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투어는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삼대를 거친 남북의 영세중립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과 집념에서 잉태되었고 한반도중립화협의회와의 협업이 발동하여 싹이 트게 되었다.

그런 집념이 어떻게 삼대까지 전해 졌나?

1948년에 가족을 두고 북으로 간 이종만(리종만)선생이 시발점이다. 그 당시 두 살이었던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 자서전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그해 가을 초 어느 날 서울 우리 집 대문 밖에 서서 막내딸인 어머니에게 “나는 이제 멀리 떠난다. 잘들 있거라”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졌다. 대동광업주식회사가 번창하던 시기에 찍은 사진이 있었기에 남쪽에 있는 후손들이 그의 영상을 간직하고 있다.

대동 광업 주식회사 이종만 사장
대동 광업 주식회사 이종만 사장

리종만은 허헌, 여운형과 뜻을 함께했다. 북에 가서는 고위직을 여러 곳 거쳤고, 그중 하나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1955-1956)이다. 그는 월북해서 조국의 영세중립 평화통일을 간절히 염원했다. (고종이 1904년에 영세중립 선언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 이종만은 19세였다) 우리 부모는 자유로운 삶을 찾아 1964년에 한국을 떠나 브라질로, 1968년에 다시 캐나다에 이민했다.

1974년에 토론토의 한국인들 가정에 통일신보라는 얄팍한 신문이 무상 배달되었다. 어느 날 2면에 리종만 선생이 평양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이 적힌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를 접한 순간부터 우리 집안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 통일신보가 평양 통일신보사에서 발행하는 북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의 기관지로 북한 대남 선전용 주요 언론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기사를 읽은 후 1975년에 어머니는 복잡다단한 경로로 토론토에서 나이지리아를 거쳐 평양에 가서 부녀 상봉을 했다. 캐나다 시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할아버지로부터 “우리 조국은 영세중립으로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 너는 그 일에 여생을 바쳐라.”라는 말을 받고 왔다. 리종만 선생 사망에 관한 기사가 1977년 통일신보에 실리면서 그 말은 분단된 두 조국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살아간 할아버지의 유언이 되었다.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

어머니는 그 후 삼십 년간 천부경 81자와 ‘남북의 영세중립 평화통일’을 기도문으로 만들어서 아침저녁으로 기도했고, 나는 그 모습을 줄곧 보며 살아왔다. 2015년에 Women Cross DMZ에 참여한 것과 관련되어 강종일 박사를 서울에서 열린 평화학의 대가 요한 갈퉁 강연에서 만나게 되면서, 한국에 한반도 중립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상당 숫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내게는 어머니의 기도가 의식의 통로가 되어 할아버지의 신념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영세중립이 우리 집안일 정도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론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론’의 핵심은 민중 중심의 통일이고 마음의 힘으로 이루는 통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깨어나야 하고 바로 서야만 한다. 스스로 정직해야 하고 진실해야 하며 사랑과 평화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신이 되어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를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로의 진심과 진실을 토대로 하지 않는 한 그 외의 다른 노력은 모두 헛된 것일 뿐이다.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자신부터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의 본질을 올바로 바라보는 눈이 떠지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이 열린다. 나는 잘하는 걸로 쳐두고 상대는 잘못한다고 하는 한 대화의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상대를 진정으로 깊이깊이 이해하려는 마음만이 오직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이다.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게 되면 비로소 평화에로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거기에 비로소 함께 손잡고 통일에로의 길로 나아가고 싶은 감동과 열정이 샘솟게 된다. 우리의 진정한 깨달음과 우리의 진실한 실천은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를 싫어하고 배척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요, 삶의 근본 법도인 것이며, 이것이 인의(仁義)이고 사랑이고 자비일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난 다른 삶의 길을 통해 우리가 행복과 평화에 이를 수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오직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니 우리는 이제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불행은 그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충분히 깨닫고 있지 않은가.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은 남북한 동포의 마음의 통일로써만이 이루어진다.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는 순수한 인간의 본성에서, 그리고 이제 다시 부활하는 민족혼의 불길에서, 그 근원적인 기운이 샘솟아 날 것이다. 그 기운을 함양하며 대동과 홍익의 정신으로 가족의 행복, 이웃의 행복, 북한 동포의 행복을 진정으로 염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나를 온전히 꽃피우는 길이며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이며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먼저 나를 바라보자. 나는 정직한가, 진실한가를 스스로 물어보자. 내 마음과 기운이 맑고 밝은지를 점검해보자. 내 안에 사랑과 평화의 에너지가 충만한지를 느껴보자. 내가 하루하루 이러한 삶으로 나아가는 그 길이 바로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길이다. 매일의 삶에서 명상에 잠겨보고 심신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고요함과 평화감 속에서 태양처럼 밝은 본성의 빛이 내면에 가득 차는 감동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 빛의 파동, 사랑의 파동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이미 깃들어 있는 동일한 파동에 공명을 일으켜 그들도 밝은 빛의 존재가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동과 홍익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을 이루어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신선이 되는 길이다. 청빈낙도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물질을 초월하는 정신과 영혼에 있는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분열된 작은 나가 큰 하나로 통합되는 우주의 진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주의 본질은 평화이고 하늘의 본질은 사랑임을 인간의 본성을 꽃피움으로써 입증하는 것이다. 이로써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은 인류의 대 축제가 되고 대 희망이 될 것이다. 하늘이 기뻐하고 지상만물이 흥겨워할 것이다. 이것이 천지인이 조화로운 하나로 귀의하는 풍류도이다. 신난다!

