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토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무척 아름답고 농부에게 뿌듯한 장면인데, 밭이 아니라 논이 그렇다. 하지만 쌀 이외 농작물, 일부 채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아름다운 장면에 취하고 싶은데 불안하다. 갈무리 계절에 불안하다니.

“시청자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금 막 들어온 긴급 뉴스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차마 고향을 버리지 못하고 농사짓고 살아가던 몇 안 남은 늙은 농민들이, 농사일 힘에 버거워 자기 먹을 농사만 짓기로 결의하고 파업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수입 농산물을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농민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인도, 칠레, 세계 모든 농민들이 파업에 동참하는 바람에 마구 들어오던 수입 농산물마저 완전히 끊겨 버렸습니다.”

시인 서정홍이 쓴 '마지막 뉴스'의 첫 구절이다. 서정홍은 고향을 떠난 농부에게 시골로 돌아가자며 마무리한다. 한데, 돌아갈 농토가 보전돼 있을까? 고향을 찾을 농민은 건강할까? 다음 구절에서 시인이 상상하듯, 수백억의 예배당도, 몇억 아파트도,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도, 식당과 병원과 약국과 관공서와 경찰서와 법원마저 밥이 없어 문을 닫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교수, 목사, 의사, 변호사, 군인, 경찰도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쥐를 잡아먹어야 도시에서 생존할지 모른다. 그러다 시골에 들이닥쳐 마구 약탈하지 않을까?

헝거 스톤. 출처: Anadolu Agency/Getty Images(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헝거 스톤. 출처: Anadolu Agency/Getty Images(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작년 여름, 유럽에 ‘헝거스톤’이 나타났다. 엘베강 바닥의 바위로, 가뭄이 극심하자 드러난 헝거스톤은 “내가 보이면 울어라!”라고 새긴 1616년 문구가 도드라졌다. 서럽게 배고팠던 모양인데, 당시 유럽 인구는 어느 정도였을까? 페스트와 콜레라가 지독했을 텐데, 유럽인들 용케 견뎠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가뭄으로 406년 만에 다시 나타난 헝거스톤은 지금 가라앉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13세기 페스트가 만연한 사회상을 반영할 걸까? 독일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는 작은 도시 하멜른의 비극을 전한다. 쥐 떼를 절벽에 떨어뜨려 없앴건만 마을 어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보상을 차일피일 미루자 피리 부는 사나이를 뒤따르며 마을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질병과 굶주림의 희생자는 언제나 어린이나 노인이었다. 2003년 남부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희생된 7만여 명이 그랬다. 기상이변이 점점 가혹해진다. 관측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이 최근 10년에 집중된다.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면서 음식은 상품이 되었다. 양판점과 뷔페 식당에 넘치는 상품을 기반으로 우리 인구는 사정없이 늘었다. 이제 수입이 끊어지면 재앙을 만날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농토 사막화가 심각하다. 석유로 지하수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지경인데, 유럽은 헝거스톤을 만났다. 유럽은 농산물을 자급하는 국가가 많지만, 화학비료와 거대한 농기계가 아니면 수확할 수 없는 미국 농작물이 없으면 우리는 당장 굶주려야 한다.

폐가가 늘어나는 시골은 70세 넘나드는 노인이 농사를 책임지는데, 도로와 건물, 그리고 식당을 가득 채우는 도시 군중은 언제나 초면이다. 같은 아파트에서 몇 년 머물러도 관심이 없어 그런지 여전히 낯설다. 옆집 위아래 집의 희로애락을 모르는 낯선 이웃은 아파트 시세에 촉각을 세우고 자동차 크기를 비교하며 주눅이 든다. 속도와 경쟁이 미덕인 도시에 늘어난 인구는 고독하다.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는데, 미래세대의 내일을 걱정할 수 있을까?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배려하지만 모자라면 생존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동식물은 경쟁을 피하려 생태적 조건을 달리하는 방향으로 종을 나누지만, 인류는 불가능하다. 외부의 지원마저 끊어지면 경쟁은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이어지거나 아예 사라질 수 있다. 태평양의 외로운 섬, 라파루이와 빙하에 뒤덮인 그린란드가 그랬다.

1722년 부활절에 도착한 네덜란드 군인이 이스터섬이라고 이름 붙여 알려진 라파루이는 야자와 해산물이 넘치는 풍요로운 섬이었다. 인구가 늘면서 개발 욕심을 자제해야 했지만 나누어진 두 종족은 생존을 위한 갈등을 키웠고 결국 ‘모아이’라는 거대한 석상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인근 덴마크의 지원이 끊어진 그린란드의 주민은 유럽식 삶을 고집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청년이 교회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설원의 원주민인 이누이트의 자연스런 삶을 외면한 결과였다.

외부 지원이 줄어드는 순간 악몽 맞을 개발은 무책임하다. 1960년대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식량자급부터 진정한 독립이라고 말했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내 나라 내 땅에서 자급할 방안을 최대한 모색해야 한다. 간디는 세상은 모든 이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인 한 사람의 생태발자국은 3.5헥타르가 넘는다. 80억을 돌파한 세계인이 한국인 평균으로 살자면 지구가 2개 넘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식량위기 신호가 두드러지고 에너지와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5000만 인구를 가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한여름 호수 위에서 하루 2배로 늘어나는 부레옥잠이 1000배 불어나는 시간은 불과 열흘이다. 호수를 뒤덮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일까?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연에서 살다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구가 환경 문제로 직결되지 않는 시절, 그리 멀지 않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늦지 않게 소규모 공동체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농경사회’다. 생태계와 자원은 확장할 수 없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최대한 연장할 농경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생태계와 환경부터 복원해야 한다. 멸종을 부추길 개발, 발전, 선진국 타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린 글입니다.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60플러스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병상 독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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