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10.29 참사 당시, 외국인 희생자 26명 가운데 이란 젊은이들은 가장 많이 희생당했다. (출처 : 하성환) 이란 반정부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이란 청년 5명을 포함해 모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를 부착했다.
이태원 10.29 참사 당시, 외국인 희생자 26명 가운데 이란 젊은이들은 가장 많이 희생당했다. (출처 : 하성환) 이란 반정부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이란 청년 5명을 포함해 모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를 부착했다.

K-Pop이 좋아서 한국을 찾은 젊은이가 있었다. 그녀는 한국이 좋았고 그래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왔다. 하루빨리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해 한국어학당을 다녔고 우리 문화를 찾아다녔다. 그날도 핼러윈 축제는 한국에서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어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았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외국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표지(출처 : 하성환)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외국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좋아했고 아름다운 꿈을 간직했던 청년들이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외국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표지(출처 : 하성환)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외국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좋아했고 아름다운 꿈을 간직했던 청년들이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어떤 젊은이는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유럽에서 조국으로 유학을 오기도 했다. 그렇게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찾았다가 스물다섯 살에 짧은 생을 마쳤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배우고 싶어 멀리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스무 살 청년도 있었다. 평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데 용감한 청년이었다. 영혼이 따뜻해 주위를 온화하게 만드는 청년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밝은 빛으로 기억되는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갔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홀로서기’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던 젊은이들도 있었다. 젊은 날 아름다운 꿈을 꾸며 그날 모처럼 이태원을 찾았다. 그 젊은이들 중에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아빠에게 골수를 이식한 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매일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던 청년도 있었다. 모두가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답고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이태원 10‧29 참사 이후, 그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들은 오늘도 고통 속에서 슬픔으로 또 하루를 보냈으리라!  아버지는 스무 살 아들의 죽음 앞에서 “수억 번 칼로 찔리는 고통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어머니는 “해가 뜨는 것이 두렵고 제 입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조차 싫었다”(『한겨레』 2022. 11. 22.)고 고통을 토로했다. 이태원 10‧29 참사는 어느 부모님 표현대로 “국가에 의한 부작위 살인사건”이자 “간접 살인사건”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26살 어느 청년이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쓴 추모 편지글(출처 : 하성환)
8년 전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26살 어느 청년이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쓴 추모 편지글(출처 : 하성환)

8년 전 끔찍한 세월호 참사가 있었음에도 또다시 원시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원통하고 참담하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울분이 차오르기도 한다.

이태원 참사는 비행기가 추락한 항공기 참사도 아니고 대형 여객선이 침몰한 참사도 아니다. 연인들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축제 현장을 걷던 서울 한복판 거리에서 발생한 참사였다. 그것도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불과 2k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발생한 참극이었다. 무려 158명의 젊은 영혼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빼앗긴 대참사였다.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톤 호텔 골목길 입구에서 스님들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희생된 젊은이들 넋을 발원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이태원역 1번 출구 해밀톤 호텔 골목길 입구에서 스님들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희생된 젊은이들 넋을 발원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참사를 전후해 국가는 없었다. 저녁 6시~9시경 압사 조짐이 있었던 참사 이전에도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10시 15분! 참사 직후 또한 국가는 완전 실종 상태였다.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그 시간 국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참사 직후 골든 타임도 놓쳤다. 그만큼 희생된 청년들이 많았다.

10시 15분 참사 발생 직후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아예 침묵했다. 참사가 발생한 그 시각 재난 안전 최고 책임자인 행안부장관은 집에 있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보고 받은 시각이 11시 1분, 행안부 장관이 보고 받은 시각은 11시 20분이라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지 1시간이 훌쩍 지난 시점이다. 서울경찰청장과 경찰총수가 보고 받은 시점은 이보다 훨씬 더 늦은 시각이다(『헤럴드 경제』 2022. 11. 3.)