대동교학회 취지서의 아버지의 끝맺는 말씀으로써 나의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론’의 마지막 말을 대신한다.

“조선의 동포여, 세계의 동포여, 자손만대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하여, 인류의 명예를 위하여, 크게 새로워지는 새 세상의 건설을 위하여, 떨치고 일어나지 아니하려는가. 생존경쟁의 국제생활의 옛 습관을 깨뜨리고 서로 사랑하고 돕는 신세계 질서를 건설하지 아니하려는가. 이기적이고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힌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서 남을 사랑하고 도덕이 빛나는 천국을 건설하지 아니하려는가. 하늘이 진실로 바라는 바가 바로 이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이종만, 1948)

2017년에 평양을 방문하여 김철주 사범대학 사회정치학과  강좌장 정기풍 교수와 만나서 남한의 중립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세 시간에 걸쳐서 나눈 적이 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고, 남한은 주권국이 아닌데 어떻게 중립화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남한은 주권국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들이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계속 나오는 남한의 중립화 운동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만약에 남한에서 정말로 중립화하자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자주국이 되자는 말이니까 희망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생전에 중립화 운동가들을 핍박했고 리종만 선생의 동지인 조소앙 선생은 그와 연루되어 병환으로 사망했다. 그런데도 조국통일 연구원 실장인 정기풍 교수는 남한의 중립화 운동은 주권을 찾자는 운동이고 남한의 주권 찾기 운동은 그들에게 높게 평가된다고 말한 것을 가슴 속에 담아서 돌아왔다.

한반도 중립화 활동에 20여 년을 투신해 온 강종일 회장을 만나면서 오랫동안 나의 의식 저변에 잠겨있던 것이 살아나게 되었으며, 인생의 과제가 되었고 교육철학자의 본능을 발동시켰다. 모든 문제는 교육과 배움을 통한 실천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중립화 운동을 전개하는 일에 착수하고, 강종일 박사를 선생으로 삼고 중립화 공부를 시작한 지 7년째 되었다.

오랫동안 강대국의 침략과 통치를 받던 작은 나라가 중립화를 실현하려면 당사국인 국민들이 우선 중립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의 중립화 운동은 소수의 열정적인 중립화 운동가들의 강렬한 개인적 의지로 밀고 나가는 식이었다. 그 방식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대중 교육이다. 중립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중화라는 첫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립화에 관한 교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여름에 [문답으로 알아가는 중립화 이야기] 소책자를 만들게 되었다. 한/영으로 만들어서 국내외 여러 사람에게 돌린 결과로 수정 보완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이렇게 우리의 스위스 투어는 동서남북 코리안들의 염원이 모아져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의 연장선에서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한태성 대사에게 한반도 중립화가 양국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까에 관한 면담을 갖기를 바란다는 서한을 띄웠다. 어떤 회답이 올지 궁금하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반아 주주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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