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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9일 저녁 6시34분. “압사당할 것 같아요”라는 112 첫 신고, 그 뒤 “대형 사고 나기 일보 직전”(밤 9시)이라는 현장의 잇따른 ‘경고와 요청’ 가운데 한번이라도 국가의 ‘응답과 대응’이 제때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이태원 현장 경찰의 교통 기동대 급파 요청을 용산경찰서가 받아들였다면, 서울청 112상황실 책임자가 규정에 따라 112상황실을 지켰다면, 그리고 참사 직후 소방·경찰 등 재난 지휘 기관들의 ‘보고·지시와 공조’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면…

29일 저녁 6시34분 112 첫 신고부터 30일 새벽 2시30분 첫 재난대책회의까지 절규로 가득 찼던 이태원 참사의 지옥 같은 8시간을 되짚는다. <한겨레>가 직접 취재한 내용과 함께 △경찰 특별수사본부 언론 브리핑 △소방·경찰·대통령실 등 정부 자료 △구조 상황 보고서 △현장 녹취 및 메시지(112·119 신고 녹취, 소방 무전 녹취, 모바일 상황실 메시지) △국회 요청 자료 등을 종합해 국가가 사라졌던 결정적인 순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무(전)기 침묵. 용산 하나가 지휘한다”

29일 밤 11시8분 이태원 참사 현장의 다급한 상황을 전하던 서울종합방재센터 상황실 무전기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목소리였다. 최 서장은 이태원 사고 소식을 듣고 밤 10시28분 현장에 도착해 사고 수습을 지원하고 있었다. 당시 지휘권을 갖고 있던 용산소방서 지휘팀장은 최 서장에게 지휘 권한을 넘겼다. “해밀톤호텔 뒤편으로 추가 구급차 요청.” 최 서장의 첫 지시였다.

30일 새벽 3시20분 ‘통제단 집결’ 요청까지 최 서장은 무전기 버튼을 54번 눌렀다. “추가 소방력 지원 요청한다. 해밀톤호텔 뒤편에 시피아르(CPR) 환자 한 40명 있으니까 빨리.” “구조대 추가로 요청해줘. 구조대 빨리 추가로 요청. 사망자 발생했어.” “해밀톤호텔 뒤로 빨리 경찰력을 추가로 출발토록 해.” 대부분 ‘소방력’과 ‘경찰력’을 동원해달라는 얘기였다. 해밀톤호텔 골목의 통제가 한참 동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은 참사 발생 3분 뒤부터 30일 0시17분까지 경찰에 15차례 지원을 요청했다. 재난 대응의 두 축 중 하나인 경찰이 없는 상황에서 최 서장과 현장 의료진은 경찰을 끊임없이 찾았다.

<29일 밤 11시20∼39분>

용산소방서장 “헤밀턴호텔 뒤편으로 모두 소방력을 보내, 지금 CPR 환자가 하도 많아, 지금 몇 명인지 셀수도...”

119 신고자 “제가 10시 17분에 전화드렸거든요? 그때 죽을 뻔해서 전화드렸는데 그때 전화받으신 분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원래 절차가 그런 건 알겠어요. 그런데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실제로 쓰러진 사람이 있냐’ 그딴 개같은 소리를 하시고 너무 화가 나고 미치겠고 화풀이라도 하고 싶어서 전화드렸거든요.”

119 상황실 “왜냐면 저희가 차종이 많고 차를 몇 대 보내야 하는지…”

119 신고자 “제가 지금 군부대를 투입해도 모자르다고 경찰이고 소방관이고 다와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말씀드렸거든요.”

용산소방서장 “해밀톤호텔 뒤편에 환자가 수십명이야. 빨리 소방력을 그쪽으로 보내주기 바라고, 추가 경찰력을 빨리 보내주기 바란다.”

“해밀톤호텔 뒤편으로 경찰력이 많이 필요하니깐 경찰력 추가 출발 요청하도록.”

