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실크로드 문화 답사(6)]

암중모색(暗中摸索).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 어림짐작으로 추측하거나, 막연한 상태에서 해법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중국 당나라 유속(劉餗)의 소설 <수당가화(隨唐嘉話)>에 나옵니다. 당나라 여황제 측천무후(690-705) 때 허경종이란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경망한데다가 방금 만났던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건망증이 심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것을 꼬집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름 없는 사람이야 기억할 수 없겠지만 만약 하안이나 유정·심약·사령운 같은 유명한 분을 만나면 ‘암중모색’을 해서라도 알 수 있을 것이네.”

기원전 139년 한 무제는 당시 변방을 어지럽히는 흉노에 대항하기 위해 대월지와 동맹을 맺으려 사자를 모집했습니다. 이 때 한중(漢中 지금의 산시성 성고현) 사람으로 하급관리였던 장건 張騫(?-BC114)이 지원해 발탁되었습니다. 나중에 <사기 대완전(史記 大宛專)>은 장건에 대해 “그는 의지가 강하며, 견실하게 일에 임하였고, 마음이 넓으며 사람을 믿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BC139년, 그는 흉노 출신 통역사 ‘감부(甘父)’를 포함해 수행원 100명을 거느리고 장안을 떠나 대월지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대월지국의 위치나 가는 길에 대한 정보 하나 없는 막연하기 그지없는 여행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엔 서역으로 통하는 길은 흉노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는 서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오고가는 길에 반드시 흉노의 영역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당근 목숨을 걸고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서쪽에 대월지국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길을 떠난 장건 일행은 지금의 감숙성 지역에 들어서자마자 흉노에게 발각되어 흉노의 왕 군신선우에게 보내졌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억류되었고 강제로 흉노 여인과 결혼해 지식까지 낳고 10여 년 동안 머물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장건은 늘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고, 마침내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흉노를 탈출해 다시 대월지국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대원(大宛, 페르가나)국에서 대월지국의 위치도 알게 되었고, 강거(康居)국을 거쳐 BC129년 마침내 대월지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땅이 비옥하고 생활이 안정되어 있던 대월지국왕은 “함께 흉노를 칩시다.”는 장건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1년을 머물며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설득했으나 허사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이번엔 흉노에게 잡히지 말아야지’. 그래서 나올 때 지나온 길이 아닌 남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헐~. 이번에도 흉노에게 발각되어 다시 억류되었습니다. 다시 1년이 지났을 즈음 마침 흉노 왕(군신선우)가 사망하고 흉노에 내란이 발생하자 어수선한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BC. 126년. 13년 만에 감격스런 귀국. 단지 흉노인 처와 시종 한 명만 데리고.

‘동맹’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13년간의 여행을 통해 서역과 이란, 페르시아, 시리아, 인도에 이르는 국가들의 정보를 풍부하게 얻은 장건은 한 무제에게 그가 아는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가히 '암중모색'으로 얻은 '세기의 브리핑'이었습니다.

(이 여행기는 이동구 팀장이 주주, 독자와 함께 한겨레 테마여행 <실크로드 문화답사>를 다녀온 후 지난 해 9월부터 페이스북과 개인 블로그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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