글쓴이가 보기에 이태원 참사! 적어도 세 번 정도 기회가 있었고 막을 수 있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참사 현장인 해밀톤 호텔 골목길 입구는 불과 10m 남짓 거리다. 1번 출구에서 나와 몇 발자국만 걸으면 골목길 입구다. 해밀턴 호텔 골목길은 너비 4m 남짓 좁은 골목길이다. 오가는 인파가 많을 경우 쉽게 흐름이 막힐 수 있는 상시 위험 공간이다. 더구나 경사진 골목길이라 한 사람이 쓰러지면 그대로 압사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따라서 핼러윈 축제 당일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릴 걸 예측했다면 이태원역을 무정차 통과시켰어야 했다.

그리고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골목길 입구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에둘러 돌아가도록 통제했어야 했다. 경광봉을 든 정복 경찰 몇 사람만 골목 입구를 통제했다면 대중은 경찰 통제를 뚫고 골목 입구로 진입하진 않았으리라! 출구를 열어주고 입구만 통제했어도 대중의 흐름이 느리게 지체되었을망정 정체 상태를 빚진 않았으리라!  오가는 인파로 드나드는 흐름이 막히고 군중압사가 충분히 예고됐음에도 골목길 입구엔 경찰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일본 경찰처럼 경찰 현장 지휘자가 높은 곳에 위치해 군중의 흐름을 읽고 군중을 유도, 통제할 수 있도록 무전조치만 취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이 문제는 경찰 고위직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핼러윈 축제가 매년 있어 왔고 큰 불상사 없이 진행됐었다. 특히 올해는 바이러스 상황이 완화되면서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까지 했다고 하지 않던가!

대통령-국무총리가 아무리 마약 범죄에 방점을 찍고 강조했어도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게 경찰의 1차 책무임은 변함이 없다. 마약 단속에 형사들을 대거 투입하면서도 군중압사가 발생할 예상 공간에 경비 경찰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은 사실은 순전히 그들 고위 경찰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경비를 위해 용산경찰서 경비병력과 서울경찰청 경비병력 대부분인 3,500명을 투입한 것은 결코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순전히 경찰 고위직이나 관할 서장의 자체 판단의 문제이고 자신들 소관 문제이기 때문이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해밀톤 호텔 골목길에 원통한 흔적으로 남은 절체절명의 순간(출처 : 하성환)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해밀톤 호텔 골목길에 원통한 흔적으로 남은 절체절명의 순간(출처 : 하성환)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도 있었다. 이미 참사 전날 그런 조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사 전날 골목길에선 흐름이 막힌 혼잡인파로 부상자가 발생했었다. 더구나 참사 당일 저녁 6시 34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 “숨쉬기 어렵다”, “통제해야 한다”는 112 신고가 빗발쳤다.『경향신문』 2022.11.22.) 8시~9시에는 그 위험이 감지된 상태였고 참사 발생 전까지 무려 11번에 걸쳐 112 신고가 있었다. 그렇다면 재난 경보가 울렸어야 했다.

참사 당일 아침에 충북 괴산에서 발생한 지진 재난 경보처럼 참사 당일 저녁, ‘이태원 압사 위험’을 알리는 재난 경보시스템이 작동했어야 했다. IT강국! 대한민국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태원 지역 압사 재난 경보’만 발령됐더라면 적어도 참사 현장인 골목길로 사람들이 계속 몰리진 않았으리라! 핼러윈 축제에 가려고 이태원으로 가려던 사람들마저 발길을 돌리게 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재난 관련 주무 부서인 용산구청-서울시-행안부 책임이다. 그런데 예년과 달리 올해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축제 관련 관련기관 대책회의에 불참했다. 대참사 전조가 보였음에도 재난 예방 책임기관인 서울시와 행안부는 참사 전날부터 참사 당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재난 문자조차 보내지 않았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갈 경우, 부상의 위험 내지 압사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재난 경보 문자를 발송했어야 했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용산구 – 서울시 – 행안부는 하나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공공기관 책임자들(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시장, 서울경찰청장, 용산구청장은 이태원 10.29 참사를 예방할 지위에 있었던 법적 책임 단위이다.
이태원 참사 공공기관 책임자들(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시장, 서울경찰청장, 용산구청장은 이태원 10.29 참사를 예방할 지위에 있었던 법적 책임 단위이다.

