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를 잘 믿는 편이다. 장마답게 강력하겠지만 중부 지방에 내리는 비는 간헐적이라는 예보를 듣고 하늘을 보니 파랗다. 서너 가지 약속 때문에 무거워진 가방에 우산 더 챙기기 귀찮아 예보를 핑계로 그냥 나갔는데, 낭패의 연속이었다. 국지성이라기보다 종잡기 어려운 홍길동 식이라더니, 하필 기자회견이 있는 시간, 그 거리를 퍼붓는 게 아닌가.

흥건히 젖었던 기억이 불편해 흐린 하늘을 보고 우산을 챙겼는데 웬걸. 걸을 일이 많던 어제 햇볕이 종일 뜨거웠다. 후끈 달아오른 얼굴로 집에 돌아와 곯아떨어졌는데, 특별한 일정이 없는 오늘, 아침부터 장마가 거세다. 끈적이던 냄새를 씻어내려는 듯, 퍼붓는다. 신문을 집어드니, 머지않아 인류세(Anthropocene)가 펼쳐진다고 한다. 콕 짚어 1950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예정하던데, 그 무렵 특별한 일이 있었나? 학자는 핵을 인류세의 증거로 여긴다. 신문을 몇 장 더 넘기자 일본 기시다 수상을 만난 우리 대통령이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로 이해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아시아 여름 몬순(6, 7, 8월)의 평균 강수량 변화를 예측한 기후 모델로 둘 다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여름 장마는 예외가 아니라 앞으로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녹색이 짙을수록 강수량이 늘어나고 빨간색이 짙을수록 줄어든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사진 출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00733.html)
아시아 여름 몬순(6, 7, 8월)의 평균 강수량 변화를 예측한 기후 모델로 둘 다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여름 장마는 예외가 아니라 앞으로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녹색이 짙을수록 강수량이 늘어나고 빨간색이 짙을수록 줄어든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사진 출처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00733.html)


울진에 핵발전소를 추가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본이 편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에서 방출할 핵오염수는 마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탈을 쓰고 감히 그따위 말을 내놓았다. 잠시야 별 탈 없게 보이겠지. 사실상 핵산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IAEA는 “사고를 두려워 말라”는 신호를 업계에 보낸 것이다. 사고뿐인가? 절대 정화할 수 없는 핵오염수라도 희석하면 그만이라는 수완을 핵발전, 핵잠수함, 핵항공모함에 귀띔했다. 그러자 현 정권은 응답한 걸까? 울진에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나선다.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걸까? 분명한 건, 미래세대는 아니다!

현생 인류가 모습을 보이기 대략 5억 8년 전, 바다에 생명의 움이 싹텄고 이어 육지로 올라와 다채롭게 진화했다. 한참을 지나 세상의 생태계에 나타난 사람은 이제 종말을 고하려 한다. 인류세를 맞았다지 않은가. 인류세 이후에 인류가 지속될 리 없다. 생명체가 육지로 오르기 전, 화산과 지진으로 흔들리던 지구에 먼지는 가라앉았을까? 모르긴 해도 지금보다 적었을 게 틀림없는데, 방사능도 비슷했다. 지구의 핵 안으로 온갖 방사성 물질이 응축되고 지상의 방사능이 진정되자 온갖 생명체가 탄생했을 텐데, 지구의 지층은 현재 인류세를 맞았다.

올 장마는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인다. ‘장마전선’이 아니라 ‘정체전선’이라더니 ‘장마’란 이름까지 바꾸겠다는 소리도 들린다. 엘니뇨가 예년보다 강력해져 기상 이변이 심각해질 거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올 장마는 예외 현상을 넘어서는 모양이다. 이름을 바꿔야 할 정도로 장마 성격이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지구 평균의 두 배 이상 올랐다는데, 그 때문일까? 우리 주변 바다 수온이 지구 평균의 1.5배 이상 올라 태풍이 강력해지고 자주 올라올 거로 예상하던데, 장마가 변한 이유일까?