“헤밀턴호텔 뒤편에 경찰력 추가 비발 요청, CPR 환자가 수십명이야. 지금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의료진 모바일 상황실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깔려 있는 상황(입니다).”

“경찰에 큰 도로쪽 응급의료소 공간 확보 요청해야할 것 같습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대응 2단계로 상향하겠다는 무전이 도착한 지 약 20분이 지난 시점인 밤 11시36분 최 서장이 외쳤다. “빨리 직원 비상을 걸어서 집에 있는 비번자들 다 동원시키도록 해.” 소방 대응 2단계 발령부터는 인근 소방서 119구조대와 인력 400여명이 총동원된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의료진을 경찰이 막아서는 일도 발생했다. 응급의료 책임자인 용산구 보건소장은 밤 11시30분 이태원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했다. 그는 환자 분류·이송을 지휘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보건소장임을 확인할 수 없다며 현장 접근을 막았다. 보건소장은 용산구청으로 돌아가 출입증을 챙겨 30일 0시9분 현장에 복귀했다. 의료진과 서울시 상황실 관계자가 모여 있는 모바일 상황실에서는 “이런 식이면 재난의료지원팀 출동 못 시킨다”는 말로 현장의 불편함을 전달했다. 재난안전통신망도, 소방·경찰·의료진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밤 11시40∼59분 구조 상황>

신고자 “지금 여기 사람이 많이 쓰러졌는데 10분이 넘었거든요, 왜 이렇게 안와요?”

119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선생님 진정하시구요”

신고자 “이태원이요! 이태원!”

119 “진정 하시구요,천천히 말씀해주세요. (…) 용산구 이태원동 ****-**번지 말씀하시는 거에요?”

신고자 “네,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 심각해요.”

모바일 상황실 “의료진 조끼 입은 우리 지원센터 인력을 경찰이 자꾸 통제해서 현장에 진입이 안 된다고 하네요. 이런 식이면 저희 DMAT 출동 못시킵니다.”

“현장 진입 안 시켜주면 저희 다 철수합니다.”

“신속대응반 지원센터 모두 현장 진입 못했습니다. 자꾸 이러시면 저희 다 철수합니다.”

용산소방서장 “지금 해밀톤 호텔 앞이 너무 혼잡하니까 경찰력을 추가 출발해가지고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까지 모두 통제할 수 있도록!”

서울소방본부장 “현 시간부로 대응 3단계 발령한다!”

30일 새벽 2시15분 최 서장은 해밀톤호텔 근처에 마련된 임시 상황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첫 언론브리핑이었다. “1시30분 기준으로 사망자 59명 포함해 209명 사상자 발생했습니다. 시시각각 바뀌고 있습니다. 원인은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떨리는 손이 카메라에 잡혔다. ‘120명 사망·100명 부상’(새벽 2시58분) ‘146명 사망·150명 부상’(새벽 4시7분) ‘149명 사망·76명 부상’(아침 6시32분) ‘151명 사망·82명 부상 ’(오전 10시10분) 최 서장의 언론브리핑은 5차까지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소방에 필요한 활동을 적절하게 지시하지 못했다’며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최 서장을 입건했다. 소방 당국이 급파한 첫번째 구급차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했던 그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질 각오가 돼있다”고 말했다.

첫 119 신고…“종로 구급차 출발합니다”

소방 당국이 참사 현장에 첫번째로 급파한 구급차는 종로소방서 소속 종로119안전센터 구급차였다. “살려달라”는 시민의 구조 신고에 국가의 첫 응답이었다. ‘압사’란 단어가 담긴 119 첫 신고가 들어온 지 3분 만인 밤 10시18분 구급차는 비상벨을 울리며 출발했다. 119상황실은 구급차에 “사람도 깔려 있다고 하고 좀 많이 복잡한 것 같다”는 신고 내용을 소방 무전으로 통보했다.

