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1472~1528)은 주희 이후 최대학파인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이자, 뛰어난 군사전략가였다. 절강성 여요(餘姚) 출신으로  본명은 왕수인(王守仁)이다. 주희(朱熹)의 격물치지를 공부하다가 대나무를 잘라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무리해도 이치를 알 수 없었다. 

대나무 관찰이 ‘格物’이다.​ 
실망한 그는 문장을 공부했지만, 여전히 도를 깨우치지 못했다. 다시 도전한 주희의 학문은 의문투성이였다. 좌절한 그는 입산까지 결심했다. 홀연히 성인의 도가 이미 사람의 성(性)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희의 격물치지가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도(道)는 사물(事物)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었다. 주희의 객관적(客觀的) 진리와 왕수인의 주관적(主觀的) 진리가 양립되는 순간이었다. 

왕양명이 깨달은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사물(事物)의 본질을 본다는 것이다.
가깝게는 자기 몸에서 진리를 구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진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우주가 방대하지만, 내 몸을 연구하면 소우주가 보이며 우주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음양(陽) 오행(五行)의 이치는 하늘과 땅에 나타나고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의 변화는 온도로 나타난다. 땅을 보고 천기(天氣)를 보는 것이니 땅을 보면 흙이 있고 풀이 있고 돌멩이가 있다. 풀이 있고 돌이 많으면 딱정벌레가 있고 흙이 많으면 지렁이가 많으며 지네가 많은 땅은 화(火) 기운이 많다. 땅의 기운에 많은 생물이 나타나면 하늘의 기운이 우세하니 곧 많은 비가 내린다.
하늘을 보고 별을 세고 나무를 보고 호수의 고요함을 느끼듯 천기를 보고 사물을 유심히 관찰함은 지혜(智慧)의 발현(發顯)이고 잠시 자연에서 휴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의 상(相)도 사람의 상도 다르지 않다. 
앉기를 태산같이 하고 일어서기를 구름같이 하는 상을 귀상(貴相)이라 한다. 무릎을 가지런히 하고 앉는 사람은 긴장하며 정직하고 소심 근면하여 일 잘하는 사람이다. 무릎을 쩍 하니 벌리고 앉는 사람은 복종과  명령받는 것을 싫어하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하나의 작용을 보고 열 가지 숨은 뜻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 사람의 언행을 보고 그 사람 됨의 덕(德)과 그릇을 유추(類推)할 수가 있다. 
큰 인물인지? 군자(君子)인지, 소인배인지 이미 그 사람의 상학(相學)에서 구분된다.

그럼, 格物致知가 왜 필요할까?
우리가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알 때 인간의 모든 선(善)의 가능성과 악(惡)의 가능성을 직시하게 되고 바른 처방이 가능해진다. 인간 본래의 선한 본성을 직시할 때 모든 惡은 그 뿌리가 뽑히게 되어 결국 성스러운 인간(聖人)이 될 수 있다. 格物致知란 사물의 본말(本末)과 시종(始終)을 파악하여 지혜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건(物)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대학은 이를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라 하였다.
다음은 반대 편에 德을 온전히 하기 위해서 살펴야 하는 물건(物)이 있다. 생각(意), 마음(心), 자신(身), 집안(家), 나라(國), 천하(天下)다. 물건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인 일(事)에는 성실하게 함(誠), 바르게 함(正), 닦음(修), 가지런히 함(薺), 다스림(治), 화평하게 함(平)이 있다.
물건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으니 생각(意), 마음(心), 자신(身)이 ‘근본’이 되고, 집안(家), 나라(國), 천하(天下)가 '말단'이 된다.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 근본이 되고 타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말단이 된다)

德을 닦는 일(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성실하게 함(誠), 바르게 함(正), 닦음(修)은 ‘시작’이 고, 가지런히 함(薺), 다스림(治), 화평하게 함(平)은 ‘끝’이 된다.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시작이 되고,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말단이 된다)
지혜란 바로 시작과 끝(始終), 근본과 말단(本末)을 분명히 하여 그 ‘먼저 해야 할 것’과 ‘뒤에 해야 할 것’(先後)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格物致知의 핵심은 왜곡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物을 ‘있는 그대로’의 본 모습대로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이해해가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무지를 바로잡는 것이다.

格物致知에서 중요하는 것이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알기 쉬운 것’부터 먼저 알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시선도 높아지고 자신의 위치도 이동되어서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 넓어진다. “절문이근사 切問而近思” 간절하게 질문하되, 가까이 있는 것부터 연구하라 (<논어> 자장) 구체적인 질문과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사색(思索)을 하라는 말이다. 

지혜는 바로 상식을 남보다 더 정확하고 더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치지(致知)란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格物致知는 格物하다 보면, 致知가 되고, 반대로 致知를 하다보면 또 格物이 된다. 먼저 아(我)를 알아서 남을 알게 되며, 남을 알아가는 중에 나 자신도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류종현 독자  ppuri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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