왕복하는 도로에 다른 작업 트럭도 적지 않게 드나든다. 작은 차에 몸을 숨긴 행동가들은 석탄을 비우고 터널을 빠져나오려는 트럭 진행을 막았고, 얼른 2단 알루미늄 사다리를 펼쳐 올라앉아서 깃발을 들었다. 그리고 연행을 감당하면서 목 놓아 외쳤다. 모두 5명. 2명은 60대, 2명은 20대 젊은 여성, 한 명은 30대 환경활동가였다. 3명은 3개 사다리에 올랐고 2명은 쇠사슬로 사다리에 자신을 묶었다. 때를 같이해 삼거리 교차로 건너 보행자 도로에서 30여 활동가가 일제히 손팻말과 깃발을 휘두르며 구호를 높였다.

유럽의 환경단체는 우리나라를 주요 기후악당 국가로 지목한다. 최악의 기후위기 원인인 화석연료 발전소를 적극 줄이려고 노력하는 유럽과 달리 자국은 물론이고 남의 나라에 화력발전소를 짓는 국가가 아닌가. 게다가 한국이 짓는 화력발전소는 유럽에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크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베트남에 짓고 포스코건설은 청정 해역에 막대한 온배수를 배출하는 화력발전소를 지으면서 친환경을 내세운다. 청년의 내일을 치명적으로 더럽히면서 ‘그린’이라니! 허겁지겁 달려온 삼척경찰서 기동대에 연행될 때까지 젊은이의 결연한 목소리는 강렬했다.

연행된 5명은 그날 저녁에 모두 풀려났다. 연행을 각오했어도 두려웠던 젊은이들은 당당하고 의젓했다. 5명 모두 눈물이 날 정도로 자랑스럽고 아름다웠다. 덕분에 악당 국가라는 오명을 조금이라도 씻는 순간이었다. 젊은이의 내일을 위태롭게 한 화석연료 정책에 대해 미 몬태나주 법원은 죄라고 판시했다. 네덜란드 법정은 기후위기를 촉발한 정부에 준엄한 판결을 내렸다. 추세는 그렇게 바뀔 텐데, 우리 법원은 어떤 답을 꺼낼 것인가? 일단 풀려난 활동가의 외침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직 직접행동에 익숙하지 않고 언론보도가 크지 않았지만, 기후위기에 의한 기상이변 뉴스에 익숙해 그런지 삼척 소식을 들은 시민의 반응은 전과 달랐다. 모두 풀려났다는 소식에 안도하기보다 당연하다고 긍정했다. 이제 우리 정치도 달라야 한다. 개발, 발전, 경제성장의 단꿀에 취하는 정책은 힘을 잃었다. 제 자식 잘되라고 경쟁 불사하는 기득권도 반성하고 생각과 행동을 돌이켜야 한다. 자식과 손주 세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경제는 불가하지 않은가. 돌이킬 여지가 있을 때, 우리 사회도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청년과 노년, 그리고 활동가의 직접행동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린 글입니다.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60플러스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병상 독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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