“이태원으로 이동 요청된 구급차는 빨리 출발하세요.” 곧바로 압사 신고가 빗발치자 상황실장이 독촉했다. 15분 만에 이태원 압사 관련 119 신고가 25건이나 접수됐다. 10시32분 위급한 출동 지령을 뜻하는 코드제로(0)가 발령됐다.

<밤 10시20∼39분 119 녹취록 일부>

신고자 “(비명, 소음) 여보세요. 빨리. 여기 살려주세요! 여기 이태원! *** 앞이에요. 살려주세요!”

119 “이태원 지금 가고 있어요”

신고자 “(밀지마세요!) 제발이요, 제발. 빨리요! (밀지마! 밀지마!)”

119 “네네. 지금 가고 있어요.”

119 “(밀지마! 밀지마!)”

119 “여보세요? 선생님 이태원이에요?”

신고자 “(비명소리) 여기 사람 여기”

119 신고자들이 신음소리와 비명으로 “살려달라”는 말을 대신하는 순간에서도 구급차는 도착하지 못했다. 녹사평역부터 이태원까지 주차된 차들 때문이었다. 구급차는 주차장이 돼 버린 도로 위에 멈춰선 채 비상등과 사이렌만 울릴 수 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당시 구급차와 함께 이동한 펌프차에 탔던 권영준 구조대원은 “이태원역에서 1㎞ 도로가 꽉 막혔다. 사이렌을 울리며 역주행해 가까스로 갔다”고 말했다.

10시42분 종로119안전센터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첫 119 신고를 받은 지 27분 만이었다. 대원들은 15명의 의식 없는 환자를 발견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시피아르 인원이 모자라. 대원들 빨리!”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뚫고 나왔다. 응급대원만으로 대처가 불가능해지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함께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흉부를 압박했다.

<밤 10시40∼55분 소방 무전 녹취록>

현장 구급대원 “(쓰러진 사람이) 10명 정도 되요. 구급차 빨리! 구급차빨리!”

용산소방 지휘팀장 “현재 시각 대응 1단계 발령 . 발령내용은 해밀턴호텔 골목에 경사로에서 자체 넘어진 행인이 있어 한 20명정도 넘어져 있는 상태.”

중앙응급의료상황팀 “환자가 15명 이상 깔려 있고, 더 추가적으로 발생가능성 높음. DMAT 및 신속대응반 출동하고, 인근수용가능기관도 함께 알아봐야할 것으로 판단됨.” “지역응급의료지원센터도 출동하세요.”

현장 구급대원 “대원들 (해밀톤 호텔) 뒷 골목쪽으로 더 들어와야되요. 훨씬 많은 대원이 필요해요. (소방) 대응2단계 필요해요.”

10시44분 현장 경찰은 참사를 처음으로 인지했다. 마약 단속에 집중했던 형사들이 용산경찰서에 다급한 현장 상황을 보고했다. 현장 소식은 언론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먼저 알려졌다. 11시 트위터에는 “사람 여러명 쓰러져 있고 시피아르 한다고”라는 짧은 글이 게시됐다. 언론 첫 보도는 11시37분에야 나왔다.

11시 다리를 다친 20대 여성이 동작소방서 노량진센터 구급차에 실려 광명 성애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으로 향한 첫 구급차였다. 11시15분 심정지 상태의 30대 여성을 시작으로 구급차는 1분 간격으로 심정지, 실신, 의식 장애 환자들을 싣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이 현장에선 “30여명이 의식이 아예 없다”는 소방 무전이 들어왔다. 환자 이송은 85분간 계속됐다. 30일 0시25분 20대 여성 사망자가 서울병원으로 실려 갔다. 구급차의 첫 사망자 이송이었다.

