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서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서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정치인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엎드려 빌었다. 아들이 돌연 세상을 떠난 이유와 국가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철저히 밝혀달라고. 특히, 여당 지도부인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이름을 부르며 간곡히 호소했다.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의 울음 위로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서 이종철씨는 무릎을 꿇고 이번 참사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그는 지난 10월29일 이태원 참사로 아들(이지한씨)을 잃었다. 이씨가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할 때, 함께 자리한 참사 희생자 유가족 10여명은 회의장 책상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 울음이 이씨의 비통한 목소리에 포개졌다.

이날 간담회는 반쪽 행사였다.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이 모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당 위원들은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반발해 간담회 불참을 선언했다. 그런 여당 지도부를 향해 이씨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간청하며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빈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정확히 8년 전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2014년 10월29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인 이남석씨는 당시 여당 대표였던 김무성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씨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김 대표에게 호소했다.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다. 그날,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를 찾은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그곳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향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대통령의 의도적인 무시에 이씨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에 오르는 여당 대표에게 매달린 것이다. 이씨는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가 참 미웠지만, 내가 힘없는 아빠니까, 자식 죽은 이유도 밝히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니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들 부모를 바라보는 일은 참담하다.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자식이 사라진 세상에서, 부모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호소한다. 진상을 밝혀달라고, 책임자를 처벌해달라고. 죽음의 원인을 밝히지 않고서는 자식을 떠나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부모들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왔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질 수 없는 마음이다.

비극은 참사 그 자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는 것, 책임자를 단죄하지 못하는 것 역시 비극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똑똑히 확인했다. 그리고 이런 비극이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해 158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 숨진 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 정작 무릎을 꿇어야 하는 ‘윗선’ 가운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고, 어렵사리 첫발을 뗀 국정조사도 여야 힘겨루기로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는 사이 에스엔에스(SNS)나 관련 기사 댓글에 오르내리는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한 혐오 발언이나 2차 가해, 책임 전가는 늘고 있다.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 등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무도한 자들의 공격은 거세질 게 뻔하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유가족의 마음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삶을 충만하게 채워줬던 자녀를 늘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서 배웠다. 박요섭씨는 말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아이한테 한없이 미안해요. 그래서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 희찬이만 생각하면 어떤 공격도, 아무리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도 두렵지 않아요. 수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이죠. 어떤 싸움도 해낼 자신이 있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을 테니.”

8년 전 그들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할 수 없는 이들의 고요한 투쟁이 시작됐다. 5일 기준, 희생자 87명의 유족이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가칭) 준비모임에 참여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은 이제부터다.

[편집국에서] 김경욱 | 스페셜콘텐츠부장 dash@hani.co.kr

 

한겨레 김경욱 | 스페셜콘텐츠부장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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