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축이 23.5도 기운 지구에서 중위도에 자리한 대한민국은 추분이 지난 만큼 햇볕 입사각이 수그러들었다. 온난화의 여파로 점점 뜨거워지며 길어지던 더위도 아침저녁으로 기운을 잃더니 이젠 한낮에도 선선해졌다. 중국 인민의 난방 연료가 석탄에서 천연가스로 바뀌면서 우리 하늘이 눈에 띄게 깨끗하다. 짧아지는 가을이 겨울에 바통 넘기기 전, 전국은 3년 미루던 축제에 휩싸였는데, 열기는 그리 뜨겁지 않다.

한적했던 공원 주차장이 어느 날 만원이 되었다. 축제가 열리는 중이라는데, 알지 못했다. 길 가장자리를 메운 승용차에서 구청 공무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하게 물건을 나르는데, 개회식이 끝났는지 정장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그 물건을 손에 들고 빠져나간다. 산책하던 길이라 슬쩍 다가가 거들떠보니 시무룩해진 현장에 주민의 열기는 보이지 않았다. 쌓아 놓은 페트병 생수 하나 챙기고 나왔는데, 그날 저녁 축포 소리가 이어졌다. 고층 아파트로 좁아진 하늘을 불꽃이 수놓은 것이다.

주민 주도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능동적으로 어우러지던 축제라면 3년 만에 가슴이 설렜을 텐데, 괜스레 시큰둥해진다. 관에서 통반장 등 떠밀어 좌석 채우는 지역 축제들이 한꺼번에 열리지 않던가. 지자체장과 지역 정치인이 행사 앞자리를 다투다 일제히 사라지는 축제 현장은 대체로 한가한데, 격리가 풀리자 3년치 예산도 일제히 풀렸을까? 불꽃놀이로 천지 사방의 밤하늘이 어김없이 화려했지만, 주민의 열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국의 축제 프로그램은 천편일률이다. 갈무리한 지역 특산물 홍보를 위해 빨리 또는 많이 먹기 대회를 다른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성원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축제 명칭을 딴 무슨 무슨 “아가씨 선발대회”가 사라져 그나마 다행이다. 트로트 가수들은 이맘때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게 틀림없는데, 불꽃놀이 축포를 제작하는 화약회사도 무척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이맘때 “끼룩끼룩” 구만리 하늘을 기르며 날아오는 기러기를 비롯한 철새들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정한 세계 철새의 날(World Migratory Bird Day)인 지난 10월 8일, 105만 시민이 운집한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해마다 5월과 10월 둘째 주 토요일을 ‘세계 철새의 날’로 정한 UNEP는 올해 구호로 “새들을 위해 불을 꺼주세요!”였다고 전한 한 언론은 인공 조명으로 새들의 이동에 심각한 피해를 안긴다고 덧붙였다. 한강 하구에 도착한 멸종위기종 큰기러기는 멀리서 번쩍이는 불꽃에 얼마나 긴장했을까?

l출처 :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wild_animal/1062274.html
첫 겨울 철새인 큰기러기 무리가 지난달 23일 한강하구에 내려앉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보호동물이다.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출처 :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wild_animal/1062274.html)


한강공원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흰꼬리수리, 큰기러기, 황조롱이를 비롯해 50여 철새가 찾는 월동지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새해 불꽃놀이로 수백 마리의 새가 죽었고 미국 조류보호단체 ‘오듀본 협회’(National Audubon Society)는 911 희생자 추모를 위해 상공에 비추는 거대한 ‘추모의 빛’으로 해마다 16만 마리가 희생된다고 주장한다. 많은 희귀 조류는 물론, 최근 수달이 찾아오는 한강 밤섬의 동물은 안전했을까? 규모 키우며 화려해지는 불꽃놀이로 쓰레기 몰살을 앓는 우리는 불꽃놀이가 조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

가을이 깊어지면 가로수는 알록달록한 털실 옷을 입는다. 겨울에 따뜻하라고 씌웠을까? 털실은 터무니없다. 가을 다가올 때 땅바닥 근처에 짚으로 단단히 감싸야 옳다. 곤충의 알이나 번데기가 겨울에 모이도록 짚을 두르는 것인데, 털실이라니. 이른 봄에 짚을 태우며 알이나 번데기를 제거해야 하는데, 미관을 위해 가로수에 예쁘게 씌운 털실 옷은 이듬해에 재활용할 게 틀림없다. 털실을 씌운다고 나무가 위험해지는 건 아니지만, 연말연시에 작은 전구들을 뒤집어쓴 나무들은 다르다. 휴식과 수분을 잃는 만큼 위험해진다.

“이러다 다 죽어!” 하는 제목으로 지나친 불꽃놀이를 유일하게 경고한 언론, <한겨레> 신문은 2020년 체코 자연보호청의 보고서를 인용했다. 물새, 맹금류, 까마귀들은 불꽃놀이의 음향과 시각에 민감하게 반응해 심박수 증가, 불안, 탈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폭죽이 발사되면 갑자기 500미터 상공으로 빠르게 비행하는 새들을 관찰한 네덜란드 2010년 분석도 덧붙였다. 서울세계불꽃축제로 얼마나 많은 새들이 고통받았을까? 10월 전국에서 요란했던 불꽃놀이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천편일률 축제에 주민이 시큰둥해하자 지자체마다 새로운 내용을 고민한다는데, 축제는 멍석을 까는 지자체보다 참여하는 주민이 주관해야 흥이 돋는다. 지원하되 참견하지 않는 문화정책은 중앙정부의 몫에서 그칠 리 없다. 지역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는 축제를 주민이 능동적으로 열어야 의미가 크지만, 거기에 생태계를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자연의 오랜 이웃인 동식물의 희생을 외면하는 축제는 삼가야 옳지 않을까? 

<한겨레> 관련 기사 : “이러다 다 죽어!”…3년만의 불꽃축제, 새들은 어땠을까요?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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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미경 편집장 

박병상 독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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