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잎만 한 쌈채가 어디 있으랴?
데쳐서 무치고 덖어서 우려먹던 잎사귀
보랏빛 오돌개를 조롱조롱 달고 있던 그 뽕나무가
성한 이파리 한 장 없이 돋친 가지만 앙상하다.

되돌아가 멈춰서 들여다보려니
가만있어도 온몸 후줄근히 늘어지고
정수리 더수기 할 것 없이
비지땀 송글송글 삐져나오는데
둑길에 내동댕이쳐진 겨울나무 한 그루
오뉴월 땡볕 아래 마른땀만 훔치고

 

지난 8월 31일, 대곡역(경기도 고양시) 근처 개천가에서 만난 뽕나무
지난 8월 31일, 대곡역(경기도 고양시) 근처 개천가에서 만난 뽕나무


갈맷빛 이파리는
오롯한 데 하나 없이
허공에서 옴죽옴죽
죽살이치듯 너울너울
알량꼴량한 꼬락서니
휘우듬히 간들간들
눈코입귀 간댕간댕
허우대는 가실가실
사대삭신 오그린 채
속눈물만 자락자락

간당간당 대롱거리는 이파리마다
가시 돋친 누천(累千)의 버러지 떼 덮치고 앉아
가로세로
디글디글
굼실굼실
스멀스멀

오메, 징한 놈!
대체 넌 누구냐?

무슨 철천지한(徹天之恨) 품었다고
단말마의 경련마저 외면한 채
물고 뜯고
찢고 갉고
흠빨며 감빠는가?

흰불나방이란다.
이름부터 자기기만(自己欺瞞)이다.
어쭙잖은 부나방 주제에 흰 것이 좋이 보이더냐?
짜잔한 것이 시커먼 낯바닥 숨긴 채 허연 탈 뒤집어쓰고 불나방이라고 거들먹거리니 눈꼴이 시고말고. 그나저나 누굴 닮아 그다지도 모닥시러운 거냐? 꼼짝 말고 게 섰거라, 하나하나 헤집어 보자.(계속)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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