위도가 높으면 기온 상승이 빠르다고 한다. 우리뿐 아니라 영국과 시베리아의 여름이 예년보다 더운 이유가 그렇다고 한다. 서늘하던 여름이 무더워졌을 뿐 아니라 산불이 자주 발생한다. 더위와 산불이 점점 거세지는 북유럽과 캐나다에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 견딜 만한데, 내내 괜찮을까? 체온 육박하는 형벌 같은 더위로 세계 곳곳의 생명이 거푸 쓰러진다. 2003년 프랑스의 폭염으로 수만 명 노약자가 목숨을 잃자 폭염 대피소가 생겼다. 요즘 더위는 20년 전보다 심각해졌는데, 우리는 예외일까? 쪽방촌의 가난한 계층만의 고통에서 멈출까?

모두 잘 알 듯, 세계 평균 기온 상승은 탐욕스러운 화석연료 과소비와 비례한다. 비교적 최근에 경제 규모가 약진한 우리나라는 탄소 배출량이 어엿한 국가에 손꼽힌다. 하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한 중국에 비교할 수 없다. 두 나라 사이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는 우리나라는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탄소를 최대 규모로 배출할 화력발전소가 삼척에서 가동을 준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베트남까지 가서 대기를 오염시키려 든다. 세계 평균 기온이 진정될 리 없고, 바다 수온이 내려갈 리 없는데, 우리 해역의 수온이 급히 오른 이유는 따로 있다.

발전 효율을 아무리 높여도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열의 절반은 바다를 데운다. 발전소 터빈의 수증기를 식힌 온배수를 바다에 버리는 탓인데, 화력보다 효율이 현저히 낮은 핵발전은 그 정도가 심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10여 기만 가동하는 일본의 핵발전소에서 내놓은 온배수는 수온을 얼마나 높일까? 궁금한데, 우리는 일본보다 작지 않을 것이고 우리 핵발전소의 두 배를 넘어선 중국에서 쏟아내는 온배수는 동북아의 수온을 높일 게 틀림없다. 올 장마가 홍길동을 연상케 한 이유를 설명하는 걸까? 연구가 필요한데, 핵발전소 확충에 여념이 없는 중국을 시기하는지, 우리도 추가하겠다고 벼른다.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장마가 끝나면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내 책을 여럿 펴냈고 새 책을 계약하며 즐거운 시간을 나눴던 출판사 사장, 출판인과 저자 사이라기보다 친형제 이상 마음을 나누던 후배가 작년 이맘때의 뙤약볕에 쓰러졌고 결국 숨을 거뒀다. 뇌출혈에 이은 심정지였는데, 젊고 유망한 철학자가 같은 증상으로 얼마 전에 사망했다. 얼마나 많은 이가 더위로 목숨을 잃을까? 하루하루 체력이 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는 아내와 나, 선배와 친구는 괜찮을까? 에어컨은 결국 지구의 온도를 높일 뿐인데.

1995년 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대기화학자 크뤼천은 2021년 사망했다. 노환이 있었겠는데,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 현상을 연구하면서 그는 2000년 인류세를 제안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1만 1000년 이상 온화하던 지구 지층을 홀로세(Holocene)라 명명하던 ‘세계층서위원회’는 크뤼천의 견해에 관심을 기울였다. 핵산업의 필연적 부산물인 플루토늄을 비롯해 화석연료의 산물인 플라스틱, 육지에 첫 생물이 탄생한 이후 없던 초미세먼지가 과포화되면서 더는 생물이 지속하기 어려운 지층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릴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를 비준할 예정이라고 언론이 보도한다.

1밀리미터에 불과한 인류세 지층에 화석이 남은 건 아니다. 과학자는 플루토늄을 주요 증빙자료로 거론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원소로 1950년 이후 급속히 축적된 핵분열의 산물이다. 단 1그램으로 수십억 인명을 사망케 할 위력의 원소가 인류세 지층을 구성한다는데, 플루토늄 이외에 화력발전의 결과인 탄소 입자와 고농도의 납, 그리고 마이크로플라스틱도 인류세의 특징으로 들었다. 머지않아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태평양을 넘어 오대양 6대륙으로 흩어질 핵오염수는 무엇을 보탤까? 곧 다가올 인류세는 지층에 어떤 냄새를 남길까?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실린 글입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99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60플러스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 사진 출처 기사 : [강석기의 과학풍경] 어쩌다 여름은 공포의 계절이 되었나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박병상 독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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