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며 1만1천㎞ 대장정에 나선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강명구씨 페이스북 내려받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며 1만1천㎞ 대장정에 나선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강명구씨 페이스북 내려받음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는 성탄절에 판문점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해 주세요. 교황께서 판문점에서 미사를 집전하면 한반도 통일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교황님의 결심이 서면 비티에스(BTS·방탄소년단)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공연도 요청하려 합니다.”

한반도 평화 염원을 안고 바티칸시티 교황청으로 달려가는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66)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글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12월25일 성탄절에 판문점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 집전을 해달라는 바람을 안고 달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22일 제주에서 출정식을 한 뒤 300일 넘게 대장정을 이어간다. 그는 지난 6월3일 마지막 여정인 이탈리아에 입국해 보름 이상 이탈리아를 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여정은 1만㎞를 넘는다. 하루 평균 8~9시간, 30여㎞를 달린 그는 오는 26일 오후 교황이 머무는 바티칸시티 교황청 앞 광장에 다다를 참이다. 제주~로마 1만1천㎞ 대장정 완주가 코앞이다.

‘제주에서 로마까지 1만1천㎞ 평화달리기’하고 쓴 푸른 조깅 손수레를 앞세우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달린 그는 13일 <한겨레>에 “얼마 전 허리에 무리가 가 고생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교황님 판문점 미사 집전 성사 한 생각만 두고 달려가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께 미사 집전 요청 편지 보내고
작년 8월부터 아시아~유럽 횡단
이태원참사 희생 베트남 유족 위로
인도에선 코로나19·이질로 고생
300여일만 바티칸시티 도착 앞둬
28일 수요 일반 알현 때 교황 만나
충북 시민사회, 후원의 밤 이어
현지서 완주 축하 작은 음악회도

그는 요즘 발걸음이 가볍다. 교황과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는 오는 28일 오전 9시 교황의 수요 일반 알현 때 교황을 만날 참이다. 수요 일반 알현은 교황이 신도·시민 등 대중 앞에 나서서 말씀을 전하는 자리다. 교황청 대사관은 <한겨레>에 “강 마라토너 쪽이 지인 등을 통해 교황님 알현 협조 요청을 했고, 대사관에서 수요 일반 알현 때 (강 마라토너 등이) 앞줄에 참석할 수 있도록 교황청 쪽에 협조 요청을 했다. 교황님을 더 잘 뵐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앞자리 배정을 위해 돕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적이 일어났다. 출발 때 교황님 건강이 좋지 않아 이탈리아 로마에 가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기적을 만들어가는 작은 염원들이 모여 통일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며 1만1천㎞ 대장정에 나선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가 지난해 9월 한반도 여정의 하나로 충북도청을 들러 지지자들와 완주를 다짐했다. 희망레일 제공

300일을 넘긴 그의 1만㎞ 대장정은 간단치 않았다. 제주 바다를 건너 뭍에 다다른 그는 부산-대구-광주-대전-청주-서울 등을 거쳐 지난해 9월23일 임진각에 이르기까지 국내 일정을 소화했다. 이후 10월1일 베트남 호찌민 생가에서 ‘아시럽(아시아+유럽) 출정식’을 한 뒤 아시아·유럽 대륙을 달리고 있다. 50여일 동안 베트남 1800㎞를 종주를 마치고 캄보디아, 타이, 방글라데시, 인도 등 아시아 대륙을 달렸다. 베트남 일정을 소화할 땐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 희생된 베트남 여성 유족을 찾아 위로했고,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에게 희생된 베트남 마을을 찾아 사죄의 뜻을 건네기도 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천년고찰 팝반 파고다를 찾아 틱탱훤 주지와 한반도 정세 등 평화의 중요성을 두고 환담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초 인도 여정에선 코로나19 감염증에다 이질 증세 등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비바람·뙤약볕·한뎃밥은 다반사였고, 개떼를 만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때론 무념무상으로, 때론 자연과 대화하며 달렸다. 인도 여정 때 의사 부부가 집에 초청해 음식과 잠자리를 나눠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며 1만1천㎞ 대장정에 나선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의 유럽 여정. 강명구씨 페이스북 내려받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며 1만1천㎞ 대장정에 나선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의 유럽 여정. 강명구씨 페이스북 내려받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며 1만1천㎞ 대장정에 나선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씨가 알바니아에서 시민을 만나 평화 마라톤 취지 등을 알리고 있다. 강명구씨 페이스북 내려받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며 1만1천㎞ 대장정에 나선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씨가 알바니아에서 시민을 만나 평화 마라톤 취지 등을 알리고 있다. 강명구씨 페이스북 내려받음

튀르키에, 그리스, 코소보,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을 거쳐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유럽 곳곳을 지나면서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몸으로 알리기도 했다. 그는 여정 틈틈이 쓴 글을 사회적 관계망(SNS) 등에 70여 차례 올리는 등 지지·후원자 등과 대장정을 공유한다. 그는 “스쳐 지나간 자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문화, 역사 등을 곁들여 글을 쓴다. 저를 지키고, 응원하고, 도와준 많은 이들과 이 여정을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충북지역 시민사회가 지난 15일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교황 알현과 문화사절단 파견을 응원하는 후원의 밤을 열었다. 오윤주 기자
충북지역 시민사회가 지난 15일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교황 알현과 문화사절단 파견을 응원하는 후원의 밤을 열었다. 오윤주 기자

 

노래모임 산오락회 김강곤(왼쪽) 음악감독과 소리꾼 조애란씨가 15일 후원의 밤에서 노래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노래모임 산오락회 김강곤(왼쪽) 음악감독과 소리꾼 조애란씨가 15일 후원의 밤에서 노래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강 마라토너를 응원하는 문화사절단도 이탈리아 바티칸으로 떠난다. 충북 등에서 활동하는 노래 모임 산오락회 김강곤(53) 음악감독과 소리꾼 조애란(47)씨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야금 연주자 하소라씨 등과 합류해 강 마라토너의 완주를 축하하고, 교황의 판문점 미사를 염원하는 작은 음악회도 준비한다. 김 감독과 소리꾼 조씨는 지난해 9월 강 마라토너가 충북을 지날 때도 응원 공연을 했고, 강 마라토너는 최근 이들을 로마로 초청했다.

충북지역 시민사회는 지난 15일 강 마라토너의 교황 알현과 이들 문화사절단을 응원하는 후원의 밤 행사를 했다. 충북 시민사회는 이날 십시일반 모은 성금으로 두 음악인을 로마로 보낼 참이다. 김 감독은 “강 마라토너가 1만1천㎞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목표 지점인 바티칸에 들어설 때 음악으로 맞으려 한다. 강 마라토너가 쓴 글을 토대로 조애란씨가 작사하고, 제가 곡을 쓴 ‘송림에 부는 바람’도 선보일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작은 평화 음악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 마라토너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해 미국 횡단, 네팔 지진 피해 돕기, 임진각 디엠제트 마라톤 등에 나서 ‘평화’, ‘통일’ 등을 촉구하면서 ‘평화마라토너’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난 201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중국 랴오닝성 단둥 북한 경계까지 1만4500㎞ 평화 마라톤을 한 뒤 책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을 내기도 했다. 그는 2020년 뇌출혈 증상으로 주저앉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평화의 길을 가고 있다. 그는 “인류가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달릴 생각”이라고 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옮긴 이: 김미경 편집위원

한겨레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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