참사 전후 공공기관의 수장이 보인 행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도 남는다.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축제를 “축제가 아니라 주최 측이 없는 하나의 현상”이라며 책임 회피성 발언을 했다.

안전 주무부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한 모습(출처 :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안전 주무부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한 모습(출처 :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행안부장관은 참사 직후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희생된 젊은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운영위 국정감사에서 “국정상황실은 대통령 참모조직이지 대한민국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발언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 “청와대는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발언한 장면이 떠올랐다.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자 안전 주무장관으로서, 그리고 대통령실 최고위직 인사로서 비루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세 번째 기회도 있었다. 참사 당일 9시 이후 상황이다. 경찰 스스로 위기 상황을 감지한 시각인 만큼, 경찰청 기동대를 비롯해 경비병력을 즉시 투입해 혼잡경비 상황에서 경찰 통제선을 설치함으로써 압사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폴리스 라인, 이른바 경찰 통제선을 설치하고 기동대 경비병력을 9시에 대거 투입했더라면 대중의 흐름을 통제, 유도할 수 있었고 끔찍한 참사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이태원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이태원 파출소(출처 : 하성환)
이태원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이태원 파출소(출처 : 하성환)

그러나 기동대가 이태원에 도착한 시각은 9시 30분이었고 참사 현장에 투입된 시각은 다수 희생자가 발생한 뒤였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대각선 맞은 편에 이태원역 3번 출구가 있다. 그러나 당시 이태원 파출소 경찰들은 참사가 발생한 과정에서 고군분투했음에도 파출소 인력으로 참사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 문제 역시 112 상황실로부터 보고를 받은 경찰 고위직의 책임이 크다.

해마다 핼러윈 축제는 있었다. 지난해에도 열렸고 바이러스 이전에도 축제는 열렸다. 그때는 안전하게 끝났는데 왜 올해는 대참사가 발생했을까? 이전에는 적어도 관계기관장이 핼러윈 축제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경찰이 흐름을 통제하고 유도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질 못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올해는 경찰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을까?

그것은 청와대 용산 이전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된다. 대통령 집무실을 종로구 청와대에서 용산구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관할 경찰서장은 용산 대통령실 경비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핼러윈 축제는 오히려 관심 밖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높다. 112 위험 상황 보고를 늦게 인지한 탓도 있었겠지만 걸어서 10분 거리를 차로 1시간을 허비한 이유가 모두 그것을 반증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변한 게 없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해 대책을 세웠다면 반복되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8년의 세월을 그렇게 의미 있게 채우질 못했다.

해밀톤 호텔 골목길 참사 현장(출처 : 하성환)
해밀톤 호텔 골목길 참사 현장(출처 : 하성환)

못난 어른들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겼듯이 못난 어른들 때문에 꽃같이 아름다운 젊은이들 158명이 원통하게 죽어갔다. 끔찍하고 원통하게 죽어간 젊은 넋들을 제대로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서도 젊은이들 죽음을 국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승화시켜야 한다. 그것은 유가족이 참여하는 참사 원인 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유가족들 스스로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서로 위로해 줄 유가족 공동체를 마련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지하 벽면 양쪽에 빼곡한 추모 편지글(출처 : 하성환)
이태원역 1번 출구 지하 벽면 양쪽에 빼곡한 추모 편지글(출처 : 하성환)

그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책무다. 살아 있는 우리 어른들은 눈 부릅뜨고 이행과정을 지켜볼 일이다. 특히 권력을 틀어쥐고 권한을 행사할 위치에 있는 위정자들은 이태원 대참사에 대해 마땅히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문 발표와 고위직을 포함해 책임자 처벌! 그 길이 공동체를 위해 다시는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다시 세월호 참사처럼 흐지부지 끝낼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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