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지우기 - 일본 여행에서 서복의 흔적을 찾다

1955년에 태어났으니 이제 67세. 요즘은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오래 살 자신이 없는지라 버킷리스트는 앞으로 몇 년 안에 바짝 지워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5박 6일의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노안으로 저가 항공을 뒤지고, 저렴한 렌터카와 저렴한 숙소를 고르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지만 잡아놓은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서복(西福)>

마음 씀씀이가 푸근한 선배 S는 ‘정신세계, 영성의 고양’에 큰 관심이 있었다. 그의 별명은 ‘도사 킬러’였는데 도력이 높은 도사를 알게 되면 바로 과학의 저편 세계가 궁금한 우리에게 연락을 주셨다. 각자 과학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이 있던 우리는 쪼르르 달려가 그들에게 저편 세계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며 그들만이 알고 있는 ‘무엇’을 찾고자 했다. 어떤 이는 ‘가계’의 힘으로 영의 세계로 들어갔고,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세계에 입문했다고 했다.

효창공원 근처에 사는 머리가 하얀 그 할머니를 만난 것은 2005년 전후였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돼 희미하지만 할머니의 집은 대로에 접해있는 목조 단독주택으로 출입문 입구 위에는 神宮(신궁)이라는 한문이 쓰여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들 가족과 사셨는데 그 집 일대에 도시계획이 잡혀 있다고 했다.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한 이유는 상자가 차곡차곡 여기저기에 쌓여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쪽 바닷가에서 태어난 처녀는 어느 날 동네 친구들과 바구니를 들고 조개를 잡으러 바닷가로 가던 중 홀로 뒤처지며 쓰러졌는데 이후 그녀는 용한 예언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처녀들이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끌려갈 무렵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가 돈을 가마니로 긁어모았다는데 해방이 되자 그 돈을 다 가져올 수 없었다. 치과의사와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낳았다. 신이 그녀에게 내린 과제는 이러했다.

‘언젠가 오게 될 개천(開天)의 잔치를 위해 꽃등을 만들어라. 커다란 배를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띄우고 수천 개의 꽃등을 달고 곡식으로 빚은 술을 나누며...’

한참 때는 육영수를 비롯한 고관대작의 부인들을 다 만났다고 했다. 그녀는 돈을 버는 족족 오색 천을 끊어 꽃을 만들고 등에 붙여 차곡차곡 상자에 담아두었다. 그러다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중단하면 자녀가 죽었다. 깜짝 정신이 들어 부지런히 만들다가 회의가 들어 중단하면 또 하나를 데려갔다. 그렇게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꽃등을 만들었고 꽃등을 담은 상자는 집 안 구석구석에 쌓여갔다. 통일교에서 소문을 듣고 와서 7억에 사가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거절했다. 할머니는 언젠가 그 행사를 하게 될 것이고 행사가 끝나면 꽃등을 없애지 말고 전시해 줄 것을 소원했다. 체육관 규모의 장소가 필요할 터였다. 아무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통일의 날이 그날이런가, 안타까운 마음에 일행 없이 혼자 할머니를 다시 찾았을 때 할머니가 ‘서복’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느 날 오래된 영(靈)이 할머니를 찾아왔더란다.

“나는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을 찾아오라고 보낸 사자 ‘서복’이다. 큰 배 석 대에 각각 천 명이 넘게 남녀를 싣고 불사약을 찾아 떠났다. 열 명을 한 조로 해서 대표 하나, 다시 그 열 명을 통솔하는 대표 하나. 그렇게 천여 명씩 탄 배 세 척이 한반도의 서해를 타고 내려오면서 중간중간 해안기슭에 배를 대고 불사약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제주도의 서귀포(西歸浦)는 서(西)복이 내렸다가 돌아간(귀/歸) 장소로 현재 서복공원이 있다. 서복은 제주 정방폭포, 거제 우제봉, 남해 등을 통과하면서 해안의 바위에 서복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서불과차(徐市過此)’ 따위의 글을 바위에 새겼다. 후일을 위해 증거를 남기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마침내 일본으로 내려가 불사약을 찾았다. 가는 도중 배 한 척은 풍랑에 실종되고 또 하나도 어디서부터인가 따라오지 않았다. 일본에서 드디어 찾아낸 불로장생약은 바로 후지산에서 솟는 물. 물을 가지고 황제에게 가려 할 때 산신은 나를 만류했다. ‘가지 마라. 황제가 그 물동이로 네 머리를 쳐서 죽이리라!’

