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흉보기 2 : 날 두고 떠난 사람

김미경 주주통신원l승인2019.03.14l수정2019.03.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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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항에 아이를 놓고 비행기를 탄 여성 승객으로 인해 비행기가 회항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뭐에 열중하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4차원 남편과 살고 있는 나는 안다.

1997년 잠시 미국에 살 때였다. 큰 마트에 장을 보러 남편과 갔다. 나를 마트 문 앞에 내려주고 가까운 곳에 주차 공간이 없어 저쪽으로 가서 주차하고 온다며 먼저 장을 보고 있으라 해서 그리 알고 마트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이 오질 않았다. 장을 보면서 두리번두리번 남편을 찾았는데 장을 다 볼 때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사람이 많아서 못 찾나 보다 생각하고 계산을 하고 물건을 카트에 끌고 밖으로 나왔는데도 남편은 없었다.

휴대폰이 없을 때라 연락해볼 수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주차하러 가다 사고가 났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을 때라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남편만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집까지 거리가 좀 돼서 구입한 물건이 많아 들고 갈 수는 없고 반품하고 걸어가야 하나? 길도 잘 모르는데... 버스를 타고 가야하나? 버스 노선도 모르는데... 막막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어찌 된 일이냐 하니, 주차하러 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를 내려준 걸 깜박 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고... 그 당시 남편은 하루 16시간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라 머릿속이 가끔 텅 빌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짜증내지 않고 용서했다.

그 다음 약 10년 전, 나를 또 두고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전철로 출퇴근할 때였는데, 남편이 좀 편하게 가라고 전철역까지 데려다 줬다. 출근 준비가 끝나면 남편은 먼저 나가서 주차장에서 차를 가지고 아파트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어느 날 아파트 입구로 부리나케 가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기다리지 않고 휙 하니 도로로 달려 나갔다. 깜짝 놀라 막 뛰어 갔지만, 남편은 나를 보지 못했는지 계속 달려갔다. 얼른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더니 한참을 달려가다가 끽 하고 서더니 유턴을 하고 돌아왔다.

남편은 “미안해, 당신이 타고 있는 걸로 착각했어.”라 했다. 나의 존재와 부재를 헷갈릴 만큼 내가 존재감이 없다는 것에 섭섭했지만 그때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라 웃으면서 용서했다.

▲ 작년 여름 계족산에서, 요새는 이렇게 나를 졸졸 쫓아 다닌다.

요새는 그런 일이 없다. 30년 지나 뒤늦게 내가 남편 머릿속에 확실히 박혔다고나 할까? 가끔 산행을 할 때 무슨 생각을 깊이 하는지, 내가 오거나 말거나 혼자 온 사람처럼 걸어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나를 먼저 챙긴다. 하긴 이 나이에 나를 두고 가면 어쩔 것인가? 심히 구박을 받거나 더 심하면 황혼이혼 당하기 십상이지,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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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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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호진 2019-03-17 16:24:39

    이 내용은 아마도 너무사랑하는 이유대문에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는 모냥입니다. 금혼식 가지 살 수 있을까 생각햇던 30대에 느겼던 넋두리가 금혼식 다음이 무슨 혼식인지 알바 없으나 7년후면 그리 될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어제 효창공원에 산책하던중 두분 노인네의 사랑그네탑에서 그네를 타면서 노래를 불러주던 할머니의 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아서 사진을 찍어 이사진한장에 올렸습니다, 두분의 사랑싸움이 짖게짖게 남아 있도록 지켜보겟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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