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誥曰 克明德(강고왈 극명덕) : 康誥에 이르기를 능히 德을 밝히라 하며  太甲曰 顧諟天之明命(태갑왈 고시천지명명) : 太甲에 이르기를 하늘의  밝은 命을 돌아보라 하며  帝典曰 克明峻德(제전왈 극명준덕) : 帝典에 이르기를 능히 큰 덕을 밝히라 하니  皆自明也(개자명야) : 다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해설】하늘같은 밝은 마음, 명명덕(明明德)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하늘을 지목하여 ‘밝음’이라고 했다. 하늘같이 투명도(透明度)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양심을 어둡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양심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서, 본래 밝은 것이니 하늘을 보고 스스로를 살펴서 어둡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인들 그 말을 모르겠나? 밝은 양심으로 살고 싶고 또 살려고 해도 치열한 삶의 현실은 동시에 같은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엇갈리며 마찰되는 갈등과 불신은 배타와 반목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상호적 작용에 의해 조성된다. 그러므로 구성원의 공존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일정한 관계의 룰을 설정해서 행실의 객관적 기본으로 삼은 것이 다섯 가지 윤리, 즉 오륜(五倫)이다. 그 오륜을 실천하는 것으로 양심의 바름을 인정하는 척도로 삼는다.  


※  오륜의 해석

부모와 자식 관계는 세대라는 시차를 두고 수직구조 관계다. 그러나 천연적으로 유전의 계통이 있어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지켜야 한다. 長幼(장유)는 나이의 시차로 서열을 정한다. 고로 앞서는 위치는 존중받고 따르는 뒤가 어긋나지 않게 한다. 

붕우(朋友)는 평등을 바탕으로 가치의 균형을 유지하며 사회 안전과 안녕을 스스로 유지한다. 군신(君臣)은 오로지 공무(公務)로 유지되는 관계이다. 민중의 의식과 행동이 합의된 사회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살펴서 공공의 이익이 유지되도록 하는 업무이다. 그러므로 당위적 목적만을 위한 만남의 관계이다. 이런 상호적 인식과 작용은 예의를 발생시켜 상생질서를 만들어 왔다. 순수하게 사람과 사람을 보는 기준이라 할 것이다. 

사회 심리가 여기에 이르면 안녕질서가 신령한 차원에 이를 것이다. 민중이 이같은 식견에 충실해야 지도층을 선발할 때도 선별하는 안목과 기준이 될 것이다. 이런 심리적 기능을 무시한 채 숭배되는 자본주의는 사람이 사는 세상을 물질만능 세태로 변질시켜 버렸다. 그리고 인류는 스스로의 품격을 동물적으로 하향화시켜 버렸다.


※  성덕(聖德)의 질서

옛날은 민중들이 밝은 덕을 실천하여 사람 사는 질서가 아름답고 신령(神靈)했다고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전한다. 민중의 삶의 질서가 그렇게 된 것은 성인의 치덕 때문이라고 했다. 주역(周易) 건괘초효(乾卦初爻) 설명에 이르기를 “군자(君子)는 성덕(聖德)으로 행하니 그날그날 행함을 볼 수 있다.
君子 以成德爲行(군자 이성덕위행) 日可見之行也(일가견지행야) “군자는 모든 일을 성덕으로 행하니 늘 예측 가능한 일상을 유지한다.” 는 뜻이다.

또 사효(四爻) 덕명사단(德明四端)에 이르기를 “무릇 대인이라 하는 자는 천지와 덕이 부합하며 일월과 밝음이 부합하며 사계절과 질서가 부합하며 귀신과 길흉이 부합한다." 
『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부대인 여천지합기덕 여일월합기명 여사시합기서 여귀신합기길흉)』

그만큼 사심(邪心) 없이 자연 질서와 동질화된다는 뜻이다. 이런 지도자가 있기에 민중을 교화하여서 민중질서도 그 덕의 차원으로 삶을 승화시킨다는 말이다.

국민이 동참하지 않는 성공이 있겠는가?  민중의 자기 삶의 완성은 제가(齊家)이다. 수신(修身)의 목적이기도 하다. 가정을 갖고 있는 민중들이 제가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없도록 정부는 보살펴 줘야 한다. 국가주의는 독재자의 요구이다. 성덕(聖德)의 정치는 항상 민중의 가정안녕을 보장하는 제가주의로 정책을 완성시켜 왔다고 역사가 전하고, 대학·중용(大學·中庸)은 그 내용을 전한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류종현 독자  ppuri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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