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놈 꼬락서니 좀 톺아보자.

몸길이가 대개 손가락 한 마디 남짓하니 버러지치고는 짜리몽탕한 건 아니고 길쭉스름한 편이라 꼴값은 쳐 줄만 하다만
, 벼룩도 낯짝이 있다더니 아무래도 볼 낯부닥이 없어서 그랬을까? 구린 데가 왜 그리 넘치는지 대그빡 푹 처박고 있으니, 주뎅이 눈탱이 코빼기 귀때기가 다 어디에 붙었는지 도대체 분간할 수조차 없다.

몸빛은 또 어떤가?

돌연변이까지는 인정한다.
하지만 둔갑술을 어지러이 쓰는 놈이라 이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본 녀석은 지독히 꺼무꾸름허다. 꺼무데데허고 꺼무뎅뎅허고 꺼무죽죽허고 꺼무튀튀허고 꺼무칙칙허니 이는 곧 시커먼 검덕귀신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 까닭일 텐데, 개기름을 듬뿍 처바른 듯 자르르 윤기까지 흘러 뺀질이 기질이 뚜렷함을 방증한다.

 

게다가 마디마디 모공처럼 생긴 작은 혹부리가 촘촘히 박혀 있는데 혹마다 셀 수 없는 털뿌리가 솟구쳐 나와 있다.

그러니까 무량무변(無量無邊)한 가시털이 바늘 하나 쑤시고 들어갈 틈 없이 빽빽이 내돋쳐 있다. 따지고 보면 원산지가 북미라서 그런지 나고 자란 고향의 늑대인간을 빼닮아 몸뚱어리는 온통 희누르스름한 털복숭이라 마땅히 그 누구도 쉬이 다가갈 수가 없다. 그 터럭 수가 자그마치 육백만 개나 된다고 하니(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 YTN, 20231023) 교묘하게도 무소불위한 버러지로 위장했지만, 긴 놈 짧은 놈 할 것 없이 약빠르게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드세우고 누비는 걸 보면 어김없이 허세 떠는 허풍선이이거나 사술을 부리는 허언증(虛言症) 종자로 보인다.

8월의 어느 날, 필자가 사는 아파트(고양시) 벽면을 타고 오르던 미국흰불나방 애벌레
8월의 어느 날, 필자가 사는 아파트(고양시) 벽면을 타고 오르던 미국흰불나방 애벌레

아닌 게 아니라 그냥 털이 아니다.

독모(毒毛)요 독침이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놈이 쏜 자국은 동글납작하게 부풀어 오르고, 오만 데를 짓씹어 놓은 듯 뜨개질 자국 같은 두드러기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일종의 충자증[蟲刺症] 또는 충교증(蟲咬症)이라고도 하는데, 어렸을 때 깔을 비다가 쐐기한테 쏘이거나 학교에서 송충이를 잡아오라는 숙제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이나 모기 벼룩 빈대 따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치도록 따갑고 가려운 나머지 십중팔구 손톱으로 뜩뜩 긁다가 핏물이 배이도록 이빨로 물린 데를 사정없이 잘근잘근 씹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보다 못한 할머니는 나를 샘가로 끌고 가서 억지로 꾀를 벗기고 찬물을 끼얹으셨다.
싫다고 아니 앙탈 부렸을까마는 돌아오는 것은 사정없는 등짝 세례뿐이었다. 그러고는 헛간에 쟁여 둔 눅눅한 밀짚이랑 보릿짚을 한 아름 그러안고 나와 물 한 바가지 흩뿌리고 모깃불을 지피셨다. 그것은 연기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짠하게 바라보던 이웃집 아저씨는 석은새가 제격이라고 하면서 삼태기에 수북이 담아내셨는데 온 집안은 삽시간에 매캐한 연기로 뒤덮이고 동네 사람 저마다 담 너머로 고개 드밀고 혀를 차니, 영락없이 나는 한여름 밤의 웃음엣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라!
근질근질한 것도 잊어버린 채 눈물범벅 콧물 범벅이 돼 들입다 재채기를 하면서 마당을 방방 뛰어다니던 깨복쟁이 꼬마를.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잡놈이 저렇게 좋은 냉갈을 안 쏘이고 내뺀다.’고 있는 대로 성정을 내면서 간짓대를 휘두르시고, 속절없이 지천을 듣던 나는 고무신을 장독대 너머로 집어던지고 평상에 고꾸라진 채 어매가 죽은 것도 아닌데 서럽게 할딱거렸다.

쿡쿡 쑤시고 온 삭신이 욱신거려 뜨거운 눈물을 삼키면서 가르랑거리던 나어린 소년의 아픔을 겪어 보지 못한 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리라.

숨 쉴 때마다 씀벅씀벅 올라오는 통증에 머릿속까지 지근거리던 유년의 아픔이 아련하고 애틋하다.(계속)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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