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아카시시 불꽃놀이 압사 사건 유족
이태원·세월호 유족 만남 위해 방한

이태원 참사 현장 찾아 헌화하는 일본 아카시시 참사 유가족. 지난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 과정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미키 기요시(왼쪽), 시모무라 세이지 씨가 17일 오전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 추모 메시지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현장 찾아 헌화하는 일본 아카시시 참사 유가족. 지난 2001년 일본 아카시시 불꽃축제 과정에서 발생한 육교 압사 참사의 유가족인 미키 기요시(왼쪽), 시모무라 세이지 씨가 17일 오전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 추모 메시지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족에게 국경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법이나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은 이상합니다. 힘을 합쳐 세상을 바꿔나갑시다.”

22년 전 불꽃놀이 행사에서 발생한 압사로 8살배기 딸을 잃었던 미키 기요시(54)는 17일 이태원,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날 10.20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유가협) 및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13명 공동으로 국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시모무라 세이지(65)와 미키 기요시는 두 참사 유족들에게 연대의 뜻을 전했다. 이들은 지난 2001년 7월 효고현 아카시시에서 열린 불꽃축제 때 육교에서 발생한 압사 사건의 유족으로, 시모무라는 2살이었던 둘째 아들을 잃었다.

이들이 겪은 사건과 이태원 참사는 닮은꼴이다. 당시 약 13만명이 몰린 행사 현장에선 11명이 사망하고 247명이 부상을 입었다. 예방책 부재와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가 드러났지만 정부와 여당은 참사 원인을 행사에 간 시민 탓으로 돌렸다. 결국 유족회가 결성돼 적극적인 진상규명 노력을 벌인 끝에 15년 만에 책임자들을 민·형사 재판정에 세웠다. 지난해 7월 긴 싸움을 담은 책 <아카시 육교 사고 재발 방지를 바라며>를 펴냈다.

이종철 유가협 대표는 토론회에서 “참사 발생 140일을 맞는 우리 유가족 입장에서 22년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는 긴 싸움의 시간”이라며 “용기를 내보려 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우리 같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 토론회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일본 ‘아카시시 압사 참사' 피해자 유가족,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 4.16세월호참사 피해가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 토론회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일본 ‘아카시시 압사 참사' 피해자 유가족,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 4.16세월호참사 피해가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들은 아카시시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까지의 과정을 공유하며 유족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카시시 사건에서 일본은 정부 소속이 아닌 제3의 독립적인 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시모무라는 “(조사위) 보고서는 각종 현장 자료와 사진, 증언을 제대로 모아 유족들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졌고, 향후 재판에서 주요한 증거로 쓰였다”고 평가했다. 또 검사의 불기소처분 적정성을 국민이 심사하는 ‘검찰심사회’ 제도를 활용해 검찰이 불기소했던 당시 부서장을 기소할 수 있었다. 미키는 “검찰심사회로 (부서장이) 강제기소됐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최악의 결말이 됐다”면서도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여러가지가 밝혀졌고, 이를 토대로 제도나 매뉴얼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당시 민사소송 재판부는 “아이를 데려간 부모의 책임은 없다”며 책임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했다. 시모무라는 “한국 정부는 유족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있다고 느껴진다”며 “진상규명과 동시에 유족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창구를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들은 토론회에 앞서 서울시청에 차린 희생자 분향소와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추모했다. 시모무라는 “일본에서도 뉴스를 봤지만 그 좁은 비탈길을 보며 왜 여기서 (사람을) 구조할 수 없었는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현장을 보고 나니 유족들의 질문에 답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올 때 불러준다면 언제든 가겠다”고 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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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한겨레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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