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功大學 내에 어학원이 들어있는 修齊빌딩
成功大學 내에 어학원이 들어있는 修齊빌딩

학생 비자를 발급받아 대만에 입국하였기에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학생 신분이 되었습니다. 속박받는 생활을 싫어하는 성질머리에 시간 맞춰 강의실 쫓아다닐 생각에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그래도 수년간 살아왔던 집이 있고, 놀아줄 친구들이 있는 대만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더 앞서는지라 감내해야 할 몫입니다.

학교 수속을 다 마치고 대만 친구에게 대학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운다고 했더니 사업하는 친구는 ‘活到老 學到老’라는 글을 보내주며 응원하고, 전직 교수 친구는 사는 데 지장이 없는데 뭔 고생이냐며 위로합니다.

‘活到老 學到老’의 뜻을 찾아보니 이런저런 설명이 많은데, ‘배움에는 끝이 없으니 늙어서도 배워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설명보다 ‘젊을 때 배우는 것과는 달리 늙어서 배우면 얻는 것이 더 많으니 마땅히 죽는 날까지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해설이 더 마음에 닿습니다.

어쨌든 본의는 아닌데 늙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아주 훌륭한,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삶을 살고 있답니다.

成功大學 역사문화관.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태극권을 배우고 있음.
成功大學 역사문화관.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 태극권을 배우고 있음.

한국에 있는 동안 반 배정을 위해 중국어 듣기와 독해 시험을 봤습니다. 약 40여 년 전에 대만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대학원에 다닌 경력은 있지만 중국어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 실력인지 모릅니다.

고등학생 국어 시험문제를 푸는 마음으로, 중국어 테스트에 응했는데 듣기나 독해가 의외로 쉬웠고, 점수도 시험 끝남과 동시에 알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봄 학기에 내가 들어갈 반을 개설할 수 없으니 여름 학기에 다시 지원하라며, 그때도 반을 개설할 수 있을지 확답을 줄 수는 없다는 모호한 문장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입국 금지해놓고,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 학생 신분으로 오겠다는 가상한 나의 결심이 엉뚱한 곳에서 사달이 났지요. 아는 지인은 중국어 배우겠다는 놈이 중국어 자랑질을 한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고.

학교 측에 여러 번 연락을 취하고, 대만 친구에게도 부탁해서 학교로부터 입학 허가서를 받아 결국 봄학기에 입국했습니다.

대만에 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가능하면 상대방 편의를 봐준다는 것입니다. 건망증이 원래 심해서 나이 탓이라고 말하기도 그렇지만, 새로 입국한 외국인 학생은 여권을 지참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야하는데 여권 없이 그냥 가서 받았습니다. 지난주에는 비자 연장하러 이민국에 갔는데, 여권 커버가 두꺼워 알맹이만 가지고 가는 바람에 가서 보니 사진이 없는 것입니다. 자원봉사 안내인에게 다시 집에 가서 사진 가지고 오겠다고 했더니 그냥 접수를 시켜주더군요.

봄학기에는 가장 상급반에서 수업을 듣고, 여름학기에는 교수에게 부탁해서 하나 아랫반으로 내려와 훨씬 수월하게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일 이어지는 과제와 시험으로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는 신세입니다.

왼쪽부터 호주, 미국(화교), 태국(성공대 박사과정),루마니아, 미국, 미국(화교), 미국(베트남), 어학원 교수
왼쪽부터 호주, 미국(화교), 태국(성공대 박사과정),루마니아, 미국, 미국(화교), 미국(베트남), 어학원 교수

학생 중에는 대학 3~4학년, 그리고 미국 국적이 제일 많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화교 후예들도 상당합니다. 말은 할 줄 아는데 읽고 쓰기를 못 해서 어학원에 들어온 경우이지요. 중국어를 전공한 독일 학생의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에서 온 학생들이 눈에 많이 보이고,

상급반에 있을 때 오미크론 확산으로 학교에서 신속항원검사키트를 나눠줬습니다. 경기도 소재 한국 회사가 만든 제품이었는데 상자에 태극기가 인쇄됐고, 독일, 네덜란드, 미국, 베트남에서 온 반 친구들이 모두 나를 봅니다. 태극기를 알아본 거지요. 나이 지긋한 여자 교수가 한마디 보탭니다. “한국 물건은 믿을 수 있어!”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1980년대 어학원에서 만난 서양인들은 태극기는커녕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요. 일본 옆에 있다고 해야 겨우 이해하는 상태였습니다.

소그룹 수업 중. 2명씩 팀을 이루어 과제 발표
소그룹 수업 중. 2명씩 팀을 이루어 과제 발표
소그룹 수업. 반대항 중국어 퀴즈대회 사전 연습
소그룹 수업. 반대항 중국어 퀴즈대회 사전 연습

현재 우리 반은 8명이 매일 2시간씩 소그룹으로 필수과목을 수업하고, 나는 주당 2시간씩 최소한 3과목 이상을 선택해야 비자를 신청하고, 연장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과제가 없이 몸으로 때우는 태극권을 신청했는데, 두 시간 땀을 쏟고 나면 온몸이 쑤시네요. 문법과 어휘도 선택해서 여러 나라 젊은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선택과목 수업. 중국어 어휘
선택과목 수업. 중국어 어휘

튀르키에(터키) 여학생이 나의 국적을 묻기에 한국이라고 했더니 이스탄불 공항을 한국에서 짓고 운영한다고 말해주더군요. 젊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교수가 수업 시간에 BTS 언급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교실에 들어서는데 한국말이 들렸습니다. 한 여학생이 컴퓨터를 보며 한국에서 새로 시작하는 연속극인데 변호사 나오고 어쩌고저쩌고 설명하면서 봅니다. 영어 자막으로 보면서도 대사에 맞춰 실시간으로 웃음을 터뜨리더군요.

지금 한국의 위상은 내 생각보다 더 높은 곳에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소원하던 문화강국이 우리 세대에 실현되었음을 자랑스러워합니다. 한국의 위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수업 준비도 나름대로 하고 있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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