오랜 항해에 지친 일행들은 죽고 병들거나 도망갔다. 나 역시 황제에 대한 두려움과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산에서 내려와 바닷가에서 병들어 죽고 말았다. 황제를 비롯해 후세의 사람들에게 나의 간절한 충심을 전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떠돌다가 드디어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났는데 이를 어찌하나. 네게도 역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구나.”

진시황제는 분노로 서복의 가족 3대를 처형했고 세상 사람들은 서복을 배신자, 사기꾼으로 불렀으니 서복은 죽어서도 가슴 에이는 고통을 안고 구천을 떠돌았던 모양이다. 아드님이 할머니가 구술한 것을 적은 원고를 메일로 보내주었는데 이후 컴퓨터를 교체하면서 내용도 챙기지 못했고 수년이 흐른 뒤 다시 찾아갔을 때는 전철역이 생겨 집도 흔적 없이 사라져 과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좀 더 성의있게 기록과 할머니 인적 사항 등을 챙겨둘 것을…

그런 후회 때문에 이번 일본 여행에서는 서복의 흔적을 좀 더 확실하게 찾고 싶었다. 수천 년간 자신의 충심을 전하고자 애를 태웠던 서복이나 평생 신이 내어준 숙제를 하느라 일생을 바쳤던 할머니나 모두 못다 이룬 숙제를 끌어안고 아쉬움을 품었을 터이다.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에서 구마노시의 중간쯤 되는 와카나와현 산속 숙소는 다다미방에 석유풍로로 난방하는 낡은 민숙이었지만 바로 앞의 냇물은 1급수로 맑았고 냇물의 군데군데를 막아놓은 노천 온탕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서복의 묘는 구마노시(Kumano City)의 바닷가에 있는 하다스 역(Hadasu 驛) 부근에도 있고(西福의 宮)  이보다 더 먼저 통과했을 남서쪽의 신궁역(Shingu Sta.) 부근 서복공원(Jofuku Park) 안에도 있다.

하다스 역 근처에 있는 서복의 묘. 근처에 있는 서복다실이 주1회 반나절씩 문을 연다.
하다스 역 근처에 있는 서복의 묘. 근처에 있는 서복다실이 주1회 반나절씩 문을 연다.
하다스보다 먼저 도착했을 것으로 보이는 서남쪽 해안의 신궁역 근처 서복공원 안에도 서복묘지가 있다.
하다스보다 먼저 도착했을 것으로 보이는 서남쪽 해안의 신궁역 근처 서복공원 안에도 서복묘지가 있다.

일본의 남쪽 해안에는 서복에 관한 전설과 진나라 당시의 유물들이 발견되는 곳이 20여군데나 된다고 하니 서복이 얼마나 열심히 자기의 소임을 다 했는지 짐작이 간다. 권력자의 불로장생의 꿈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귀국을 포기하고 이국땅에서 스러져간 서복과 신의 숙제를 미완으로 남기고 안타까움을 품고 돌아가셨을 할머니의 성심을 통해 나는 ‘과학의 저편 세계’에 대해서 조금 더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성심을 밝혀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기록을 남기는 것 또한 내게 주어진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남쪽 해안의 서복 관련 유적지를 본 뒤에 친구를 만나러 오사카로 향했다.

*뱀 발-후지산 생수에 들어있다는 바나듐은 제주도 삼다수에도 다량 들어있다고 한다. ^^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고은광순 주주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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