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 불복종 신참 카투사(KATUSA)

7.27평택인간띠잇기 개벽대장 2호 황대권을 만나다

명령 불복종 신참 카투사(KATUSA)

 

<경이로운 삶의 자세를 보여주었던 사람>

 

개벽대장 1호 문정현 신부님에 이어 이번에는 개벽대장 2호로 13일 오후 황대권을 종각역 문화공간 온에서 만났다. 1985년(전두환 서슬이 퍼럴 때)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 주인공 15명의 하나다. 2개월의 모진 고문 끝에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했던 황대권은 간첩이 되었다. (저들이 간첩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황대권의 책을 참고하시라. 다시 백척간두에 서서. 쇠뜨기. 2020)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국제앰네스티 등의 노력으로 13년 2개월 복역 후 1998년에 감형되어 석방되었다. 누이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엮어 ‘야생초 편지’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곧바로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 평짜리 독방에 갇혀 살던 황대권. 어렵게 구한 각종 씨앗을 심고 생명을 가꾸는 그의 모습을 보고 독자들은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죄라면 미국 유학생(웨스턴 일리노이 주립대) 때 5.18 광주항쟁의 비디오를 보고 한국 유학생들을 모아 비디오 상영회를 여는 등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는 것 따위. 정부 필요에 따라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의 탈을 씌워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었던 암흑의 시대였다. 재심준비 5년만인 2020년 그는 35년간 영혼을 짓눌렀던 간첩의 죄를 벗고 무죄판결을 받았다.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으로 13년2개월을 갇혀 있었던 황대권. 독자들은 책을 보고 '경이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으로 13년2개월을 갇혀 있었던 황대권. 독자들은 책을 보고 '경이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조작 간첩사건 등으로 태극기모욕부대를 대량 생산해낸 박정희, 전두환, 미국>

 

독재자 박정희 전두환이 학원간첩단 사건처럼 조작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경우는 수백 건이 넘는다. 신문에 TV에 몇 날 며칠 난리가 나고 사람들은 ‘북한을 다시금 혐오’하게 되면 독재자들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미국은 한국의 빨갱이 사냥을 필요한 통치술이라고 여겼다. 독재자들의 친미 반공 정책은 미군의 주둔 이유를 확고히 해주고 미군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한국을 자기 식민지처럼 지배할 수 있었으니까. 독재자는 죽어도 그들이 생산해 낸 혐북의 감정은 살아남아 있으므로 ‘미군이 한국을 보호하고 있다’는 가스라이팅은 계속 유지된다. 그 결과 군사독재자들이 다 사라진 지금도 미국은 윤석열을 이용해 1년에 18조 원어치 무기를 팔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평택에 와서 카투사 훈련을 받았던 황대권>

 

1974년 서울 농대에 입학했던 황대권은 재학 중 입대(21세)하여 논산에서 훈련을 받고 미육대로 배치되었다. 미육대가 무얼 뜻하는지, 무얼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로 밤중에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평택. 그곳에서 4주간 군사영어와 미군 편재 등을 배우고 서울 용산 미8군 헌병대로 배치되었다. 미육대란 카투사를 뜻한 것이었다. (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미8군에 증강된 한국 육군 요원으로 한미연합 관련 임무를 수행한다..)

 

<명령 불복종한 신참 카투사 황대권>

 

미8군 헌병으로 배치된 지 얼마 안 되어 부대 출입구에서 소란이 일었다. 미군 병사가 택시를 대절하여 시내 여러 군데를 한참 돌아다닌 뒤에 부대 앞에 와서 미터요금만 계산했다. 택시기사는 대절요금을 더 내라고 했고 미군은 못 내겠다며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헌병대조장인 특무상사는 미군의 편을 들어 택시기사를 내쫓으라 명령을 했다. 황대권의 판단으로는 택시기사의 말이 옳았다. 헌병 황대권은 상사의 말을 무시하고 미군에게 합당한 돈을 더 지급하라고 했다.

 

잠시 뒤 무장해제당한 황대권은 유치장으로 끌려갔다가 저녁에 풀려났다. 헌병대 중대장 앞에서 황대권은 “미군이 미군 및 미군속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근무하는 것처럼 나는 한국인의 안전을 지켜줄 책무가 있다”라며 대절요금을 추가 지불해야 하는 한국의 택시 제도에 관해 설명했다. 미군 상사는 단호했다.

 

“네 직속 상관은 나다. 너는 한국군 아니고 미군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미군이다.”

황대권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상사는 명령불복종죄를 묻겠다고 했다. 그는 신병임을 참작한다며 연병장 무기고로 가는 쪽에 개인 참호를 2개 팠다가 다시 메우라는 벌을 내렸다. 때는 만물이 꽁꽁 얼어붙은 엄동설한.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는데 곡괭이가 통통 튀어 올랐다. 무기 받으러 지나가는 미군들이 황대권을 향해 온갖 욕을 하며 꼴 좋다고 조롱을 던졌다. 하루종일 걸려 참호를 판 뒤 다시 흙을 메우니 두 개의 무덤이 생겼다. 민족적 비애에 젖어있던 황대권은 ‘양키고홈’을 종이에 써서 무덤 구덩이에 던져넣었다. 이후에도 차별, 무시, 굴종은 수시로 경험하였다.

 

‘자기 땅에서 남의 나라말을 잘못한다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곳은 또 하나의 식민지...’ 그가 카투사 시절 적었던 시의 한 구절이다. 누구는 카투사 헌병 3년이면 영어도 능해지고 PX 관리하며 한 재산 마련한다고 했다. 자판기에서 양담배도 쉽게 사 피울 수 있었지만 황대관은 오기로 영어도 기피하고 민족적 비애를 안 잊으려 쓰디써서 아릴 정도라 모두 외면하는 배급 파고다 담배를 전역할 때까지 피웠다.

