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실크로드 문화 답사(34)]

“지금 서주(西周)를 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서주(산동성과 강소성 경계에쯤 위치)는 곡식을 모두 걷어 들여 성에 쌓아 놓았으니 들(野)은 텅 비었고, 성을 견고히 하여 주공이 쳐들어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주를 공략을 하면 얼마 안 되어 우린 양식이 떨어져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책사 순욱의 책략으로 조조는 공격 시기를 늦춰 결국 여포의 서주 땅을 빼앗았습니다.

‘견벽청야(堅壁淸野)’.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 전법은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예상하고 전쟁에 활용될 곡식이나 건물, 무기재료 등을 모조리 태우거나 없앤 후 그 자리를 떠서 결국 적이 현지의 물자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보급 차단하는 전술입니다.

이 계략을 잘못 배운 후세의 잔인한 군인들에 의해 비참한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6.25 이듬해인 1951년 국군이 자행한 ‘거창양민학살(2월)’사건이 그것입니다.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경남 거창군 신원면 지역 양민 700여 명을 모두 모아 마을 뒤 산골짜기에서 학살했습니다.

당시 국군은 지리산 빨치산 소탕작전 중이었는데 작전명은 ‘견벽청야’였습니다. “말썽의 소지가 있는 곳은 초토화시킨다.” 그 지침을 볼까요. “작전지역 안의 인원은 전원 총살하라. 공비(빨치산)들의 근거지가 되는 건물은 전부 소각하라. 적의 보급품이 될 수 있는 식량과 기타 물자는 안전지역으로 후송하거나 불가능한 경우에는 소각하라.”

국군은 마을에서 군인, 경찰, 공무원 가족 일부를 가려낸 뒤 나머지는 무차별 총살 후 시체를 모아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습니다. 학살 피해자는 모두 719명.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61세 이상의 노인이 74명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커다란 상처였지만 ‘견벽청야’의 전술로 주변 거대제국들의 침략을 물리친 예도 있습니다. 1044년, 북쪽 초원지방을 호령하던 거란족인 요의 흥종(興宗)은 “쪼끄만 게 까분다”며 대군을 이끌고 ‘서하(西夏)’를 공격했습니다. 서하는 적군을 자국의 영토 안으로 유인한 뒤 보급로를 끊었습니다. 기고만장했던 요군은 서하의 전술에 말려 기습을 받고 대패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40년 후인 1081년, 이번엔 송의 신종(神宗)이 대군을 몰고 서하를 공격했으나 똑같은 전술에 당해 패하여 퇴각했습니다.

하서주랑 출발 도시이자 감숙성 성도인 난주에서 1시 방향으로 약 440km 올라가면 영하회족자치구의 주도인 은천입니다. 영하회족자치구는 진, 한나라 때엔 소속 지방이었으나 송나라 땐 ‘서하’의 땅이었습니다. 서하는 탕구트(Tangut)족이 세운 나라로 약 200 년간 존속했습니다. 탕구트족은 원래 사천성 서부에 살았는데 티베트 토번왕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자 지금의 청해성, 감숙성, 영하자치구로 옮겨왔습니다.

처음에는 당나라의 속한 지방 성격이었는데, 당(唐)의 명령을 잘 따르고 황소(黃巢)의 난을 물리치고 장안을 탈환하는 등 공을 세워 당으로부터 이씨 성(姓)을 받았습니다. 983년 드디어 송(宋)으로부터 독립했고, 1028년 이원호(李元昊)가 감숙지방을 평정하고 대하(大夏) 황제라 자칭했습니다. 그러나 송나라는 중국 고대의 하夏 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대하를 ‘서하’로 불렀습니다.

실크로드 이야기에 ‘서하’가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요? 1100년대 후반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잠깐 볼까요? 송나라가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통일하고 중국에서 폼 잡다가(北宋 960-1127) 만주지역 여진족의 금나라(1115-1234)에 쫓겨 남쪽으로 찌그러지게 됩니다.(南宋 1127-1279) 북부 몽골지역 초원지대에는 거란족의 요遼(907-1125)가, 그리고 서쪽에는 토번계열의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 1032-1227) 왕조가 세를 과시했고, 우리나라는 고려왕조(918-1392) 때였습니다.

(이 여행기는 이동구 팀장이 주주, 독자와 함께 한겨레 테마여행 <실크로드 문화답사>를 다녀온 후 지난 해 9월부터 페이스북과 개인 블로그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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