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들이 기어코 가두려 했던 통일꽃-

개벽대장 3호, 황선을 만나다.

-적폐들이 기어코 가두려 했던 통일꽃-

 

<갇히다>

(전국집중 토요촛불집회가 열리기로 예정된 17일 점심, 광화문 한 식당의 주차장 바닥에 앉아 727평택인간띠잇기 개벽대장 3호가 될  통일꽃 황선을 인터뷰했다.)

1989년 대학생 임수경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대표 자격으로 45일가량 북을 방문한 일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는 ‘통일의 꽃’으로 불렸다. 9년 뒤인 1998년, 대학생 황선은 한총련 대표로 김대원과 함께 북에서 진행한 8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하고 대학생 역사문화 학술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방북했다. 90일가량 북에 머물다가 11월에 귀환했는데 김대중 정부였음에도 불구하고 황선은 곧바로 구속되어 2000년 8.15에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1년 9개월을 갇혀 있었다.

 

<또 다시 갇히다.>

그녀는 감옥 안에서 북에서 겪었던 경이로운 경험들을 신들린 듯 써 내려가고 싶어 가족과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고 그 글들은 수감 중인 2000년 1월 <어머니 여기도 조국입니다. (도서출판 자주민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감옥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쓴 편지. 검열 받아 나간 것이고, 출판되어 3만 부나 팔린 책을 저들은 문제삼았다.
감옥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쓴 편지. 검열 받아 나간 것이고, 출판되어 3만 부나 팔린 책을 저들은 문제삼았다.

감옥에서 검열을 통과했던 글이고, 3만 부나 팔린 책이지만 2001년 그녀는 ‘이적표현물 제작배포’로 국가보안법 7조에 걸려 다시 구속되어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차 구속에서 집행정지로 있던 ‘9개월’이 포개어져 꼬박 1년 7개월을 다시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그때가 김대중 정부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출소 이후 그녀가 활발한 강연 활동을 통해 북한 실상에 대해 목이 마른 대중들에게 본 대로의 북녘 모습을 전달하는 것이 적폐들에게는 못마땅했을 듯. 김대중이 대통령이었어도 공안검찰의 기세는 시퍼랬던 모양이다.

처음 한총련으로부터 방북 제안을 받았을 때 그녀는 아무 말 못 하고 30분간 눈물만 흘렸다. 정의감이 넘쳐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하셨던 아버지. 부정부패와 타협하지 않아 동료들이 승승장구할 때 50이 넘도록 일선에서 일하셨던 아버지, 미국을 싫어해서 미제 고무 달린 연필을 사 달라는 딸을 혼냈던 아버지. 전경들과 함께 시위진압을 하다가 대학생들의 돌에 맞아 다리를 절룩거리고, 병원에도 종종 드나들어야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크게 놀라시는 건 물론 딸로 인해 직장도 그만두셔야 할 것이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가야 할 길.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효도임을 부모님도 알아주시리라.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그러나 가야 할 길.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효도임을 부모님도 알아주시리라.

그러나 수배당해 고생하는 친구들과 평생을 몸 바쳐 통일운동을 한 분들을 생각했다. 해외여행의 결격사유가 없고 의심을 피할 수 있는 신분으로 마다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남녘 대학생 200여 명은 비행기 타고 합법적으로 북의 역사문화 답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역지사지 해보자>

황선이 북녘사회에 호기심을 갖는 남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진짜 남남북녀가 맞나?’, ‘북녘 남녀들도 연애를 하나?’, ‘대입 공부는 어떻게 하나?’, ‘동아리 활동은 어떤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는데?’ 따위의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남북 사이에 빗장이 얼마나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었으면 이러겠는가.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전제되는 생각은 남쪽은 마음먹은 데로 집을 옮길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서울에서 살다가 제주도로 이사할 수도 있고 강원도 산속으로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위치만의 문제인가? 돈이 없으면 강남 서초로는 들어갈 수 없다. 돈이 없으면 반지하에, 전세에, 월세로 밀려나고 전세 사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런 것이 거주이전의 자유인가? 반면에 북은 가족 수에 따라 또는 일터의 위치에 따라 주택을 배정받는다. 사고팔지 않으며 신혼부부에게는 새로운 보금자리가 배정된다. 남녘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경쟁, 차별, 폭력에 따른 자살이지만 북녘 청소년들에게 자살할 이유는 없다. 이동관이며 정순신 자식들의 학교폭력 따위는, 정유라가 말했다는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발언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피라미드의 위치에 따라 천당도 되고 지옥도 되는 분단 정글 자본주의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북녘의 삶을 ‘거지가 들끓는 지옥 같은 나라’라고 깔보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얍삽한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구조>

