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46년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홀로 우리를 기르며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건강한 편이셔서 큰 병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35년 전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움직이시고 약도 잘 드시면서 관리를 하셨기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22년 전 눈길에 넘어져 그만 허리를 다쳤습니다. 약 3달가량 누워계시면서 큰 변화가 왔습니다. 움직임이 적다 보니까 다리 근육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그전에는 배낭을 메고 척척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다니셨는데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고 걷는 것도 힘들어 하시면서 운동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 후 딱 1년 6개월 만에 당뇨 약으로는 조절이 어려워 인슐린 주사를 맞기에 이르렀지요.

그래도 본인이 건강을 관리하는 분이라서 운동도 하시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힘이 없어진 다리가 예전처럼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자꾸 넘어지시고 무릎도 한 번 다치시면서 더 걷기 힘들어 하셔서 지팡이를 짚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침대를 밀다가 척추에 금이 가서 또 누워계셨습니다. 2016년 12월에는 길가다 눈길에 미끄러져서 고관절을 다치셨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멀리 나가있을 때라 바로 병원엘 가질 못해 지금까지 힘들어 하십니다.

엄마는 2006년부터 노인복지관에서 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아파 절뚝거리면서도 일어수업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쓰고 나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하시면서도 하루에 한 시간 씩 내준 숙제를 열심히 하셨습니다. 글 쓰는 오른 손목 뼈가 아프다고 호소를 하시면서도 모범생처럼 쓰기 연습을 열심히 하셨지요. 처음에는 글꼴이 정말 우스웠는데 점점 깔끔하게 잘 쓰셨습니다.

엄마는 해방 전 중국에서 사셨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직장을 잡으셔서 중국인 학교에 다녔습니다. 하여 또래 할머니들처럼 일본어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국어는 아주 유창하게 잘했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어 한국에 왔는데 중국말을 하면 아이들이 ‘떼년’이라고 놀려대어 입에서 싹 지웠다고 하십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아깝지요.

엄마가 일어와 영어회화를 배우기로 결심한 이유는 여동생 때문입니다. 동생이 일본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는 서투른 영어로 대화를 나누지만 엄마는 그러지 못하십니다. 동생이 한국에 와 있을 때 일본에서 전화가 오면 영어로 “하이”, “아웃”, “텔리폰, 어겐”, “땡큐” 이런 식으로 의사소통을 하시니 많이 답답하셨나 봅니다. 고등학교는 다니셔서 간단한 영어를 읽고 쓰실 줄은 아시지만, 짧은 영어회화 문장을 써드리고 외우라고 알려드려도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십니다. 그래서 용감하게 일어를 배우기로 결심하셨지요.

엄마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당뇨병이 치매의 원인 중 하나라는 여러 가지 보도들을 보셨습니다. 본인에게 치매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늘 머리를 써야 한다면서 새로운 배움을 택하신 것입니다.

엄마는 저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치매 안 걸리려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지 않냐?”

“내가 치매 걸려봐라. 니들이 날 거둬야 하는데 어떻게 할래? ”

“니는 손목도 안 좋아서 나를 들었다 놨다 할 수나 있을 것 같냐? 니 먼저 곯는다!”

저는 뼈가 가늘고 몸이 약한 편이라 지금도 걸레 같은 것 꼭 짜면 손목이 시큰시큰합니다. 무거운 것을 들었다 놓았다도 잘 못합니다. 아이 둘 낳고는 뼈가 더 약해졌는지 요령 없이 일을 하다 그만 오른쪽 손목인대가 다 삭아 깁스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보다 체구가 크신 엄마는 비리비리한 제가 엄마 병수발을 들게 되지 않을까 많이 걱정하고 계시지요.

엄마에게 참 고맙습니다. 요새 아픈 부모님 모시는 것 며느리보다는 딸이 많이 하지요. 행여 저 고생할까 이것저것 배우시고, 운동하시고, 본인이 스스로 활동해주셔서 저는 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 엄마 맘을 많이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고집을 피우고 뻗대서 안 맞을 매도 맞았습니다. 마치 ‘나는 잘못한 것 없다. 때릴 테면 때려봐’ 하는 오기로 한 자리에 꼿꼿이 서서 엄마와 대적했습니다. 엄마는 오죽 답답하셨으면 저를 몰래 불러 “너도 쟈(동생)처럼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막 도망 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결혼할 때 홀로 된 엄마에게 부담이 될까봐 모든 준비과정을 스스로 했습니다. 엄마에게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엄마 맘을 섭섭함과 허전함으로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결혼식 끝나고 해준 게 없다고 마음이 미어진다고 그리 우셨다는 울 엄마. 이를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겉으론 철이 들어보였어도 속으론 철이 없었던 거지요. 

며칠 전 제천 의림지에서... 나와 달리 더위를 무척 타시는 엄마는 내가 하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통에 땀띠가 나셨다.
며칠 전 제천 의림지에서... 나와 달리 더위를 무척 타시는 엄마는 내가 하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통에 땀띠가 다 났다.

예전에 엄마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면서 노래교실이며 일어수업을 다니셨지만, 요새는 실버카를 끌고 거의 매일 목욕탕에 가셔서 다리 운동하시고, 주민센터에서 관광영어도 배우시고, 단전수업도 다니십니다. 최근에는 주민센터에서 하는 '나만의 인생 그림책' 프로그램에 뽑혀 과거를 회상하시면서 옛날 사진에 글 올리는 작업도 하고 계십니다. 할 수 있는 한 엄마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식을 위해 열심히 움직여주십니다.

이런 울 엄마가 자랑스럽습니다. 명품 중의 명품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여자라 엄마와 숨길 것 없이 속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 무더위에 딸의 운동해야한다는 우김으로 단양강 잔도를 걸으셨다. 힘드신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그 무더위에 딸의 운동해야한다는 우김으로 단양강 잔도를 걸으셨다. 힘드신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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