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막지한 조폭, 미국흰불나방

1988년에 세계 최초로 ‘지구 온난화’를 경고했던 기후학자가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의 제임스 핸슨 교수(82)다. 그가 지난 7월 인류를 질책하면서 지구 온도가 100만 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으며 강력한 폭풍과 폭염, 홍수가 발생하는 ‘새로운 기후 극한((new climate frontier)’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서울신문, 2023.7.20.).

그는 다시, 앞으로 6년 안에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1800년대) 대비 1.5도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또, 2050년이 되면 2도 상승이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미 항공우주국에 따르면 올해 여름(6∼8월) 평균 기온은 나사가 기온 관측·기록을 시작한 1880년 이래 가장 높았다. 그리고, 각국이 기록을 시작한 이래 올해가 가장 더운 9월이었다고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국 역시 올해 9월 전국 평균 기온이 22.6도로 1973년 이래 가장 높게 나타났다(한겨레, 2023.11.2.).

그래서였을까?

국립산림과학원 보도자료(2023.10.20.)에 따르면, 미국흰불나방은 1년에 보통 2회 발생하는데 청계천에서 3화기 애벌레를 확인하였고, 이는 전국적으로 피해가 계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놈의 2화기(2세대 성충) 평균 피해율은 ’21년 11.5%에서 ’23년 27.6%로 약 2.4배가 증가하였다.

버러지 천국으로 변한 팔도강산

아니나 다를까.
난데없는 버러지 떼가 이만저만 득시글거리는 게 아니다. 나뭇잎은 말할 것 없고 풀까지 닥치는 대로 갉아먹는다. 전에는 활엽수만 골라먹더니 요즘은 바늘잎도 가리지 않는다.

변태는 버러지들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유충이 성충으로 나아가는 필연적 몸부림이다. 성충은 곧 버러지들의 존재 이유가 된다. 버러지마다 때가 되면 탈바꿈하려고 위로 향하는 이유다. 그래야 자유로이 날 수 있고 꼴에 님을 꼬드겨 짝짓기도 하고 종족 보존이 가능하니 어쩌면 필사적이리라. 그러다 보니 보도블록은 물론 자동차 지붕과 앞 유리, 아파트 벽면에 이르기까지 오만데가 바야흐로 승천(?)하는 버러지 천지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벽을 타고 오르는 미국흰불나방 애벌레(2023.8.25.)
필자가 사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벽을 타고 오르는 미국흰불나방 애벌레(2023.8.25.)

 

아침에 나갈 때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통은 풀밭에 숨겨 두었다. 저녁때 퇴근하면서 집으로 들고 왔는데 잠시 후 아내가 기겁한다. 아뿔싸, 그새 고치를 튼 놈이 있었나 보다. 다슬기만 하다. 세 살 손주는 구경삼아 졸래졸래 따라다니면서 ‘아, 지지’를 연발한다. 발그잡잡한 번데기 한 마리가 통 겉면에 똬리를 틀고 붙어 있었다.

푸르뎅뎅하던 열매는 속절없이 땅바닥에 뒹굴고 그때마다 비질하던 아주머니는 혀를 차면서 말끝마다 넋두리다. 내가 설익은 이팝나무 열매라고 하자,
“이팝인지 저팝인지 천하의 쓰잘데없는 놈이여! 먹지도 못하는 것을 얻다 쓸 것이요? 영락없이 염생이 똥이랑께. 저놈도 속병이 있는가 사방팔방 푸른똥을 싸지르드만 난중엔 희끄무레하다가 또 까맣게 되드랑께. 나도 인자 쓸다 쓸다 망단해 부럿소.”
하면서 허리를 편다.


오가며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이물없이 지내는 편이다. 언젠가 나이를 묻자, 의아스레 고개를 돌리더니 “나가 많다.”고 하던 그녀는 운정에서 08시까지 출근, 16시에 퇴근하는 분이다. 혼자서 아파트 석 동을 맡아서 청소한다. 지하 주차장부터 25층 꼭대기 층에 이르기까지 쓸고 줍고 닦고 훔치다 보면, 점심때 모여서 도시락 까먹는 시간 말고는 엉덩이를 붙일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목등뼈 죄다 시원찮고 허리앓이까지 달고 살지만 그래도 전에 일하던 데보다는 간섭하는 이가 없어 속은 편하다고 했다. 그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푸념은 이어진다.

“그나저나 저 송충이 새끼들 때문이 아니요? 여름 내내 어디 있다가 기어나왔는지 저 벌거지들이 꾸역꾸역 뒤끓더니 시상에나, 저 시커먼 똥 좀 보시오. 어디 사람이 살것소? 관리소 양반들한테 진작부터 약 좀 쳐 달라고 노래했는디, 아따 징글징글하요. 저놈의 나무를 짤라부러사제. 잡것이 작년부터 쪼깐썩 비치드만 올해는 뭔 난린지 모르것소…….”