한국은 자유로운 입후보에 주민이 투표로 선택하는 민주주의인데 북은 일당독재에 거수기 인민대회 아니냐고? 북의 인민학교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한 명의 담임선생님이 맡는다. 급우들도 변함이 없다. 선생님은 부모보다도 더 빨리 학생들의 소질과 능력을 파악한다. 미술, 음악, 무용 등 예술에 재능이 있는 학생,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은 빠르게 그 계통의 학업에 매진할 수 있게 진학지도를 한다. 제일 머리 좋은 학생은 철학과로 간다. (남녘의 머리 좋은 학생은 성형외과 의사가 되는데 말이다) 정직하고 헌신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은 토론을 통해 지도자 위치로 옹립된다. 박근혜도 놀랐듯이 500명이 넘는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 중에는 여성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지역, 기업, 직능 대표들이 그런 식으로 옹립된다. 부모가 교사를 매수해서 시험지를 빼돌려 성적을 올리고, 담마진(두드러기)로 군대를 빠져나가고 부동시(짝눈)으로 병역의 의무를 회피한 자들은 애당초 옹립이 될 수 없다.

 

<남쪽엔 독립군 잡던 자가, 북쪽엔 독립군이 지도자가 되었다 >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선 김일성이 항일운동하던 그 김일성이 아니라 가짜라는 이야기가 정설로 되어있었다. 일본의 주구가 되어 만주에서 독립군을 잡던 박정희 독재 정부에게 항일운동하던 자가 북녘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로 존재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세계가 다 아는 김일성의 과거를 한국민이 알게 된 것은 김형욱을 통해서였다. 중앙정보부장을 하던 김형욱이 해외로 도피하여 책을 통해 어렵사리 폭로한 ‘대단한 비밀’ 중 하나였던 것이다.

남녘의 언론들은 1994년 김일성의 장례에 온 국민이 지극한 슬픔에 잠긴 모습을 ‘집단 히스테리(조선일보)’, ‘광란적 울부짖음(MBC)’, ‘불가사의한 왕조 49년’ 등으로 표현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은 마치 ‘광신도’로 길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남쪽의 언론들을 그들의 슬픔을 히스테리, 광란이라고 매도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그럴만 하던 것을...
남쪽의 언론들을 그들의 슬픔을 히스테리, 광란이라고 매도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그럴만 하던 것을...

 

<‘광란’이라고? 저들에겐 참으로 슬펐던 일>

그러나 황선이 북에 가서 들은 이야기는 달랐다. 김일성이 성능이 아주 뛰어난 외국 카메라를 선물 받았을 때 그가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곳은 어느 시골 학교였다고 한다. 김일성은 카메라에 눈을 대고 한쪽 눈은 찡긋 감은 채 전교생을 하나하나 찍고 안아주었다. 그 사진을 액자에 담아 보관하고 있던 아이들은 김일성의 장례에 액자를 안고 나와 오열하였다. 일제 강점기 모진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해방 후에 되찾은 나라에서 김일성의 정치 아래 땅을 받고, 집을 받고, 무상교육에 무상의료혜택을 받게 되었으니 그들의 기쁨은 얼마나 컸으랴. 그런 지도자의 사망으로 인한 그들의 슬픔은 얼마나 컸으랴. 그게... 그런게... 광란이고 히스테리인가? (땅과 재산을 빼앗기고 남으로 피난 온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온 우리에게 저들의 입장이 되어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알아가는 지북지남(知北知南)이 필요하다.)

그런 걸 ‘히스테리 광란’이라고 몰아가고 싶은 영구분단론자들에게, 518은 빨갱이 소행이며 북은 지옥과 같은 곳이라고 몰아가고 싶은 영구분단론자들에게 황선의 ‘정직한 발설’은 치명적인 독과 같다.

