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전동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 내 발로 남산을 오르며 운동하던 때가 있었다. 동국대학교 정문 옆으로 난 길에는 300개가 넘는 계단이 있다. 남산 오르는 지름길로 숲을 뚫어 길을 내어 계단 양 옆으로는 나무가 무성했다. 나무들이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니 오르는 길이 힘들어도 위로가 되었다. 중간 중간 계단에 걸터앉아 쉴 때면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게 되는데 그때는 올라오며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풍경이 새롭게 펼쳐져 있어 한참을 바라보며 한숨 고르고는 다시 오르곤 했다.

그렇게 올라 다니던 남산 길. 요즘처럼 신록이 점점 짙어가던 5월 어느 날. 계단 끝 무렵에 이르렀을 때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가 풍겨 와 고개 들어 보았더니 내 키의 몇 배 되는 키 큰 나무가 온통 하얀 꽃으로 덮여 있었다. 바로 머리 위에서는 조그맣고 하얀 꽃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쪼르륵 매달려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꽃나무인지 몰라도 향기가 좋았고 예쁜 꽃들이 하나 같이 땅을 향해 고개 숙여 피어 있었다. 아래를 향해 피는 꽃은 드물기에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무 아래 잠시 서 있노라니 조롱조롱 빼곡히 매달린 작은 꽃송이들이 인사하는 모양이어서 '안녕! '반가워'라고 나도 인사를 건네야만 할 것 같았다. 가만히 살피니 거꾸로 매달린 꽃들이 작은 종처럼 보인다. 바람이 살랑 불어준다면 은은한 멜로디가 퍼져 나와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 줄 것 같다.

 

나중에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한 친구에게 그 꽃나무 얘길 했더니 아마 때죽(떼죽)나무일 거라 했다. 때죽나무는 열매를 짓이겨 물에 풀어넣으면 열매 안의 독성 때문에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고 꽃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준다. 해서 떼죽나무 라고 한다니 곱게만 보이던 꽃이 살짝 무서워진다. ㅎㅎ 때죽나무와의 첫 대면은 남산에서였지만 그 후 다른 곳에서도 종종 보게 되었다.

▲ 창경궁 뜨락의 때죽나무

때죽나무, 떼죽나무. 둘의 표기를 다 사용하는 것은 그 설 때문인 것 같다. 하얗던 ​나무가 커가면서 때탄 것처럼 시커멓게 변한다고 '때죽'이라는 설과 ​열매를 갈아서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떼로 죽어서 '떼죽'이라는 설이다. 꽃은 인후동, 치통으로 약용한단다. Snow Bell 이라고 하는 영명은 꽃모양에서 붙어진 이름이겠지.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양성숙 편집위원  ssooky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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