그분은 미국흰불나방을 송충이라고 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송충이’ 관련 민원으로 병충해 방제를 시작했다고 방을 붙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아닌 게 아니라 온통 똥 천지다. 굼실거리는 버러지야 어떻게 해 보련만, 아무리 조심해도 똥을 피해서 나다니기가 힘들다.

 

미국흰물나방 똥으로 뒤덮인 화단
미국흰물나방 똥으로 뒤덮인 화단
자동차 앞 유리에 떨어진 미국흰불나방 애벌레 똥
자동차 앞 유리에 떨어진 미국흰불나방 애벌레 똥
보도블록에 떨어진 미국흰물나방 애벌레 똥
보도블록에 떨어진 미국흰물나방 애벌레 똥

 

미군의 군홧발 따라 상륙한 미국흰불나방

이 해충은 북미 원산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러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 아시아 지역에 침입한 것이 1948년경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는 1958년, 1979년경 중국의 순으로 발생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군 화물에 묻어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는데, 우리나라는 서울의 용산 외인주택에서 처음 발견되어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두산백과 두피디아 &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그러니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 세계로 세를 과시하던 녀석으로 미군의 군홧발 따라 우리나라에 상륙한 셈이다.

더듬어보면 용산은 미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부대찌갯거리 철철 넘쳐 나고 합수항에서도 개기름 둥둥 떠다녔을 것 아닌가! 이놈들은 애초부터 민초들이 구경도 못한 갖은 기화요초 희귀목까지 배 터지게 포식하고 꽤나 번지레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네는 풀떼기죽도 못 먹던 시절 아닌가? 이놈은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다식성(多食性)이다. 그러니 허천병에 걸린 놈들이 가뜩이나 헐벗은 산하의 초목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온전했겠는가?

토종 버러지로 자리잡은 미국흰불나방

한마디로 이놈의 숙주는 곧 군수품이라, 포탄과 피비린내를 따라 세력을 확장한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반목과 질시로 눈들이 뒤집힌 우리네 틈새를 노리고 쳐들어왔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무튼 무자비한 민족상잔의 아픔을 먹이 삼아 안주하더니 드디어 65년 만에 이 땅을 버러지 천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돌발 외래 해충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어엿한 토종 버러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걸신들린 아귀가 따로 없다.
뽕나무를 비롯하여 감나무 벚나무 매실나무 단풍나무 버즘나무 이팝나무는 물론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낙엽송 등등 바늘잎나무까지 가차 없이 물고 뜯고 짓씹으니 산천초목 남김없이 거덜이 나고 만다. 죽는 날까지 홀로 서지 못하고, 지네들끼리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난행(亂行)하는, 무지막지한 조폭이다.

식탐증은 유도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번에 육칠백 개나 알을 내깔기는 놈이 또 있을까? 새끼탐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나 덮치는 난봉꾼이요 아무데나 싸지르는 난교꾼(亂交-)이다.

남들은 많아야 연 2회 출현하는데 이놈은 오지랖이 넓어 세 번씩이나 팔도에 범람한다.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 아무데나 드러눕는다. 돌멩이 보도블록 나무껍질 나뭇등걸 할 것 없다. 하다못해 젖은낙엽 밑구멍까지 들추고 앉아 고치를 짓는다. 틈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 눌러앉는다. 그놈의 공짜 근성은 그 누구도 넘볼 수가 없다. 능청스러운 쥔장 행세는 이골이 났다.

게다가 얼마나 더럽고 너절한가?
촌닭은 지렁이 메뚜기 개구리 뱀 수박 껍질 달걀 껍데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콕콕 쪼아먹는다. 그런 촌닭도 이놈만 보면 혀를 내두른다. 길들여지지 않은 산닭(山~)까지 그놈 냄새만 맡고도 입맛이 천리나 달아날 정도로 줄행랑치니 달리 할 말이 있겠는가. 식탐의 대가인 거미랑 사마귀가 넌더리를 내고 고개를 돌리는 건 당연하다. 밑이 더럽다 했더니 오장육부가 더러운 놈이다. 너절하기 한량없는 놈이다. 상종할 놈이 못된다.

바로 그런 버러지 떼가 눈앞에서 시가행진하듯 주차장을 가로질러 보도블록을 지나 부산하게 아파트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참으로 사납고 모진 놈이다. 누가 저놈들을 사주했을까마는 그렇지 않고서야 연고도 없는 일산 변두리까지 침투하여 야지랑스럽게 굴 이유가 없다.

거칠 것이 없다.
기고만장하게 세력을 늘리더니
고샅부터 지붕까지 거리낌이 없다.
이 땅의 풀 나무 깡그리 짓씹어 놓고
무소불위한 괴물이 되어 판을 치고 떵떵거린다.
방충 캡슐 도포까지 나온 마당에 그 어떤 약도 듣질 않는다니
살육의 현장을 종횡무진하던 저놈의 뒷배는 과연 어떤 놈일까?

녹음이 한창 짙을, 8월의 이팝나무가 앙상하기 그지없다.(2023.8.31.)
녹음이 한창 짙을, 8월의 이팝나무가 앙상하기 그지없다.(2023.8.31.)

(계속)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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