2014년 익산에서 재미동포 신은미와 황선이 참여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재미교포 신은미는 남편과 9번 방북한 뒤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엮어 출판한 참이었다. 책은 문체부 지정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전국 공공도서관에 배포되었고 통일부는 신은미 출연 동영상을 홍보용으로 제작해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북의 실상을 알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영구분단 적폐들에게 눈엣가시 황선>

그러나 영구분단론자들에게 북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신은미와 황선의 말과 글은 눈엣가시였다. 북을 무찔러 없애는 게 애국이라고 생각했다는 공업고등학교 오 모 군이 사제폭발물을 만들어 토크 콘서트에 들어와 무대를 향해 던졌다. 당시 학생은 고량주를 마신 상태였으며 황선이 수소문한 바에 따르면 현장까지 4명의 남성이 학생과 동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수사당국은 검찰송치 과정에서 학생의 집을 한 번도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고 공범 여부도 조사하지 않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기소했다.

<또 또 구속되다>

오 군은 극우계인사들로부터 1,300만 원의 후원금을 받고 1심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신은미의 책은 문체부가 우수문학 도서에서 제외한 뒤 회수되었다. 신은미는 강제 출국당한 뒤 5년간 입국을 금지당했다. 오 군의 집을 압수 수색하지 않았던 수사당국은 오히려 피해자 황선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종북 콘서트’를 진행한 그녀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50여 가지 혐의로 기소하여 구속 수감했다. 넉 달 뒤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은 황선은 6년 전 행사에서 시 3개를 읽은 것을 제외하고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세번 수감되었던 통일꽃 황선. 소통이 일어나면 소동이 일어날 것이 두려운 찌질한 적폐들의 무리수였다.
세번 수감되었던 통일꽃 황선. 소통이 일어나면 소동이 일어날 것이 두려운 찌질한 적폐들의 무리수였다.

신은미에게 가려져 황선은 상대적으로 눈에 뜨이지 않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조차 공안 몰이 세력들은 어떻게든 황선의 입을 틀어막고 대중들로부터 격리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천규 기자의 통일 TV가 5개월 만에 채널을 박탈당했듯이 공안 몰이 세력, 영구분단세력들은 북의 실상이 남에 알려지는 것을 극구 두려워한다. 소통이 일어나서 북의 실상이 밝혀지면 소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다.

태극기 모독 일베들은 깨시민들의 집회장에 와서 “이 빨갱이들아 북으로 가서 살아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일쑤다. 그래 내 맘대로 오고 갈 수 있게 문을 열란 말이야. 문을 막고 있는 게 너희들이잖아! 남북을 가로막는 건 가짜 유엔사로 전 국민을 속이고 있는 미국이잖아!

 

<억지장치로 증오를 부추기는 자들>

우리는 군사적 대결 때문에, 강대국의 이권 때문에 강제 분단된채로 70년을 보내고 있다. 이질감이 걱정되니 천천히 통일하자는 이도 있다. 편견을 깨고 북을 경험한 황선이 보기에 이질감에 대한 물음표는 생기지 않았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억양과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상종 않고 살지는 않지 않은가? 이질감이 깊어지기 전에 우리는 더 많이 신경 써야 한다. 박정희 전두환이 조작해 만들어낸 수백 건의 간첩 사건은 억지로 북을 미워하게 하는 장치들이었고 미국이 전폭적으로 용인한 것이었다. 미국은 박상학에게 뒷돈을 대어 삐라를 뿌리게 한다. 북을 도발하여 기어코 서로를 이간질하며 무기를 팔아먹는다. 그런 자들에게 황선의 맑은 눈과 정직한 입은 공포스럽다. 그녀를 자꾸 가두어 격리하려는 이유다.

 

<727 평택인간띠잇기는 깜찍 발랄한 시도>

황선은 727평택인간띠잇기에서 핑크 천을 사용하여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450만 평을 에워싼다는 발상이 귀엽고 깜찍 발랄하며 발칙한 시도라고 반겼다. 암만... 전 세계를 향한 평화퍼포먼스로 이만한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남북이 외세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 될 때까지 우리는 다시 온다. We’ll be back!

2만 야드 길이의 핑크 천은 곧 도착할 것이다. 현수막, 스티커, ...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가보자.후원계좌 카카오뱅크 797978-73298 고은광순
150개의 발걸음으로 90m씩 구간을 표시하니 당초예상보다 줄어든 184구간이 나왔다.  2만 야드 길이의 핑크 천은 곧 도착할 것이다. 현수막, 스티커, ...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가보자.후원계좌 카카오뱅크 797978-73298 고은광순

편집 : 고은광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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