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 한겨레:온> 객원 포함 편집위원 모임이 있었다. 그날 참석한 김인수 객원 편집위원 (이하 객편)이 제주 여행을 제안하였다. 2~3명이 갈 의사를 밝혔고 나에게 갈 의향이 있느냐 물었다. 전동휠체어에 의지하게 되면서 여행은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먼 제주도라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잠시 엷은 희망이 살포시 꿈틀댔다.
엄마가 연세가 많다. 머지않아 저세상으로 갈 것이고 혼자 남으면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제의에는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제주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기대를 갖고 물으니 "문제없습니다, 알아볼까요" 답이 쉽게 나온다. 아무래도 이번엔 못 갈 거 같아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9월 20일. 8월 초 편집위원 모임 11인이 단톡방에 모이게 됐다. 사정상 갈 수 없는 사람 빼고 나 포함 6인이 제주 여행에 동참했다. 뜻밖에 8월 22일 엄마가 돌아가셨고 내게 자유가 주어졌다. 김인수 객편이 나에게 맞춰 여행 계획을 짜 줄 의도를 읽었기에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합류하였다.

서귀포 허니문 하우스 카페에서.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성환 객편, 최성수 객편, 김동호 편집위원, 형광석 객편, 김인수 객편
서귀포 허니문 하우스 카페에서.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성환 객편, 최성수 객편, 김동호 편집위원, 형광석 객편, 김인수 객편

여행 일정이 11월 9일 -14일 (5박 6일)로 정해졌다. 여행 날짜가 50 일가량 남아 있다. 그 기간 동안 단톡방에서 모든 일정이 짜졌다. 김인수 객편은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항공료, 숙박, 식비 등을 사방으로 알아보고 여행 일정도 현지 사정에 맞추어 짜서 공유했다. 우리는 시시로 김인수 객원의 노고와 수고에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봉사는 저의 기쁨'이라며 선의의 봉사를 이어갔다.
항공표는 6인분 모두를 다운 받아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배포하여 탑승 절차시 모바일 항공권만 제시하면 통과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하였다. 차 렌트는 무료 전동휠체어가 제공되는 업체를 골라 정했다. 제주 공항에서 렌트 업체까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는데 공항 도우미를 대기시켜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게 미리 마련해 놓기도 했다. 저렴하지만 불편하지 않았던 호텔에서 숙박할 수 있었고 가는 곳마다 맛나던 음식. 우리 일행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몸만 가서 너무나 즐거운 여행을 한 셈이다. 본인은 기쁨과 설레는 마음으로 했다지만 참으로 노고가 많았다. 고맙고 고맙다!

셋째 날 서귀포 '치유의 숲'에 갔다. 이곳은 숲 보호를 위해 하루에 600명만 받는다. 산책 코스가 다양하다. 시간별 코스 선택을 하고 예약을 하면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일행은 해설사를 따라 흙길을 따라가고 김인수 샘과 나는 데크 길로 간다. 약 500m쯤 되는 산책길인데 약간의 경사가 있다. 앞서가는 샘을 불러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포즈를 멋있어 보이게 잡아준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김인수 객편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김인수 객편

일화 하나

휠체어가 느리니 인수 샘을 따라갈 수가 없다. 목적지 끝까지 가도 여기 분위기일 텐데 굳이 끝까지 갈 일이 있겠느냐는 생각에 미치자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숲의 청량한 공기를 음미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어느 지점에서 목적지까지 갔다 내려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샘을 만났다. 느닷없이 나를 보고 '누구세요' 한다. 마치 전혀 모르는 타인을 대하듯. 순간 이거 뭐지 하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장난스럽다 하기엔 심각한 물음! 직감적으로 상황 파악은 되는데 어떤 말로 대답을 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미진한 마음인 채로 답을 내지 못하고 산책길을 내려왔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숙제 못 한 아이처럼 그 물음에 대한 대답 찾기가 계속됐다. 어느 날 내 안에서 답이 왔다. "글쎄요, 과연 제가 누굴까요?"

김동호 편집위원, 최성수 객편, 하성환 객편, 형광석 객편은 불편한 나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여행 길에서 가파른 경사길이 나오면 서로 번갈아가며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어쩌다 하성환 객편은 김포공항에서부터 전담 도우미가 되었다. 휠체어 승객은 공항에 마련된 이동 차량으로 탑승 비행기까지 가서 타야 한다. 이동 차량의 널판 승강기를 비행기 문 높이에 맞춰주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때 하성환 객편이 이동 차량에 보호자로 동승했다. 그뿐인가 제주에서는 같은 차 (1종 면허자가 없어 2대를 렌트하였음)에 동승한 죄?로 내가 차에서 내릴 때는 차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펴서 문 앞에 갖다주었고 차를 타면 접어서 다시 트렁크에 넣었다. 휠체어 무게도 가볍지 않고 펴고 접는 일도 수월치 않았을 텐데 하루에 서너 번 이상 반복해야 했다.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묵묵히 해주어 너무나 고마웠다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한번은 차에 오르다 차 천장에 머리를 살짝 부딪힌 일이 있었는데 그 뒤로 차를 탈 때마다 "샘 머리 조심"을 빼놓지 않았다.

 

단짝, 김동호 편집위원과 하성환 객편
단짝, 김동호 편집위원과 하성환 객편


그밖에 4.3 평화 공원, 알뜨르 비행장, 너븐숭이 유적지 참혹했던 4.3현장과 항몽 유적지 항파두리도 돌아보았다.

제주 여행 자체도 좋았지만 같이했던 사람들이 더 좋았던, 따뜻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여행이었다. 곁에서 나를 지켜준?(도와준) 5인방을 독수리 5형제라 부르고 싶다. ㅎ

<한겨레:온>과 맺은 인연으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한겨레:온>필진 모두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

끝.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양성숙 편집위원  ssooky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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