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는 셋째 날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침나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가 오면 배가 뜨지 않는단다. 제주도에 여러 번 왔지만 비양도는 못 가 보신 최성수 샘께서 몹시 섭섭해 하신다. 비가 와서 소풍 못 간 아이처럼. 제주 여행 일체를 주관한 김인수 샘에게 "그럼 비양도는 안 가나요?" 운전대를 잡고 계신 인수 샘 못 들었는지 답이 없다. "비양도는 가 봐야 하는데..." "비양도가 제주도 축소판이라는데" ... 작은 소리로 계속 혼잣말하신다. 뒷좌석에 있던 내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다. 내가 나서 다른 일행에게 여론몰이하였다. 다음날 가기로 뜻이 모아졌다.

배 시간을 맞춰야 해서 숙소에서 일찍 출발하였다. 드디어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를 타야 하는데 난코스다. 배까지 가려면 40-50cm 되는 시멘트 계단을 대여섯 개는 올라야 한다. 일행 중 체력이 단단한 형광석 샘이 나를 업고 배에 올랐다. 배에 난간이 있어 붙잡고 가면 걸을 수 있을 것 같기에 갑판에 내려달라 하였는데 굳이 선실까지 가겠다 한다. 100석은 족히 넘을 선실은 빈자리 없이 꽉 차 있었다. 업힌 채로 선실에 들어섰을 때 그 많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려고 모두 동시에 일제히 일어났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인지상정! 가장 가까운 맨 앞자리 분께서 양보해 준 자리에 앉았다. 배 창밖으론 잔잔히 바다 물결이 굽이치고 내 마음속에선 감동의 물결이 가라앉지 않았다.

비양도에 도착해 일행은 오름에 올랐다. 나는 혼자 남아 섬 마을을 둘러보았다. 나지막한 돌담, 알록달록한 지붕들, 돌 틈 사이나 땅 바닥을 뚫고 핀 작은 꽃들이 따뜻하고 정겨운 눈길을 보낸다. 마을 산책로를 걷던 관광객들도 낯선 이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소담스럽고 예쁜 마을이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 대문이 없는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전동휠체어(시속10km짜리)가 있었다. 저걸 빌려 타면 마을 한 바퀴를 빨리 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통유리 문 안쪽 거실에 등을 보인 채 앉아있는 여자 분을 불러보았다. 내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린다. 다시 한번 불러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몸이 불편해서인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빌려줄 지도 의문이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 포기하고 돌아서 나왔다. 느린 전동휠체어 (렌트 업체에서 전동휠체어를 무료로 대여해 주었다. 일반 수동휠체어에 모터를 달아 전동으로 운행하도록 개조한 것인데 속도가 사람 걸음 속도보다도 느리다. 평지에서는 그나마 운전하는 대로 굴러가지만 내리막에서는 제어가 안 되어 제멋대로 굴러가고 오르막에서는 뒤에서 밀어주어야 했다)로는 산책로로 이어지는 마을 구석구석을 다 돌아볼 수가 없었다. 사진도 많이 찍지 못 했다. 이번 제주 여행이 너무 좋고 만족스러웠는데 전동휠체어가 느려서 자유롭게 다닐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저 뒷쪽에 개 한 마리가 풍경이 되어 앉아 있다가 셔터를 누르는 사이 골목으로 사라져버렸다.

 

너를 만나려고 내가 제주에 왔나 보다 ㅎㅎ

 

 

 

 

비양도 선착장

 

비양도에서 바라본 선착장


선착장에서-최성수 객원편집위원


선착장에서-김동호 편집위원

 

오래 전 방영된 드라마 <봄날> 촬영지가 이곳일 줄이야!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ssooky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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