 

<미국 군비증강이 한국 유학생 증가를 초래한 이유>

 

다시 복학해 졸업한 뒤 민주화운동의 진로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마침 전두환은 유학고시제도를 폐지하고 유학의 문턱을 대폭 낮춰놓았기에 시카고 남쪽의 웨스턴 일리노이 주립대학을 선택했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이 순식간에 수백 명이 된 미국의 대학에 가서야 전두환이 유학의 문턱을 대폭 낮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국의 레이건이 소련과 집중적으로 패권경쟁을 하면서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자 교육비를 대폭 삭감하니 대학들의 재정자립도가 대폭으로 떨어졌고 대학들이 아우성을 치니 미국의 요구에 전두환 정부가 응답하느라 유학의 문턱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군비 증강을 위해 교육비 지원을 삭감한 미국은 한국에 유학 문턱 낮출 것을  요구하고 이에 충실했던 전두환의 정책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으나 그것이 운명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으니...
군비 증강을 위해 교육비 지원을 삭감한 미국은 한국에 유학 문턱 낮출 것을 요구하고 이에 충실했던 전두환의 정책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으나 그것이 운명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으니...

 

<생명 평화가 화두가 된 것은 운명일까>

 

유학 1년 뒤 황대권은 역시 유학 온 여성과 결혼. 1년 뒤 아들을 얻고 학업 지속을 위해 한 달된 아기를 맡기고자 아내와 함께 2년 만에 잠시 귀국했다가 구속되었다. 미국의 요구 때문에 전두환이 낮춘 유학의 문턱. 미국에서 보게 된 5.18 비디오. 그것이 빌미가 된 무기징역. 13년을 넘게 갇혀있게 된 감옥 안에서 화두가 된 생명 평화. 야생초 편지…. 이 모두가 운명이었을까.

 

그는 학창시절, 카투사, 유학, 감옥시절을 통해 일본제국주의보다 더 위험하고 지독한 것이 미 제국주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혁명은 그것이 가능한 특정한 시대적 조건이 있다. 혁명 말고 제국주의의 핍박에서 벗어나 세계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생태적 관점과 세계관, 생명 평화의 관점을 통해 해법을 찾았다. 제국주의적 지배는 의존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독립적인 사람들은 지배할 수 없다. 자치가 이루어지는 마을 공동체, 지역공동체의 순환경제구조는 제국주의 파쇼정치의 개입을 무력화시킨다. 먹히지 않는다.

 

<소중한 식물의 생장점>

 

식물은 생장점을 통해 성장한다. 한 사회에도 생장점이 있어야 한다. 사회의 성장발현을 가능케 하는 우리 시대의 생장점은 생명 평화의 관점을 갖는 것이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생명 평화결사체가 지향하는 자세는 이렇다. 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한다. ② 모든 생명을 우애로 감싼다. ③ 대화와 경청의 자세를 갖는다. ④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청빈한 삶을 산다. ⑤ 모든 생명의 터전을 보존한다. ⑥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실현한다. ⑦ 끊임없이 깨어 공부한다.

 

투쟁을 하더라도 욕하지 말고, 폭력을 쓰지 말고, 증오의 감정 없이 공생공존의 길을 모색하자는 황대권. 그는 7.27평택인간띠잇기에 대안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고자 한다. 노예에게 채찍을 휘두르면 상하는 것은 노예의 등가죽만이 아니다. 채찍을 휘두르는 자의 심장도 상처를 입지 않겠는가. 압도적 무기를 통해 평화를 지키겠다며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는 자들 역시 불쌍한 영혼을 가진 자들이다. 평화는 상생이다. 7.27 평택, 진짜 평화를 이야기하는 곳에서 학생들은 귀한 배움을 얻게 될 것이다.

 

 

모진 고문을 받고 모진 감옥살이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비단결 같은 품성을 지녔다.
모진 고문을 받고 모진 감옥살이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비단결 같은 품성을 지녔다.

 

 

그를 인터뷰하고 늦게 귀가하여 쓰러져 잠에 들려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무슨 할 짓이 없는 사람들이냐?”고 목청을 높인다. “잘못 거셨습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렴, 우리가 왜 할 짓이 없어 평택인간띠잇기를 하겠는가. 평택인간띠잇기를 통해 미국에 “평화협정 or OUT!”을 외치는 것은 위험한 가스라이팅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생장점을 키우기 위함이다.

 

<평화를 외치는 ‘좌빨’과 전쟁을 노래하는 ‘자유 우파’>

 

보라. 전쟁을 외치고 동족상잔, 격멸을 외치는 자칭 ‘자유 민주주의자’ 윤석열과 그 뒷배가 되어주는 미국과 일본을! 보라. 평화를 외치고 공존을 외치는 ‘빨갱이로 몰렸던 생명 평화주의자’들을. 우주의 소중한 생명공간, 지구촌을 유지하는 데에 좌우를 가르는 편견이나 무기 장사꾼은 필요가 없다.

 

좌우를 가르기 좋아하고 종불몰이를 낙으로 삼는 태극기모독부대들. 예수님, 부처님이 사실은 모두 좌빨이여.
좌우를 가르기 좋아하고 종북몰이를 낙으로 삼는 태극기모독부대들. 예수님, 부처님이 사실은 모두 좌빨이여.

 

고은광순 객원편집위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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