주검은 참사 현장과 가장 가까운(약 1㎞) 순천향(대)병원으로 모였다. 30일 1시까지 구급차 29대가 순천향대병원으로 향했다. 사망 추정 환자가 일시적으로 순천향대병원으로 몰리자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0시46분 순천향대병원은 “사망 추정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도 1시39분과 45분 “순천향대병원에 보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소방은 병원의 상황을 몰랐다. 2시24분 뒤늦게 최 서장은 사망 추정자를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막을 수 있었던 사고…붕괴된 보고 체계

참사 발생 직후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와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달픈 목소리가 119 신고 전화로, 소방 무전으로, 의료진 모바일 상황실에 쏟아졌지만, 그곳에 경찰은 없었다. 이날 경찰은 대통령실을 보고 있었다.

당시 현장 총괄 책임자였던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를 지켜보다 설렁탕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밤 9시57분 녹사평역에 도착했다. 당시 경찰이 추산한 대통령실 인근 집회·시위 인력은 4만9500여명.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서울경찰청은 소속 기동대 인력 3500여명을 모두 동원했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 “(경찰이) 빨리 오셔서 인원 통제 좀 해주셔야” 한다는 112 신고가 11차례나 들어오는 상황이었지만, 이 서장은 막힌 도로 상황에서 관용차에 머물다 밤 11시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녹사평역에서 사고 현장까지는 2㎞. 이 서장은 그 거리를 차 안에서 1시간이 넘게 허비했고, 골든타임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11월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정우택 의원(국민의힘)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한 시간이 11시5분이 맞습니까?”

용산경찰서장 “기억상으로는 그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정우택 “(사고가) 10시 15분에 났으니까 50분 동안 결국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데 관용차 타고 오느라 늦었다, 이렇게 얘기가 되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용산경찰서장 “그 부분은 저도 정말 죄송하고…”

정우택 “9시 57분에 (112상황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는데 심각하지 않다. 그거 잘못된 보고, 허위보고라고 저는 생각이 되고요. 10시 55분에 이미 다수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태원 엔틱가구 거리 뒤 이태원 파출소로 걸어가는 모습이 나왔는데 이건 상황의 심각성을 몰라서 그랬던 겁니까?”

용산경찰서장 “정말 죄송합니다. 부끄럽고 참담하지만 그때까지 정확한 현장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11시36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임재 용산서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사건을 인지했다. 참사 현장을 목격하고도 이 서장은 김 청장에게 곧바로 보고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책임자인 류미진 상황관리관은 11시39분에야 사고 발생을 인지했다. 상황실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에 온종일 머문 탓이었다. 서울 전역의 기동대 파견 권한이 있는 김 청장은 11시44분 가용부대를 급파하라고 지시했다. 첫 112 신고가 들어온 지 5시간 만이었다. 경찰 최고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30일 0시14분 가장 늦게 보고받았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과 현장 의료진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경찰의 첫 경비 기동대는 29일 밤 11시40분에 도착했다. “구급차를 보내달라. (인파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소방대원의 목소리가 11시39분 소방 무전기에서 터져 나온 직후였다. 참사가 발생한 지 1시간25분 지나서야 인파 통제가 본격화된 것이다.

재난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시20분에야 참사를 알았다고 한다. 이들보다 먼저 대통령이 보고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시1분 참사를 보고받고 11시21분 이상민 장관에게 첫 지시를 내렸다. “신속한 구급과 치료가 이뤄질 수 있게 만전을 기하라.”

2시30분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첫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신속한 신원 확인 작업”을 지시했다.

그 시각 순천향대병원 응급실 앞에는 밤새 연락이 끊긴 가족을 찾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병원 경비원들은 “아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며 울부짖는 여성을 막아서며 “저희도 모른다”고 했다. 구급차 비상등이 뿜어내는 붉은빛이, 눈물이 흘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덮었다. 응급실 앞 사람들이 까무러치는 그때, 구급차들이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줄지어 도착했다.

20일 현재 이태원 참사 희생자는 158명이다.

장필수 곽진산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