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서로 위로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월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서로 위로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왜냐면]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가 밝혀야할 진실④ |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윤석열 정부는 법치주의 세우기를 국정 기조로 강조하며 마약사범에 관한 불법 엄단을 지난해 하반기 주요사업 가운데 하나로 정했다. 10월 들어서는 대통령실과 법무부, 대검찰청, 경찰은 일제히 마약 관련 특별대책을 지시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특히 핼러윈 축제에 마약사범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수사의 전기를 마련하려 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10월28일 마약류 범죄예방 단속 특별형사 활동계획을 세워 당초 배정한 마약단속반 15명을 50명으로 늘려 잡았다. 용산서 형사과는 다음날 기자들에게 이태원 일대에 마약 단속을 나갈 것이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이같은 정부의 마약 대응 기조가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거나 참사 피해를 확대시켰다는 여러 의혹이 제기됨에도 제대로 된 정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먼저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안전사고에 대비해 경비대를 배치할 경우 마약사범들이 오지 않을 것을 고려해 경비대를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7~2021년 5년 동안 해온 경비대 배치(계획)를 지난해에만 하지 않았다. 몰려든 인파로 인한 인명사고 우려 등 비상사태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혼잡경비 인력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참사 당일 이태원 현장에는 마약사범 검거를 위해 파견된 사복경찰이 수십 명 있었다. 국정조사에서 밝혀진 이태원 참사 직전 경찰·소방·구청 등의 직원 배치현황을 보면, 참사 발생 골목 뒷부분인 세계음식문화거리 주변 일대에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1계 2팀과 2계 2팀이 배치돼 있었다. 이들은 인파 분산·차단 등의 참사 발생 예방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마약사범을 검거하기 위해 관찰하는 업무가 중심 업무였기에 안전사고 우려가 구체화한 상황에서도 안전사고 대비 업무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특히 참사 당시 목격자와 생존자에 따르면, 골목에 인파가 집중되면서 발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한두 명씩 기절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구조요청을 계속했음에도 무려 50분 넘게 단 한 명의 경찰관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고 현장이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이때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다고 볼 수 있는데, 인근에 배치된 마약수사대 경찰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참사 이후 희생자의 스마트워치를 확인해보니, 경찰에 의해 강제로 인파가 풀린 시간이 밤 11시35분께로 확인됐다. 경찰이 기자들에게 마약 단속을 포기하겠다고 문자를 보낸 시각은 11시33분. 마약 수사에만 몰두해 구조의 외침을 묵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밖에도 희생자들이 병원에 안치됐을 때, 일부 검사와 경찰이 찾아와 범죄와 마약에 연루됐을 수 있다며 유가족에게 부검을 제안한 사실이 있다. 검찰은 광주지검 검사의 자체 판단으로 마약 부검을 제안한 것처럼 답변하고 있으나 검사가 상부 지시 없이 개인 판단으로 유가족에게 마약 부검을 제안한다는 것은 검찰 조직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부검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이 희생자를 피의자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만약 희생자로부터 마약 양성 반응이 나오는 경우 이 참사의 원인을 마약 투약하고 난동을 부린 것으로 몰아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열살짜리 아이까지 알코올 검사를 하며 술 먹고 난동 부리다 발생한 사건으로 정부 책임이 없다고 덮어버리려 했던 영국의 힐즈버러 경기장 압사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모두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의 안일한 사고 대응과 권력 유지를 위한 정치적 행태가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시켰다. 특히 재난의 대비·대응·수습 전 단계에서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마약 수사 드라이브가 경찰의 기본적 경비행정, 참사수습 행정을 마비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의혹들이 명확하게 설명되고 해소될 수 있도록 보다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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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이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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